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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May 22. 2024

따뜻한 난로, 상추쌈과 된장, 우린 명품친구

  SN!

  너는 초등학교 시절 나의 단짝친구였지. 집은 서로 다른 방향이었지만, 학교에 있을 때는 늘 붙어 다녔. 공부할 때도 놀 때도 점심 먹을 때도 말이야.


  너와도 꽤 오랫동안 손 편지를 주고받았. 내 앨범에는 네가 보내 준 중학교 교복 입은 모습 사진도 있거든. 나도 너에게 사진을 보냈지. 나는 너 사진을 가지고 있는데, 너도 내 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너는 소재지에 있는 남녀공학에 다녔고, 나는 읍내에 있는 여중에 다녔어. 집에서 중학교까지도 아주 멀었지만, 그래도 나 나나 집에서 조금더 가까운 학교를 다녀야 해서 우린 헤어질 수밖에 없었지.


  난 여중학교까지 약 7km를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통학했단다. 너는 어땠니? 너는 버스가 다니는 곳에 살아서 아마도 버스를 타고 통학하지  않았을까 짐작을 해본단다.


  SN!

  내게 너의 이름은 정겨움 그 자체였어!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너의 이름SJ로 바뀌었더라. 그래서 내가 물었지.

  "나는 옛날 네 이름이 좋은데 왜 바꾸었어?"

  넌 조금도 망설임 없이 대답했지.

  "난 그 이름이 싫었어."

  그래. 그랬을지도 몰라. 초등학교 시절에 부르던 너의 이름은  조금은 촌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이름이었거든. 복자나 미자나  런 이름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니었고, 너의 성이 특별했기에 이름과 같이 부르면 꽤 괜찮은 이름이었는데 말이야.


  나는 사람이 이름을 바꾸는 것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이긴 해. 이름을 바꾸는 데는 새로운 사람으로, 더 나은 시람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거야.


  나는 성형수술을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도 생각이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모습에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잖아. 있는 그대로 100% 만족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부위를 고치고 싶은 모습으로 바꾸고 나면 자신감이 생긴다고 하더라. 생긴 대로 살면서 열등감과 아쉬움을 가지고 사는 것보다는, 화끈하게 바꾸고 당당하게 사는 게 더 좋겠지. 더군다나 뜻하지 않은 사고로 몸을 다쳤을 때 치료하고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하는 성형수술은 반드시 필요한 .


  그런데 나는 아주 가까운 사람이 교통사고 후에 다친 얼굴 부위를 치료하면서 내친김에 눈 쌍꺼풀에 광대뼈와 턱을 깎아 낸 것을 보았어. 그게 익숙하지 않아서 오랫동만 낯설어했어. 만날 때마다 전혀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거리감이 생기더라. 그래도 워낙 가까운 사람이니까 내가 그 점을 이해하고 차츰 적응해 나갔지.


  지금은 많은 사람이 성형을 하고 산다고 볼 수도 있는 시대라서 이런 내가 고루하고 고지식해 보일 수도 있을 거야. 요즘에는 겉으로 보이는 외모를 뜯어고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름을 바꾸는 건 아주 대중화되어 있, 또 함께 살던  배우자끄떡하면 바꾸고 그러잖아.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는 생각이야. 나는 늘 그렇게 말해.

  "신이 명품이면 무엇을 들고 다니던 어떤 이름이던 어떤 모습이던 상관없이 지고 있는 모든 것이 명품이 된다."


  바이올린 악기에 대한 일화가 있지. 어떤 사람이 바이올린을 켜다가 소리가 잘 안 나온다고 길거리에 버렸대. 그런데 길을 지나가던 명 바이올리니스트가 그 바이올린을 주워서 켰대. 사람들이 아름다운 선율에 감동받아 몰려들었지. 버려진 바이올린은 바로 그 순간에 명품 바이올린이 된 거야.


  또 있어. 왜 있잖아. 동화 중에 <왕자와 거지> 이야기 말이야. 서로 입장이 바뀌고 옷도 바꾸어 입지만, 결국 신분은 안 바뀌잖아. 왕자가 거지 옷을 입는다고 거지가 되고, 거지가 왕자 옷을 입는다고 왕자가 되는 건 아니거든.


  따분하게 변함없는 신분 이야기냐고? 지금은 그렇게 고정된 신분사회는 아니기에 스스로가 결정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해. 자기 자신이 명품이면 누가 뭐래도 명품인 거지. 무슨 옷이나 가방을 들던, 어떤 이름이생김새던, 무슨 일을 하든, 돈이 많든 적든, 어떤 집에 살던, 무슨 차를 타던, 상관이 없다는 얘기. 자존감이 그 정도면 뭐가 돼도  않겠어?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확장해 볼까 해. 예전에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 뇌성마미 형제가 간증집회를 한 적이 있어. 그이는 결혼을 했는데, 아내와 이서 단에 앉아서 간증을 했지. 잠시 잠깐도 몸을 가만 두지 못할 도로 뇌성마비 정도가 심. 앉아서 탁자를 붙잡고, 얼굴을 찡그리 휘저으며, 입술을 벌리 거품을 일으키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이야기했어. 그러면 옆에 앉은 아내가 그이의 말을 통역해서 우리가 들었지. 그이의 아내는 장애가 없었고 꽤나 미인이었어.


  그런데 그이의 이야기 중에 글쎄 정상인인 여자(지금의 아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다지 뭐야! 한동안 사귀서로 결혼하기로 약속하고, 장인어른이 될 장로님을 찾아갔대. 그랬더니 안 된다고 단칼에 거절하더래.

그래서 며칠 고민을 하다가 성마비 형제가 직접 장로님을 찾아가서 이렇게 말했대.

  "저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녀입니다."

  결국 기도하시던 장로님은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고, 지금은 그이 덕분에 먹고 산다고 하더. 그이는 간증도 열심히 다녔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은 책을 내서 인세도 톡톡히 받고 있다고 했지. 그 덕분에 자신의 집안뿐만 아니라 아내의 친정 식구들까지 먹여 살리고 있다지 뭐야. 나는 그 형제의 당당하고 고귀한 자존감이 잊히지 않았어.

 

  이런 사례는 예를 들자면 아주 많이 찾아낼 수 있. <너는 특별하단다> 그림책에서도 우리 모두는 특별하게 지음 받았다고 얘기하지. 조금 부족한 사람은 더 특별한 부모님에게 보내지지. 사랑이 아주 많은 그런 부모님 말이야.


  그런데 나는 4대 독자 집안에 큰딸로 태어나서 별로 환영받지 못한 느낌이야.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어나서도, "그거 하나 달고 나오지."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어. 내 무의식 중에는 늘 그런 차별에 대한 아쉬움 내지는 억울함 같은 게 있는 것 같아. 글을 써보면 알 수 있어. 꼭 남아선호사상메 대한 비판 같은 게 내 글 속에 튀어나오더라고. 래도 난 당당해. 남자로 태어난 것 못지않게 하고 싶은 것은 뭐든 하면서 살아왔거든!


  SN!

  너의 새로운 이름이 아닌 옛 이름을 부르는 걸 이해해 주기 바랄 게. 한참 돌아왔지만, 실은 이름 얘기를 하려 건 아니고, 그 이름을 부던 시절 너와의 그리운 추억을 말하고 싶었어.


  초등학교 6학년 때, 너를 생각하면, 난로와 (도시락의 일본말), 그때는 이 말이 일본말인 줄도 모르고 우리가 늘 사용했었지, 상추쌈과 된장, 이런 게 떠올라. 겨울에는 지글지글 타오르는 교실의 난로와 그 위에 올려놓은 양은 도시락에서 구수한 밥 냄새가 났지. 밥을 먹다 보면 도시락 밑에 밥이 살짝 눌어붙기도 해서 우리는 물을 부어서 숭늉도 만들어 먹었지. 봄 여름 가을에는 네가 바구니 가득 담아서 싸 온 싱싱한 채소들, 상추, 깻잎, 오이, 고추, 그리고 토마토, 참외, 수박, 살구, 자두 같은 과일들도 있었지. 너희 집 된장, 고추장도 참 맛깔스러웠어. 고기 없이도 그 채소에 밥을 올리고 된장, 고추장을 얹어서  쌈을  싸 먹으면 어찌 그리 맛이 있었던지, 한 주먹 가득 들어오는 커다란 자두를 힌 입 베어 물던 그 달큼하고 새콤한 맛, 지금도 입안 가득 침이 고이네. 이제 다시는 그 맛을 못 느낄 것 같아.


  너와 편지를 주고받던 고등학교 시절, 너는 나를 많이 부러워했던 것 같아. 난 서울에 살았고, 너는 수원 어디에선가 일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다고 했어. 너에게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친구 누군가에게서 흘려 들었지.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기에 부러 알려고 하지도 않았어.


  너는 키도 컸고, 예뻤어. 좋은 사람과 결혼도 잘했다고 들었지. 그리고 동창회에서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손수 뜬 빨간 가방을 가지고 와서 내게 선물했지. 나는 신앙수필집에 인을 하고, 얼굴에 바르는 콤팩드 한 개를 사갔지만 말이야. 너의 정성은 그 후에도 이어져서 털이 북실북실한 실로 만든 까만 손뜨개 기방에 모자도 떠서 부쳐왔어.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우리 사이를 손 편지가 계속 연결해 주었다고도 볼 수 있지. 끊어졌다가 이어졌다가 간간이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편지를 쓰지 않은 친구들과는 다른 우정을 간직할 수 있었지.


  SN!

  이제 우리 둘 다 자녀를 낳고 손주도 보고 할머니가 되었잖아. 지금  너는 부산에 살고 있고, 나는 수원에 살고 있어서 자주 만날 수는 없지만, 너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소중한 친구야. 그 말을 꼭 해주고 싶어.


  참, 우리 올 겨울에 10여 일 동안 초등친구들과  동남아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잖아. 나도 가려는데, 너도 신청했다고 들었어. 그때 너를 만나면 꼭 SJ라고 불러줄게. 이름과 자존감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난 네가 이름 바꾼 걸 존중해. 누구나 다 자신이 좋은 걸 하고 살아갈 자유가 있으니까. 우리, 재미나게 함께 여행하면서 제까지나 변치 않는 명품친구로 새롭게 거듭나자꾸나!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 우리가  나눈 이야기, 우리가 다닌 여행지, 우리가 같이 찍은 사진, 우리가 순간순간 함께 한 흔적들, 그 모든 것이 다  명품이 될 거야. 그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니? 참 그날이 기다려진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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