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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May 08. 2024

[프롤로그] 손 편지를 쓰던 시절

나는 가지고 있는데, 그이들도 가지고 있을까?

'나를 키운  팔 할이 바람이었다'라고 쓴 시인이 있다. 그런데 나를 키운 건 무엇일까? 아마도 일기와 편지가 아닐까 싶다. 그것도 '손으로 쓴 편지가 나를 키운 팔 할'이라고 말해 볼 수 있겠다.


나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버스도 다니지 않는 촌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느 날 천지가 개벽하듯이 온 동네가 환해지면서 전기가 들어왔다. 동그란 모양의 백열등이었지만 부엌에서 그것을 켤 때 눈이 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곧 익숙해졌지만 나는 그렇게 빛과 만났다.


집에는 텔레비전 전화도 없었다. 동네 부자 어른 집에만 전화가 딱 한 대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방송을 해서 전화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물론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 갈 때는 먼 거리를 걸어서 다녔다. 어른들이 장에 갈 때도 소달구지를 타거나 걸어서 다녀야만 했다. 강도 건너고 들판도 지나고 산도 넘고 두세 시간씩 걸렸다.


간혹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들이 있었다. 중학생 오빠들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고, 우체부 아저씨도 그중 하나였다.


"따르릉따르릉"

우체부 아저씨가 우리 집 마당으로 들어다. 자전거 뒤에 실은 묵직한 빨간 가방에서 편지 뭉치를 꺼내 들었다.

"야! 이거 너무 많은 거 아냐?"

아저씨는 내게 온 편지를 건네며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휙 하고 가버다.

"내일 또 오마."


우체부 아저씨가 거의 매일 우리 집에 들를 정도로 나는 편지를 많이 받았다. 그만큼 나도 편지를 많이 썼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나는 밥을 지으면서 부뚜막 위에 올려놓은 트랜지스터 라디오 듣고 있었다. 오후 5시 어린이 방송이었다. 아주아주 촌 시골에 살았던 나는 밖에 나가서 자연과 더불어 노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집안일을 할 때는 유일한 소일거리가 라디오를 듣는 것이었다.


어린이 방송은 전국에 있는 어린이들과 어린이들을, 그리고 동심이 가득한 어른들을 연결해 주는 통로였다.


어떻게 우리 집에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라디오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먼저 안테나를 길게 빼서 올린다. 그리동그란 다이얼을 돌리듯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똑딱 소리가 나게 돌리면 라디오가 켜졌다. 한동안 지지거리다가 또 채널 맞추는 눈금을 이리저리 돌리면 소리가 잘 들리는 지점이 나온다.


가마솥에 보리쌀을 씻어 앉히고 아궁이에 풀무질을 해가면서 톳밥이나 벼껍질을 던지면서 불을 땠다. 풀무를 돌리면 뿌지직 타오르면서 빨갛게, 파랗게 올라오는 불빛이 좋았다.


"보글보글보글"

한참 신나게 동요도 따라 부르며 불을 때다 보면 무거운 솥뚜껑이 거품을 내면서 들썩이기 시작했다.


하얀 천 행주에 물을 흠뻑 적셔서 솥뚜껑을 두서너 번 훑어내리고 솥뚜껑 주위의 거품도 닦아냈다. 그러고는 불 때는 것을 그만 멈추었다. 그러면 솥 안의 열기와 아궁이의 남은 불기운이 알아서 밥뜸이 들도록 해주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솥뚜껑을 열어보면 보리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밥이 잘 지어져 있었다.


가족들이 일터에서 돌아오면 마당에 멍석을 펴고 빙 둘러앉아서 밥을 먹었다. 둥근 나무 상 위에는 호박잎이나 된장국, 무짠지, 신김치 같은 것이 반찬의 전부였지만 아주 맛있게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었다.


이런 풍경과 함께 그리운 장면은 내가 그 어린이 방송국에 편지라는 걸 보낸 일이다. 방송을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어린이들이 보내온 글을 읽어주고는 가끔 추신에 적힌 주소도 알려주었다.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라고, 친구하고 싶은 사람은 편지를 써도 좋다고 다.


그래서 나도 글을 써서 보내고 끝부분에 펜팔친구를 사귀고 싶다고 다. 그런데 내 편지가 며칠 후에 방송이 되었


전국 각지에서 미지의 사람들에게서 내게로 편지가 날아들었다.


"무슨 큰일이 났나 했다."

우체부 아저씨가 처음 편지를 가지고 오시던 날 깜짝 놀라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날마다 여러 통씩 편지가 왔다. 나는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편지를 골라서 답장을 썼다. 주거니 받거니, 거의 날마다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는 일이 일과가 되었다.


아마 그 당시에는 나처럼 그렇게 편지를 쓰던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도 같다. 손 편지를 쓰던 시절이었으니까.


내가 지금까지 장롱 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그때 받은  편지들! 내가 보낸 편지들 그이들도 가지고 있을까? 아마도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나는 찾고 싶다. 나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주인공들을 말이다.


그들 중에는 우리 집에 직접 찾아온 이들도 있었다. 군인 아저씨가 휴가를 받았다면서 시골집으로 한 번 왔었고, 내가 서울로 이사한 후에는 역시 또 다른 군인 오빠가. 여행길에서 만난 소년이 찾아왔었다.


"손 편지를 쓰던 시절, 그리운 편지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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