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야,
나는 네 편지를 거의 다 가지고 있어. 가끔 꺼내서 읽어본단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여중학교 1학년 한 해 동안이었지. 난 반장이었고 넌 대의원이었던 거 같아. 내 기억이 그렇긴 한데 정확하진 않아. 어쨌든 너랑 나랑 반 임원이었던 건 분명해.
난 반장은 처음 해봐. 초등학교 때는 남자가 반장을 하고 여자가 부반장을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여중학교 들어와서 처음 반장을 한 거지.
넌 읍내에 집이 있었고 어머니가 포목점과 한복점을 같이 했던 것 같아. 읍에서는 꽤 잘 사는 집이었지. 너네 집에도 가본 적이 있는데 약간 높은 지대에 아주 전망이 좋은 한옥집이었지. 마루가 기다랗게 있고 마루를 따라 방들이 여러 개 있는 일자형 집이었어.
난 중학교 입학하고 아주 먼 거리를 걸어서 통학을 했지. 우리집도 마당이 있는 깡촌 한옥집이었는데 넌 우리 집에는 못 와 봤지. 집이 너무 멀어서 교실 환경미화 등으로 할 일이 있을 때는 읍내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서 자고 학교에 가기도 했어.
우리가 독후감 대회 같은 걸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있네. 방과 후에 남아서 필독서를 읽고 글을 썼지.
광주시 대회로 나가서 백일장을 했던 기억도 있어. 초등학교 때였을까? 아님 중학교 때였을까? 나는 그때 시가 가작에 당선되었는데, 삼남문집에 실려서 책을 선물로 받았어. 그 책을 하도 읽어봐서 겉표지가 너덜너덜해졌지만, 지금은 그 책도 가지고 있지 않고 심지어는 내가 쓴 시도 기억하지 못해. 어떤 시를 썼던 걸까?
J야,
우린 정말 오랫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구나. 여중 1학년 겨울 서울로 이사한 때로부터 여고, 대학 시절까지 편지를 했으니까. 내가 대입에 실패하고 재수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너는 전남대 국문과에 입학해서 열심히 대학생활을 했지. 그리고 내가 이화여대에 입학할 무렵 너는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 되었어. 그러고는 우리가 잠시 조용한 시간을 가지다가, 결혼할 때도 또 연락이 되어서 서로 축하해 주러 가고 오고 했지.
너는 서울 오면 우리 집에 와서 묵기도 했고, 나 역시 고향에 가면 너네 집에 묵기도 했어,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지. 네가 광주에서 여고 선생님을 하면서 학교 근처 아파트에 살고 있을 때였지.
내가 방학 때 우리 애들과 조카를 데리고 고향 영광 이모할머니댁에서 머물고 있었어. 애들 데리고 법성포 해수욕장을 들르고,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도 둘러본 후였지. 우린 그날 너무 많이 걸어서 몹시 피곤했어. 모두 잠자리에 든 시간이었어. 너와 전화 통화를 하니까 여중 동창 친구들이 다 너네 집으로 모이기로 했다면서 나보고 택시를 타고 얼른 광주로 오라고 했어. 영광에서 광주까지 거리가 얼마야? 그래도 부랴부랴 잠든 애들을 깨우고 짐을 챙겨서 택시를 불렀지. 그날밤 너네 집 거실에서 하염없는 이야기를 쏟아냈었네. 당시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너희 남편이 그랬다면서?
"도대체 순오가 누구기에 너네들이 다 모인 거냐?"
"누구긴 누구야? J의 단짝친구지."
약사가 된 친구. 미술 선생님이 된 친구, 논술교사를 하던 친구, 그리고 너와 나, 우리는 밤새 술판을 벌였어. 술을 잘 못 마시던 나는 빔 새도록 비몽사몽 간에 너희들과 이야기를 주고받았지. 대화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 기다란 무드 등만이 거실 구석에서 어렴풋이 빛을 발하며 오래된 카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지.
우리 애들은 잠을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서 일어났다가는 "아직도 안 자냐?" 며 놀랐지.
그 후 J, 너는 지방일간지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부지런히 글을 썼어. 네게 오는 소식들은 좋은 소식이 많았지. 첫 소설집을 냈고, 또 여행집도 냈고, 장편소설을 써서 큰 상도 받았어.
그런데 나는 부럽다기보다는 사느라고 바빴어. 문학이 아닌 새로운 길 신학을 공부했고, 어려움도 겪었어. 그러다 보니 나의 무덤덤함에 너는 서운했던 거고. 아마도 그랬을 거야.
최근에 내가 그림책을 냈다는 소식과 함께 책을 부쳤더니 네가 아주 많이 기뻐하더라. 외손주가 있다면서 선물하겠다고 했어.
"나도 소설집 많이 냈는데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너는 톡에서 말했지.
"물론이야. 네가 낸 책들은 거의 구입해서 다 읽었지. 너의 소설은 완성도가 높더라. 많이 부러워."
나는 답글을 달고는 너의 책들을 책장에서 꺼내 인증사진을 찍어 보냈어.
"그래. 고마워."
"난 호흡이 짧아 그림책과 에세이가 잘 맞는 듯해."
우리의 대화는 이제 편지가 아니리 톡이 되었구나. 우리도 시대의 조류를 따라가고 있는 거지.
J야,
넌 어느새 꽤 지명도가 있는 실력 있는 소설가가 되었고, 난 이제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네. 그렇지만 쉬지 않고 습작은 했으니까 좋은 그림책과 에세이를 쓸 수 있을 거야.
우리, 문학을 꿈꾸던 시절을 생각하며 열심히 글을 쓰자. 그리고 책을 낼 때마다 서로 사인본을 보내주며 다시 편지를 주고받자꾸나. 편지는 우리의 우정을 더욱 돈독하게 해 주고, 우리들 글 실력도 높여 줄 거야. 서로 자극을 받고 격려를 해줄 테니까.
"J야, 네가 내 문학 친구라서 참 자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