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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n 26. 2024

집까지 초대해 준 군인 오빠

"충효!"

오빠를 생각하면 오른 손을 쫙 펴서 이마 위에 대고 거수경례를 하고 싶어져요. 이렇게 구령을 붙이면서요. 오빠는 이씨 성을 가졌고, 이름 첫 글자가 '충'자였지요. 아마도 '충성 충자'였을 거여요. 이름 끝 글자도 '효도 효자'보다는 더 애국적인 글자였지요. '온 힘을 다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으니까요. 오빠의 이름을 다 부르지 않는 것은 신비감을 주려는 의도 내지는 어느 정도는 익명성을 유지하고 싶 때문이에요. 이해해주시리라 믿어요.


오빠가 우리 집을 찾아온 것은 제가 여고에 다닐 때였던 것 같아요. 엄마는 수유리 북부시장 근처에서 식당을 하고 있었는데, 방 하나가 딸린  아주 작은 가게였어요. 가운데 연탄불을 넣을 수 있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석쇠구이 철판 원형 테이블이 서너 개 정도 놓인 10평 이내의 가게였으니까요. 골목길 귀퉁이에 붙어 있었지요.  엄마 아빠는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했어요.

 

저희들이 사는 집 역시 가겟방이었는데, 엄마의 식당 한 집 걸러 있어요. 우리는 이곳을 '살립집'이라 불렀어요. 밖에 철문은 닫아두고 보조문만 사용했어요. 부엌이 따로 없고, 그 조그만 가게 공간을 부 대신으로 어요. 동그란 연탄 화덕에 불피운 연탄을 넣어서 기다란 아궁이 속으로 밀어넣어서 난방을 했어요. 수도꼭지가 하나 있어서 플라스틱 호스를 달아서 세수대야로 물을 받아서 씻는데 사용했어요.  하나이고, 물건을 넣어둘 수 있는 다락 있었어요. 그  방 하나에 할머니와 동생들까지  여섯 식구가 살았으니까 는 주로 다락을 이용했어요. 문이 없는 다락에서 자다가 방으로 떨어진 적도 가끔 있었어요.


오빠가 군대에 있는 동안 우리는 편지를 주고 받았지요. 우리가 어떻게  편지를 하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네요. 어린이 방송국을 듣고 편지를 보내온 것 같지는 않구요. 그때로부터 시간이 꽤 지난 시점이구 오빠는 군대생활을 한 3년 정도 했을테니까요. 그럼 학교에서 단체로 위문편지를 썼다가 오빠한테 답장을 받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오빠는 나를 친여동생처럼 다정다감하게 여겼어요. 편지의 어투가 그랬지요. 저도 꽤나 응석을 부린 듯해요. 오빠는 휴가 가면 꼭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지요. 그렇지만 저는 설마 했어요.


그런데 오빠는 약속을 잘 지키는 분이었던 듯해요. 아마도 오빠는 내가 꽤 괜찮은 환경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휴가를 받아서 직접 찾아와 보고는 깜짝 놀랐으니까요. 


그리고는 나에게 제안을 했죠.

"오빠가 사는 곳 한 번 와보고 싶지 않아?"

  천안은 우리 이화의 선배님이신 류관순 열사의 유적지가 있는 곳이고, 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기념관이 있는 곳이거든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어요. 는 선뜻 승락을 했요.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탔어요. 이젠 이런 일은 익숙했지요. 방학이면 내 고향 영광에 다니러 간 지도 벌써 몇 해째이니까요.


오빠는 나를 반갑게 맞아서 현충원을 먼저 구경시켜 주었어요. 그때 오빠가 찍어준 사진들이 앨범에 있요.


그리고 오빠네 집에 가서 하루 묵었어요. 부모님께 소개도 시켜주셨지요. 작은 방에 혼자 누워 잠을 잤지요. 밤이 깊어가도 초롱초롱 잠이 오지 않던 밤이었어요.


아침에 깨서 오빠의 머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아침상을 받아 먹고 류관순 유적지를 둘러보았어요. 논둑길을 걸어갔던 생각이  나네요. 들풀이 우거진 개천도 있었구요.


오빠, 참 아름다운 추억이에요.

지금같으면 누굴 믿고 어떻게 그런 곳을 찾아가겠어요? 얼마나 사건사고가 많은 데요. 그때는 우리가 그만큼 순수했던 거에요.  참 그립네요.  가끔 오빠의 편지에 기록된 주소를 검색해보곤 해요. 지금은 새로운 주소지라서 안 나오더라구요. 행정구역도 바었을지 몰라요.


오빠는 혹시 내 이름 같 검색 안 보시나요? 제 이름은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니라서 찾으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요.


아니에요. 지금은 결혼해서 아들딸도 낳고, 그 시절의 추억은 너무 아득해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문득 '꿈이었나?'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저도 오빠가 보낸 편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사람의 기억이란 일부는 남고 대체로 다 지워지니까요.


충 오빠, 이렇게 부르니 한결 가깝네요. 언제까지나 기억할 게요. 천안 여행의 추억을 만들어준 오빠를요. 그래서 제가 가끔 혼자서 천안을 가보는 것 같아요. 광덕산도 올라보았고, 백석대학도 천호지도 아라리오 미술관도 가보았어요.


곧 류관순 열사 유적지에 가볼 생각이에요. 오빠의 집 근처가 어렴풋이나마 기억이 날지 기대를 해봐요. 그때 우리 추억 속에서 같이 걸어요. 오빠는 언제까지나 내 마음 속 친구에요. 오빠, 고마워요.



추억 / 서순오


함께 걷던 길을

혼자서 걷고


함께 먹던 음식을

혼자서 먹고


함께 보던 영화를

혼자서 보고


함께 눕던 방에

혼자 누워도


혼자가 아니라

늘 둘이서 함께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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