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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ul 17. 2024

괴나리봇짐과 토끼비리, 문경새재아리랑의 해학

경북 문경여행(1) : 옛길박물관

경북 문경 여행을 한다. 조령산, 주흘산 오를 때 옆으로 지나가던 <옛길 박물관> 들어가서 여성 해설사님의 1:1 설명을 들으며 관람을 하노라니 문경이 지금까지 알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영남에서 한양까지의 길을 '영남길'이라고 한다는 것, 괴나리봇짐과 어사화, 과거 시험을 보던 한지, 교지, 마패, 토끼비리, 금실 한복, 메이커 버선, 문경새재아리랑 등등 얼마나 새로운 것이 많은 지 흥미진진하다.


나는 박물관, 미술관, 문학관, 역사관, 생태관, 이런 곳도 좋아해서 여행할 때 자주 가보는 편이다. 후회 없는 선택이다.


여행코스에 포함되어 있는 문경새재길이야 조령 1 관문에서 2 관문, 3 관문까지 두 번이나 걸어봤고, KBS드라마 세트장도 둘러보았기에 또 갈 건 없었다. 나는 한 번 해본 것보다는 안 해본 것, 새롭고 낯선 것에 관심이 많다.


옛길박물관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층 전시관의 초입이다. 바닥에는 영남길 옛 지도가 그려져 있고 전면에는 괴나리봇짐과 함께 그 안에 넣고 다닌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다. 배경은 한문과 한글로 화제를 쓰고 옛길 분위기가 나게 꾸민 한국화 그림으로 꾸며놓았다.


천하지형세시호산천

산주분이맥본동

수주합이원각이


천하의 형태는 산천에서 볼 수 있다.

산은 본디 하나의 뿌리로부터 수없이 갈라져 나가는 것이다.

물은 본디 다른 근원으로부터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 <동여도> 목판에 부기


하나의 뿌리가 갈라지고 다른 근원이 합쳐지고, 그래서 천하 산천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이다.


출입문 안으로 들어오면 전면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장면을 집으로 옮겨오고 싶을 만큼 내 마음에 쏘옥 드는 공간이다. 옛길박물관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곳이라고나 할까?


하긴 여행이나 산행을 좋아하는 내게 지금의 캐리어나 배낭에 해당하는 괴나리봇짐에 관심이 가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여행 중 뭐가 가장 빨리 떨어졌을 까요?"

"신발요"

단아한 몸에 조금 밝은 남색 치마 정장을 입은 여자 해설사님이 내게 물어보기에 얼른 대답을 한다.

"맞아요."

그러고는 신발에 대해서 설명을 해준다.

짚신, 나막신, 가죽신 등 다양하다. 짚신은 한 켤레를 신고 약 10 를 걷는단다. 그래서 그 지점쯤에는 주막이 있단다. 선비들이 쉬면서 목도 축이고 신도 갈아 신고 가야 해서이다. 104km 정도인데 1시간 정도면 걸어 수 있는 거리이다. 산은 그보다 더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평지길은 그 정도면 무난하게 걷는다. 그래서 우리가 산행을 할 때도 1시간 걷고는 쉬어가는 것을 권장하는 모양이다.


특별히 또 눈길이  간 것은 '토끼비리'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을 피해 산길로 들어가야 했는데, 길이 끝나면 꼼짝없이 잡혀서 죽는다. 그런데 토끼들이 다니는 것을 보니 벼랑 위에 길이 나 있더란다. 그래서 그 길로 도망을 쳐서 살아남았다니 '토끼비리'는 '생명의 길'인 셈이다. '비리'는 '벼루'라는 문경 사투리에서 온 것인데, 바로 '벼랑길'을 말하는 거란다. 한쪽은 낭떠러지인 암릉길 말이다. 그러니 '토끼비리'는 '토끼들이 다니는 벼랑길'이라는 뜻이다. 암릉을 좋아하는 산우님들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 조상들은 생명을 걸고 암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느다란 대나무 가지에 종이꽃을 붙여 만든 어사화 진품도 신기했다. 과거시험 답안지가 방 전체를 덮을 만큼 긴 것도 있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공부 잘하는 거나 시험에 합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듯하다.


그 밖에도 금실로 짠 의복, 동그란 천을 덧댄 메이커(?)가 있는 버선, 문경새재아리랑 등이 가슴에 새겨진다.


문경새재아리랑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이것은 문경새재아리랑 돌비에 새겨진 가사이다. 실제 문경새재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걸 들어 보면 계속해서 앞과 뒤에 아리랑 반복구가 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문경아 새재야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가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홍두깨 방망이는 팔자도 좋아

큰애기 손길로 놀아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문경아 새재를 넘어갈 때

구비야 구비구비 눈물이 나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문경새재는 무슨 고개이길래

영남의 선비가 다 넘나 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문경새재아리랑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리랑이다. 2012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28년 전 1896년 고종의 외무특사였던 호모 헐버트 박사가 서양악보에 '문경새재 물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가네'를 채록해 영어로 남긴 것이 문경새재 아리랑이 최초의 아리랑임을 밝혀준다.


그래서 그런지 문경에서 우리나라 아리랑을 모두 모아 하나의 아리랑 책으로 만드는 작업도 했는데 참 귀한 일을 했다고 본다. '최초의 아리랑'이라는 자부심이 이 같은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리랑 가사는 어찌 그리 슬프고도 아프고 또 애절할까? 한국인의 정서가 한이어서일까? 나라 잃은 설움과 고운 님 떠난 보낸 이별의 슬픔과 꿈을 이루려고 험한 고개를 넘는 어려움 같은 것을 아리랑 노래에 실어서 저 천하 산천으로 훌훌 흘려보낸 것이리라. 그래서 한국인은 그 어떤 시련과 고난도 구성진 아리랑 노래를 부르며 슬기롭게 극복해 낸 승화의 철학이 있는 민족이라고나 할까?


문경새재 옛길박물관에서 돌아와 우리나라 아리랑 노래들은 찾아서 들어본다.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아리랑 등 종류도 참 많다. 내게도 어려움의 고비마다 이런 아리랑의 해학이 있었을까 돌아본다.

문경새재아리랑비에서
옛길박물관 전경
1층 옛지도와 괴나리봇짐 코너
1층 옛지도와 괴나리봇짐 코너에서
금실 의복과 메이커(?) 버선
토끼비리
어사화
호머 헐버트 박사의 문경새재아리랑 채록 영어 기록
우리나라 아리랑 모음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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