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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Aug 09. 2024

동아리 비밀 커플이라니 깜짝 놀랐어

  T 씨와 Y에게

  우리가 소설을 쓴다고 J문화센터 소설창작반에 들리기 시작한 게 몇 년였을까? 내가 먼저 들어갔을까? 아님 너희 둘이 먼저 들어갔을까? 그 시점이 잘 생각나지 않네.


  내가 그곳에 간 시점은 아마도 중앙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 다니고 있을 때였던 것 같아. 우리 학과 소설가이신 S교수님이 좋은 자기 학교를 놔두고 다른 데 가서 배운다고 나를 퇴학시킨다고 농담을 하셨던 기억이 나는 걸 보면 그 언저리였을 거야.


  나는 대학원에 현대시 전공으로 들어가서 공부를 했는데, 왜 J문화센터에서 시창작반에 안 다니고 소설창작반에 다녔을까? 그 당시에 시인 이승훈 선생님시를 지도하셨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설가 이호철 선생님이 소설을 지도하셨거든. 아마 여름 아니면 겨울 방학이었을 거야. 두 강좌 다 처음에 수강신청하기 전에 청강이란 걸 해보았는데, 나는 소설반이 마음에 들었어. 그래서 뭐, 시는 전공이니까 학교에서 배우고, 소설은 거기서 해야겠다 싶었지. 이론 공부 조금 하고 주로 합평을 하는 방식이었지.


  수업 끝나고는 매번 풀이 시간이 있었어. 밥도 먹고 술도 마셨지. 그 당시에 나는 술을 꽤나 잘했어. 우리 집 할머니 아버지 술 내력이 있어서 그런지 나한테 술이 아주 잘 맞더라. 그때에는 교회에도 안 나가고 쉬고 있었어. 풀이는 이호철 선생님도 같이 가셨는데, 1차, 2차, 3차, 4차, 5차까지 갔어. T 씨도 Y 너도 나도 끼여 있었지. 먹어도 먹어도 취하지가 않더라. 날이 샐 즈음에는 회원들끼리 가벼운 말다툼과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어. 버스는 끊어졌고 결국 택시를 타고 집에 오는 일이 잦았지. 방에 사는 친구들은 불광동에 있는 선생님 집에 가서 자기도 했어.


  그때 나는 우리 남편이 된 사람과 연애를 시작해서 7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어. 그런데 이호철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지.

  "너희들 결혼식 주례는 내가 해줄게. 결혼 상대자가 정해지면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라."

  그래서 내가 우리 남편감을 데리고 가니까 T 씨와 Y 네가 결혼식 날을 잡았다면서 알려주었지.

  "세상에나 함께 앉아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우린 너희 둘이 커플인 줄도 몰랐잖아. 때로는 우리 셋이 포장마차에 앉아 있기도 했었는데, 너희 둘 사이에 속도 모르고 내가 끼여 있었던 거잖아? 어느새 그렇게 발전한 거야? 우린 감쪽 같이 속았지 뭐야."


  그런데 최근에 Y 이야기를 들으니 글쎄, T 씨와 Y 네가 연인으로 발전한 것은 결혼하기 몇 달 전이라고 하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겠어?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시간이 그리 중요한 건 아니거든. 그렇지만 내가 안 건 T 씨와 Y 두 사람의 결혼 며칠 전이니까 놀란 건 사실이야.


  Y 너도 알다시피 사실 T 씨와 나는 생년월일이 똑같아서 술자리에서 자주 농담을 했거든.

  "순오 씨가 잘되면 내가 잘되고, 내가 잘되면 순오 씨가 잘되는 거라고. 팔자가 똑같으니까."

  태어난 시는 맞춰보지 않았지만, 같은 해, 같은 날 태어났으니까 그럴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지. 

  른 누구는 또 우리를 보고 대놓고 농담을 했지.

  "둘이 살면 잘 살겠네. 동갑이고 사주팔자도 같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T 씨를 인간적으로는 좋아했지만 이성적으로는 관심이 없었어. 이미 오랫동안 사귀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그와 결혼할 마음을 정했기 때문이야.


  소설 동아리 비밀커플이었던 T 씨와 Y 너, 두 사람이 사귄다는 게 동아리 사람들에게 알려졌네. 우리는 모두가 축하해 주는 결혼식을 했었네. 결국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더니 지도하시는 이호철 선생님이 우리들 주례를 다 했네.


  결혼 후 나는 가끔 우리 남편도 그 모임에 데리고 갔어. 소설에는 전혀 문외한인데도 열심히 참석해 주었어. 너희 부부는 당연히 함께 나왔고. 그래서 우린 자연스럽게 소설 동아리 모임에서 가족처럼 잘 어우러졌지.


  T 씨는 공무원을 하다가 그만두고 소설을 썼고, 너는 S여대 국문과 대학원까지 나와서도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소설 주변을 기웃거렸고, 나 역시 전공은 시인데 소설을 쓴다고 남의 동네를 어슬렁거렸고 말이야. 우리 모두 아직은 제대로 소설에 닻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어. 소설깨나 쓴다는 나이 많은 노처녀  언니 둘은 등단을 하고 소설집도 냈지만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떠났고 말이야.


  결혼 후 너희 부부는 지방으로 이사를 갔네. 그리고 Y 너는 글쓰기 지도를 한다고 했고, 남편 T 씨는 Y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하고 러시아로 유학을 떠났어. 꽤 시간이 오래 걸렸지. 다녀와서 시간강사 자리를 얻어 지방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면서 소설도 쓰고 그랬다지. 물론 소설로 등단도 했고 창작지원금 같은 걸 받아서 소설집도 냈지. 열심히 하니까 되긴 되더라. 책에 사인을 해서 보내와서 아주 잘 읽었어. 러시아에서 경험한 일들이 묻어 있는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소설이더라.

 

  Y 너는 전혀 소설은 안 쓰고 아이들 가르치면서 생계에만 몰두하느라 소설은 아예 잊었는가 싶었지. 거기다가 친정아버지  병간까지 하면서는 가끔 만나는 모임에도 거의 나오지 못했어. 물론 나도  신학을 하면서는 술도 끊었고, 그 모임에도 안 나가게 되었지.


  그런데, 지난해였던가? Y 네가 아버지 부고 소식을 전해왔고, 얼마 후 신춘문예 동화부문에 당선되었다고 했어. 또 깜짝 놀랐지 뭐야. 정작 동화를 써보려고 몇 년 전에 동화학교 1년 과정까지 마친 나는 아직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 신춘문예 같은 데도 한 번 응모해보지 못했는데 말이야. 소리소문 없이 준비한 너는 소설가가 아닌 동화작가가 된 거지.  


  나는 동화 대신 그림책을 또 공부해서 그림책을 냈어. 그림은 좋아해서 오래 그렸으니까, 시도 계속 썼으니까, 그림과 시가 어우러진 그림책이 나한테는 잘 맞더라. 다행이야.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장르는 좀 다르지만 함께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으니까 꿈꾸던 일이 이루어진 거네.


  우리도 꽤 손 편지를 썼었어. 그렇지? 연말이면 성탄카드며 신년카드도 주고받았고, 책 낼 때마다 서로 사인을 해서 손 편지와 함께 보냈고 말이야.

  "내 그림책은 직접 구입해 줘서 고마워."


  T 씨와 Y 너,

  T 씨는 동갑이라도 꼭 나에게 '순오 씨'라 부르고, Y 너도 내가 너보다 한 살 많다고 깍듯이 '순오 언니'라고 불러주지. 우린 지금까지 이름을 쉽게 함부로 부른 적이 없네. 그래서 그런지 너희 부부와 우리 부부는 더 정중한 느낌이 들어.


  우리 서로 마음으로 응원하면서 좋은 글을 쓰자꾸나!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꾸준히 쓰는 자가 이기는 야. 글은 쓰면 쓴 만큼 느니까. 글쓰기가 주업인 '작가'라는 이름은 계속 쓰는 사람에게 빛나는 것이니까. 우리를 지도하신 이호철 선생님이 몸의 기력이 다 때까지도 소설 쓰는 일을 멈추지 않으신 것처럼 우 그분의 제자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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