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에 대하여

by 서순오

한강 작가가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22년, 2023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작품을 읽어보고는 나는 더 이상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읽지 않기로 했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직접 포르노 배우가 되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칼질을 한 작가였고, 욘 포세 역시 미성년자가 아이를 낳아 방을 구하러 다니는 이야기를 성경의 마리아와 요셉 이야기와 오버랩 되게 썼다. 노벨문학상을 받았기에 이들의 책을 사놓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경우를 만났다.


불륜에 바람에 포르노 같은 성적 묘사에 그 어떤 의미도 발견하지 못했다. 독약을 보기 좋은 맛있는 주스에 타서 먹으라고 하면 그걸 마시는 사람은 결국 죽는 것이다. 소설가로서 아름다운 문장과 스토리를 엮어가는 재주가 문제인 것이다.


노벨문학상 상금은 13억 이상이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이 거액의 상금 때문이 아닐까?


또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후 서점가에서는 한강 작가의 책이 너무나 많이 팔려서 동이 난 상태란다. 그러니 완전히 대박이 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슬픈 노벨상>(정화진, 파란자전거, 부제 : 인류를 구했던 영광의 노벨상, 왜 인류의 재앙이 되었는가?)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노벨'이 누구인가? 그는 '다이너마이트'라는 살상무기를 만든 이가 아니던가? 노벨상을 만든 이나 노벨상 수상자들이 인류를 위해 유익한 일을 한 것이 맞는가? 올해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거의 AI와 관련된 인물이 많다. AI는 인류를 이롭게 할 것인가?


폭력과 전쟁을 거부하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벨이 어떤 사람인가를 밝히고 노벨상을 거부해야 하는 게 아닐까? 세계가 전쟁 중이기에 축하잔치나 기자회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정도로 될까?


2019년에 나는 노벨문학상을 타기 전의 한강 작가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아 보았다. 그저 독자로서, 또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렇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1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채식주의자>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사람들이 서점에 줄을 서서 <채식주의자>를 사려는 것에 대해서는 염려가 앞선다. 경기도에서는 한때 청소년성교육유해도서로 한강 작가의 작품을 선정해서 학교마다 폐기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또 신문을 보니 아니라고 발뺌을 한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 책이 청소년성교육유해도서가 아니란 말인가? 책은 그 어떤 제재도 없는 상태로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쉽게 다가가 읽히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것이 치명적일 수도 있다. 단지 책 한권으로 판단력이 미숙하고 감정이 앞서는 미성년자들의 일생을 망칠 수도 있는 것이다.


<채식주의자>의 줄거리를 보건대 아버지의 폭력을 경험한 주인공 영혜는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을 한다. 그런데 예술가 형부가 몽고반점을 지닌 처제의 몸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 결국 처제의 발가벗은 몸에 그림을 그리면서 둘은 성관계를 아주 예술적으로(?) 한다. 지어는 이것을 예술이리는 명목으로 비디오 촬영도 한다.(책을 다 읽고 나면 오직 그 장면만이 강렬하게 남는다.)


그 후 영혜는 정신병을 앓고 정신병원에서 격리된 채 살다가 자살을 한다. 형부와 언니는 이혼을 하고 언니는 끝까지 영혜를 돌본다. 그러나 동생 영혜가 부서져가는 걸 막지는 못한다. 언니는 왜 똑같은 불륜의 죄를 지어서 자신을 배신했는데 남편은 용서하지 못하고 동생은 용납한 것일까?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을 계속 찾아가면서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인공 영혜는 그 누구에게서도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 부모도 남편도 언니도 형부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의무감이나 탐미의 대상으로 대할 뿐이다. 그녀가 완전히 망가져가는 이유이다.


만일 청소년인 자녀가 이 책을 읽고 자기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그랬다면 무어라고 말할까? 노벨문학상을 받은 권위있는 작품이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문신이 유행한 이유가 이 책의 영향이 아닌가 의심해 보는 중이다. 근친상간이라는 성적 문제를 탐미적으로 혹하게 표현한 것은 더 큰 문제이지만, 문신 또한 사회적으로 참으로 이상한 풍조인 것이다.


작가는 모름지기 사회를 좋은 쪽으로 이끌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상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거액의 돈을 받으니까 의미가 있다고? 자본주의 사회이니까 돈이면 다라고?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은 좋은 작품으로 읽었다. 나는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강 작가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정하고, 참으로 아름다운 소설가라고 생각했다. <흰>은 생각보다는 짧은 시적인 작품이라 조금 가볍다고 생각되었고, 구조가 202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올가토카르추크 작품 <태고의 시간들>의 영향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아무튼 2019년에 한강 작가의 작품은 거의 다 사두었기에 다시 꼼꼼하게 읽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그 후에 내 나름의 평가를 해보아야겠다.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읽지 않기로 해놓고, 그이가 내가 관심을 가졌던 한강 작가이기에 모두 다 읽어보기로 한 것은 어째 이율배반 같아 보인다. 그러나 모두 분석해 보아야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듯하다.



*이전에 읽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책에 대한 나의 리뷰이다.

https://brunch.co.kr/@31f8f10fc4fe4f2/80


♡<슬픈 노벨상>(정화진, 파란자전거)♡

https://m.blog.naver.com/bookanddebate/22338748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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