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로 가는 길

제139주년 이화개교기념일&이화바자회

by 서순오

이화로 가는 길은 늘 풋풋하고 사색이 있는 길이다. 1호선 전철을 타고 가서 서울시청역에 내려서 1번 출구 밖으로 나가면 서울시청과 덕수궁 정문이 보인다. 덕수궁 왼쪽길로 들어서면 덕수궁 돌담길 지나서 이화 돌담길이 이어서 나타난다. 그 길은 정동길이다.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 분수대, 정동극장, 이화예중 등을 지나간다. 참 아름다운 길이다. 여고에 다니던 시절에는 그리 예쁘다 여기지 못했지만 그 고풍스러운 길을 날마다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지금은 안다. 내가 여행과 등산을 좋아하게 된 것이 바로 이 길을 걸었던 추억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브런치에 산행기를 쓰면서 걷기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와 여중학교를 걸어서 다녔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 이화로 가는 길 역시 서울시청역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이지만, 당시에는 지하철이 없어서 버스를 타고 다녔기에 남대문정류장에서 내려 여고까지 30여 분 가까이 걸어가야 했었다. 내게는 걷는 것이 생활이어서 많이 걷게 되었고 만큼 는 것이 좋았다. 걷는 것 자체도 좋지만 예쁘고 고풍스러운 길이라면 얼마나 더 의미가 있겠는가?


이화여고 동문을 들어서면 백주년기념관, 이화박물관, 스크랜튼홀이 보인다. 스크랜튼홀 쪽으로는 인동덩굴이 꼬불꼬불한 연노랑 꽃을 활짝 피웠다. 왼쪽 길로 돌아가 이화 창설자이신 스크랜튼 선교사님 흉상과 한국여성 신교육의 발상지 돌비를 지나간다. 향기가 진한 빨간 장미 덩굴, 이제 막 연둣빛 꽃망울을 맺고 있는 수국, 은은한 향이 코끝을 자극하는 고광나무 등 꽃들이 예쁘게 피어있다. 그동안 여러 번 이화에 왔지만 고광나무는 처음 눈을 맞추는 꽃이다. 우리가 보는 것들이 얼마나 부분적인가를 느낀다. 꽃송이에 다가가 꼬를 대고 향기를 음미해 본다. 내 몸에서 늘 풍겼으면 좋을 것 같은 천연의 싱그러운 향이다.


노천극장의 돌계단 원형을 담으며 늘 예배드리고 조회를 하던 옛 생각을 한다. 이화창립 139주년 기념행사는 오전 10시에 류관순기념관에서 있지만, 나는 조금 시간 여유를 두고 나왔기에 이화교정을 더 돌아보기로 한다. 노천극장 위 등나무 길을 지나 이화외고로 가는 등나무길을 담고, 장미터널 쪽으로 내려간다. 해마다 이곳 장미터널은 장미꽃이 아주 풍성하게 피어 예뻤는데, 올해는 조금 덜 핀 것인지 이미 피었다 진 것인지 기대한 만큼은 아니다. 그래도 장미터널 계단을 내려가니 백장미가 만개한 곳이 나온다. 순백의 장미꽃 앞에서 한참 바라본다. 지나가는 이가 있으면 개인사진을 남길 수 있으련만, 아쉬워하고 있는데, 선배님 한 분이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면서 걷고 있어서 차마 사진 부탁을 못하고 장미꽃만 담고 행사장으로 내려간다.


류관순 기념관 앞에는 각 기별 현수막과 이화바자회가 준비를 마쳤다. 류관순기념관 홀 입구와 복도에도 물품 판매 코너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기념식장 안으로 들어간다. 오른쪽 앞쪽이 일반 동창석이다. 30주년, 50주년 재상봉 동창석은 한가운데 앞쪽이다. 나는 오른쪽 앞쪽으로 가서 앉는다. 식이 진행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기념식에 참여하는 게 참 좋다. 이화 교목 목사님 기도와 교장선생님 인사말도 듣고, 이화근속상과 이화를 빛낸 상 수상자들 축하와 축복도 빌어 드린다. 우리 이화 80 친구 중에는 윤희상 친구가 간호학 학술분야에서 이화를 빛낸 상을 수상한다. 그리고, 재학생 후배들의 찬송가 합창과 동창합창단의 합창도 감개가 무량하다. 재상봉 동창들이 마련한 이화 모교와 동창회 발전기금과 류관순기념관 개축기금, 장학금 수여식 등도 의미가 있다. 끝으로 다 함께 부르는 이화교가는 언제 불러도 가슴이 뭉클하다.

"아아, 이화 이화 만만세 만만세 우리 이화"

특별히 후렴을 부를 때는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된다. 우리가 이화인인 것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기념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우리 기수 물품판매 장소를 먼저 찾아본다. 개인부스로 운영 중인데 이성미 친구가 셋이서 수제팔찌를 팔고 있다. 나는 지난번 서울숲치유 모임 때 만나서 분홍색을 샀는데, 울 딸에게 선물하고, 또 초록색으로 한 개 더 샀다. 친구들이 꽤 샀는데, 다들 이쁘다고 난리다.


이제 이화 80 천막으로 가서 정모를 한다. 길거리셰프 고향칼국수 조윤선 친구가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광장시장 꼬마김밥으로 점심을 섬겨주었다. 정작 본인은 바빠서 참석을 못하면서도 우리 이화 80 친구들을 위해 맛있는 김밥을 사서 보낸 것이다. 카페오아시스의 정선희 친구가 쿠키와 오렌지주스 원액, 이화를 빛낸 상 수상자 윤희상 친구가 아이스커피, 강북삼성병원 의사인 정혜림 회장님이 도넛, 그리고 이화 80 회비로 이화주름장바구니 선물까지 아주 푸짐하다. 우리 동기인 이혜정 목사님 기도 후 일정 설명, 회계 보고 듣고 점심 먹고 단체사진과 삼삼오오 기념사진을 찍는다.


정모 마치고 친구들은 바자회 둘러보며 물건을 사는데, 나는 며칠 전부터 열린 온라인 이화마겟에서 초록 가죽백팩과 유칼립투스 샴푸, 기능성 내의, 손수건, 에코가방 등을 샀기에 따로 더 물건을 사지는 않는다. 이따 정모 마치고 집에 갈 때 이화바자회 본부석에서 찾아가면 된다.


다음 순서로는 이화박물관 관람을 한다. 김서연 친구가 이화박물관 봉사를 하고 있어서 우리를 데리고 다니며 안내를 해준다. 즐겁게 기쁘게 구석구석 관람을 한다. 류관순 열사 선배님을 비롯해서 많은 훌륭한 이화인들의 숨결이 느껴진다. 나는 류관순 열사의 사진과 기록물이 전시된 곳에서 사진을 남겨본다.

"나라를 위해 내놓을 목숨이 하나밖에 없다. 이것이 유일한 슬픔이다."


이화로 가는 길은 예쁘고 고풍스러운 길이지만 또 의미 있는 길이다. 여성교육의 새 장을 열어주신 스크랜튼 선교사님과 대한독립을 외쳤던 류관순 열사의 뜻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하다.


제21대 대선의 시기에 내란을 종식하고 새로운 국민주권의 시대를 열어가려는 이때에 참으로 뜻깊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어려움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하기에 늘 깨어있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가? 우리가 누구인가?"

나는, 우리는, 바로 시대를 선도해 나가는 자랑스러운 이화인인 것이다. 언제나 이화로 가는 길 한가운데에 나와 우리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고시절 매일 등교하던 덕수궁 돌담길과 이화 돌담길
정동길에서 보이는 이화 이름표
인동덩굴
이화여교 창설자 스크랜튼 선교사님 흉상
한국여성 신교육발상지 돌비
수국, 고광나무
이화여고 노천극장
이화교정 등나무길
이화교정 장미터널
이화교정 장미꽃 앞에서
이화창립 제139주년 기념식
이화를 빛낸 상 학술부문 수상 윤희상(이화 80) 친구 "축하해요!"
이화 80 천막에서 정모
이화여고 노천극장에서
이화창립 139주년 현수막 앞에서
이화 80 친구들과 이화박물관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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