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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현충사와 기둥에 쓴 글귀, 주련

아산 여행(1) : 현충사, 이순신 기념관

by 서순오

현충사는 여고 시절에 한 번 가 보았다. 그때 펜팔친구로 사귀었던 군인 오빠가 천안에 살고 있어서 나를 초대해서 구경을 시켜주었다. 나 혼자 찍은 사진이 한 장 앨범 속에 있다. 기억으로는 그리 자세히 둘러본 것 같지는 않고 이순신 기념관과 이순신 장군 영정이 있는 현충사를 본 것 같다.


그리고 한 15년쯤 전에 진천 어느 교회에서 하는 행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같은 자동차를 타고 오던 분들과 대전 현충원에 들렀다. 잠시 돌아보고 기념사진을 찍고 왔다. 병천에 들러 배가 터지게 꽉 찬 아비이순대와 순댓국도 먹었다. 그런데 나는 현충원과 현충사를 좀 헷갈렸다. 같은 장소로 생각을 했다. 가보니까 다른 곳이다.


천안은 우리 이화 선배님이신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장소가 있어서 그때 또 가서 자세히 보았었다. 물론 기억은 아련하다. 다시 가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매년 이화 3.1절 행사로 유관순 열사 유적지에 가서 하는 행사가 있는데 총동창회 임원진이 참석을 한다.


아산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있고, 천안은 류관순 열사가 있고, 대전은 현충원 있으니 천안, 아산, 대전이 가히 애국자의 도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추억이 더 있지만, 그것은 또 아주 사적인 것이어서 이곳에는 적지 않는다. 대전 계족산도 올라 보았고, 천안 광덕산은 혼산으로 한번 가보았고, 대천 해수욕장도 바다를 보며 걸어보았고, 대전에는 여고 친구도 있어서 맛집도 여러 곳 탐방하였다.


오늘 아산 여행은 현충사, 이순신 기념관, 곡교천 둘레길, 온양시장, 외암민속마을, 고구마 캐기 체험, 이순신 묘소 등을 돌아보는 코스이다.


가장 먼저 오전 9시 30분에 현충사에 도착해서 해설사님과 조우한다. 현충사라는 역사적인 장소를 안내하는 만큼 해설사님의 목소리며 태도가 다부지고 자부심이 느껴진다.


현충사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여서 조성한 장소라고 한다. 건물마다 현판 글씨가 모두 박정희 대통령 글씨란다. 충무문, 충의문, 현충사 등 아담하고 귀여운 동글동글한 글씨체이다. 군인 출신인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을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장군은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집권으로 인해 '독재'라는 타이틀이 붙긴 했지만, 우리나라를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으니 공과가 분명한 대통령이 아닐까 싶다.


해설사님은 우리를 데리고 현충사를 걸으면서 소나무, 화살나무, 산사나무 등을 설명해 준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배를 만들 때 사용한다는데 무겁고 단단하다고 한다. 화살나무는 잎이 코르크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고 산사나무는 내가 산행할 때 자주 보던 나무라서 익숙하다.


길에 철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어서 지나가는데 현충사 달빛야행 때 불빛이 들어오도록 한 것이라서 밤에 더 멋지다고 알려준다.


가장 먼저 두 번째 지었다는 현충사로 간다. 이 현충사는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안에 가득 찬 것들이 보인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첫 번째 현충사가 훼철된 후 일제강점기인 1953년에 세워진 현충사라고 한다. 어떻게 일제강점기에 이런 현충사가 세워졌을까? 바로 이 땅이 부채로 인해 경매에 넘어갈 뻔했단다. 그런데, 동아일보에 기사가 난 후 초등학생들이 돈을 모아 보내면서 전국적으로 그 애국심이 번져서 국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서 빚을 다 갚고도 이 현충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단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참으로 못 해내는 게 없는 국민임을 알 수 있다. 위기에 더 강한 민족이라고나 할까?

"위기는 바로 기회이다!"

요즘 불법 비상계엄으로 전직 대통령이 탄핵, 파면되고, 새로 선출되어 국민주권정부를 이룬 이재명 대통령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다.


첫 번째 현충사는 없어졌으니 두 번째 현충사가 실제 가장 오래된 현충사이다.

"이 안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백성들의 마음이 가득 차 있는 거예요."

그렇다. 바로 애국심이 이 안에 가득 담겨 있는 것이다. 나는 현충사 안을 일부러 한 번 깊숙이 들여다본 후 기동에 쓰인 글귀 '주련'에 대한 안내를 읽어본다.


주련(柱聯)은 기둥이나 벽 등에 글씨나 시구를 써 붙이거나 새기는 문장 또는 글로서, 고 한용운 선생 유필이다.


一柱橫山萬古靑 일주회산만고청

바다와 산이 평화스럽고 강산을 후세에 이르도록 새롭게 하며

東方文化三韓地 동방문화삼한지

천지를 구름으로 덮어서 내셔서 자랑함이 없으니

民安國泰日光明 민안국태일광명

인을 이루고 의를 위하여 지극한 충성을 다함으로써 빛나고

萬里春風滿朝野 만리춘풍만조야

높고 밝은 공덕은 온 나라를 덮었네


주련이란 한문 또는 한글로 된 시구나 격언 따위를 적어 건물의 기둥이나 벽면에 써 붙이는 글이다. 이 주련은 현충사 본전에 한용운 선생이 직접 쓴 것으로, 현충사의 본전 정면과 좌우 기둥에 걸려 있는 글씨이다.


AI에게 물어보니 뜻풀이도 해준다.


♡주련(柱聯)♡


一柱橫山萬古靑 일주횡산만고청

한 기둥이 산에 가로놓여 만세토록 푸르도다. (나라의 기둥처럼 굳건하고 영원히 청정함을 비유한 구절이다.)


東方文化三韓地 동방문화삼한지

동방의 문화는 삼한 땅에서 비롯되었네.

(우리나라가 동방 문화의 뿌리임을 자랑하는 구절이다.)


民安國泰日光明 민안국태일광명

백성이 편안하고 나라가 태평하니 날로 밝아지네. (백성과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는 말이다.)


萬里春風滿朝野 만리춘풍만조야

만 리에 봄바람이 불어 조정과 들판에 가득하도다. (온 나라에 평화와 화목이 퍼진다는 뜻이다.)


전체 요약 의미 : 한용운 선생의 이 주련은 나라의 평화와 번영, 국민의 안녕, 문화의 자긍심을 노래한 시구로,

현충사(顯忠祠)의 본전에 걸려 충절과 평화를 기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이제 소나무길을 걸어 홍살문을 지나 세 번째 현충사로 올라간다. 홍살문은 기둥이 붉은색이고 나쁜 것을 쫒는다는 의미이며 위에 세워진 살이 11개이다. 뾰족한 살은 7개, 9개, 11개 등 홀수로 세운다는데 이곳은 개수가 많은 것이 더 귀중한 장소로 가는 곳임을 알려준단다.


번째 현충사로 오르기 전에 계단 옆 왼쪽에 신기한 돌이 놓여 있다.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더 크게 표시된 지도 모양의 신기한 돌이다.

"한 때 일본 제국주의 침략으로 우리나라가 식민 통치를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바로 이렇게 되어가고 있죠!"

해설사님의 의기양양한 설명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곧 일본을 앞설 날이 올 거야!'


번째 현충사 안에는 우리나라 표준영정 1호라는 이순신 장군 초상화가 있다. 2호는 세종대왕 초상화라고 한다. 둘 다 상상으로 그렸다고 하니 실제 모습은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서 찾아보니 한국에 와서 실제 한국인과 생활풍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영국화가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과 실제 이순신 장군과 같이 과거에 급제해서 직접 얼굴을 보았다는 이의 글 등을 토대로 청천 이상백 화백이 그린, 표준 영정과는 다른, 이순신 장군 초상화가 있다. 이순신 장군은 100원짜리 동전에도 새겨져 있어서 익숙하지만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순신 장군이 이걸 아시면 무어라고 하실까?

"그건 내 얼굴이 아니야. 똑바로 그려줘!"

그러지 않으실까 싶다.


현충사 안 양쪽으로는 홍깃발과 청깃발이 있다. 진지로 들어갈 때 저 깃발이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진에 들어오는 이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제대로 가려내기 위한 방법이었던 거다.


현충사를 뒤로 하고 내려다보니 정면으로 설화산이 보인다. 현충사 뒤로는 방화산이 자리 잡고 있단다.


왼쪽 옆 문으로 내려가 이순신 장군이 10년 간 살았다는 고택으로 간다. 이곳은 처갓집이었다는데, 예전에는 처가에 사는 것이 흔했다고 한다. 장인어른이 무인이었는데 장군이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장가들기 전에는 문과 쪽이었는데 장가든 후 무과로 바뀐 걸 보면 아무래도 장인의 영향이 있었을 듯하단다.


해설사님이 이순신 장군의 부인에 대한 어렸을 적 일화도 들려준다. 한 번은 집에 도둑이 들었는데 활쏘기의 명수인 아버지가 화살을 쏘다가 화살이 다 떨어졌단다.

"화살 가져오너라!"

아버지가 큰소리로 얘기하자 딸인 이순신 장군 부인이 대나무 살 한 묶음을 안고 와서 방바닥에 와르르 쏟아놓으면서 말했단다.

"아버지 화살 여기 있습니다."

"화살이 저렇게나 많으면 우리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게 뻔하다."

도둑들이 혼비백산하여 다 도망갔단다. 이순신 장군 부인은 어렸을 적부터 그 정도로 담력이 있었단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인 이순신 장군의 부인이 되려면 그 정도의 담력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남편의 지위와 부가 아내를 만들기도 하지만, 또한 아내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남편을 만들기도 한다. 서로 잘 만나면 집안과 사회와 역사를 좋은 쪽으로 바꾸지만, 잘못 만나면 패가망신은 물론 사회와 나라도 수렁으로 빠뜨리고 망조가 들게 한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번 새겨본다. 그중에서도 부부의 만남은 더욱 그러하다.


이순신 장국 고택 옆에는 수령이 570년이나 된 은행나무 고목이 있다. 이 나무는 역사를 알고 있다. 참으로 오래 사는 나무에게는 할 말을 잃는다. 그 유구무언을 그저 짐작해 볼 뿐이다.


은행나무 왼쪽에는 이순신 장군의 후손 묘가 있다.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익어가는 감나무 두어 그루가 고택과 무덤과 은행나무 사이에서 탐스럽게 서 있다. 감나무 한 그루에서는 감이 몇 개나 열릴까 문득 궁금해진다.


이순신기념관으로 간다. 시간이 30여 분 정도밖에 안 남아서 휙 돌아본다. 꼼꼼하게 다 돌아보고 싶은데 조금 아쉽다. 그래도 교지와 난중일기 윈본을 보고, 현충사에서 가까이 볼 수 없었던 이순신 장군 영정과 화포, 화살, 대포, 장칼, 거북선 등을 본다. 군데군데 미디어 아트도 설치되어 있어서 신비감을 느끼며 둘러본다.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현충사 앞 노란 단풍길을 걸어 '필생즉사'(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으리라) 돌비를 담고 버스에 탑승한다. 1시간 3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 역시나 그냥 휙 돌아보는 것보다는 해설사님의 안내를 받는 것이 좋다. 이따 마지막 코스인 이순신 묘소에서 이 해설사님을 또 만난다고 한다. 순신 장군의 삶과 죽음을 모두 볼 수 있겠다.

현충사 둘레길, 이순신 유허 안내
충무문
충무문에서
화살나무
두 번째 현충사와 주련
현충사 달빛야행
세 번째 현충사로 가는 충의문
우리나라 표준영정 1호 이순신 장군 초상화, 홍깃발과 청깃발
세 번째 현충사에서 바라보는 설화산
이순신 장군이 10년 간 살았다는 처갓집 고택
AI가 그려준 지브리풍 사진 : 이순신 장군 고택에서
수령이 570년 된 보호수 은행나무
이순신 기념관
이순신 기억과 기록
우리나라 표준영정 1호 이순신 장군 초상화
영국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무인 초상화와 청천 이상백 화백이 복원해본 이순신 장군 초상화(경향신문, 2019. 7.7)
교지
난중일기
화포, 화살, 화살통, 대포, 장칼, 거북선
'필생즉사'(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으리라) 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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