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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순오 Jan 20. 2023

꿈보다 소중한 것은?

영화 <크루엘라>

요즘 소설도 영화도 인기 있는 것들은 대체로 악령과 악한, 복수와 자살을 다룬 것들이 많다. 유명한 소설가들도 감독들도 부정적인 죽음의 세계를 다루어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어쩌다 세상이 이리되었을까?


그 유명한 스티븐 킹의 단편모음집 중에는 <악몽을 파는 가게 1.2>가 있다. 그중 무슨 상을 받았다는 작품 <부고>를 읽어보니까 주인공이 어떤 사람에 대해서 부고를 쓰면 그 사람이 죽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아무 감정이 없는 사람(그러나 그는 유명한 나쁜 사람이다)의 기사를 보고, 주인공이 부고 기사를 쓰면 그 사람이 그 시간에 맞춰서 죽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사실 우리가 하는 말과 생각도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말과 생각은 자기 할 일을 스스로 해낼 사명을 타고나는 것이다. 내가 누구를 저주하거나 미워하면 그 사람에게 신기하게 그것이 미치는 것을 본다.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말과 생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하물며 글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사람을 살리지는 못할 망정 '살아있는 사람이 죽었다'는 부고를 쓰다니 말이다. 아무리 악한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사람을 죽일 권한은 없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소설이지만 너무나 끔찍하다.


이영하 소설가 역시 <여행의 이유>라는 산문집을 읽고 좋아서 그의 소설을 조금 찾아서 읽어보았는데, 살인 내지는 자살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살인의 추억>, <나는 나를 파괴할 리가 있다>가 그렇다. 도대체 이런 소설을 왜 쓰는지 모르겠다. 성적으로도 문란하고, 대체로 여자들이 성적도구로 사용되고 자살을 한다. 이런 글을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쓰고, 이걸 읽는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살인을 하거나 자살을 시도한다면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일까?


유명하다고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다는 아닌 것이다.


하긴 예전에도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당시에 자살이 유행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많은 젊은이들이 베르테르의 슬픔에 100% 공감한 것이다. 괴테는 그저 작품을 썼을 뿐이기에 무죄일까?


이 땅에서의 삶은 그저 살다가 가면 된다. 착한 사람은 착한 대로, 악한 사람은 악한 대로. 그러나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다.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평가가 있는 것이다. 그 대가는 영원히 이어진다. 영생이냐 영벌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이런 기독교 신앙을 가진 내가 전혀 다른 관점의 작품인 소설이나 영화를 읽고 보는 것은 이 세태를 파악해보고 싶어서이다.


영화 <크루엘라>에서 '크루엘라'는 '잔인한 여인'이라는 뜻이란다. 도대체 어떤 영화일지 궁금하다.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무엇을 선물할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고 나니  <크루엘라>는 생각했던 것보다 박진감이 넘치는 영화이다. 제목을 왜 이렇게 자극적으로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도전적인 여성상을 다룬 것이다. 튀는 여자, 개성이 강한 여자, 자기 집착이 강한 여자, 꿈을 실현하는 데 거침이 없는 여자를 다루고 있다. 꿈을 이루는 데는 만만치 않은 적수가 나타난다. 설사 그 적수가 딸이라도, 엄마라 하더라도, 나보다 더 뛰어난 자는 허용할 수가 없다. 오직 물리쳐야 할 대상일 뿐이다. 섬뜩한 영화이다. 그러나 꿈을 실현하는데 그만한 각오와 전투라면 반드시 꿈을 이루고야 말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꿈을 이루는 것은 가족보다 소중할까? 가정은 '천국의 모형'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그런 가정이  얼마나 있을까?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사랑하는 부모가 있고, 부모님을 존경하고 공경하는 자녀가 있고, 형제간에 목숨보다 소중한 우애가 있는 가정 말이다.


영화 <크루엘라>를 보니 이와는 반대로 '꿈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인간화가 극에 달했다'라고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꿈 때문에 어머니는 딸을 낳아 버린다. 사실을 알게 된 딸은 복수하기 위해 자기 어머니를 죽인다. 결국  마지막 승자가 된 딸, 패션여왕 크루엘라가 당당하게 들어가는 곳은 화려한 성 '헬 홀(지옥 홀)'이다. 모두를 거침없이 넘어뜨리고 꿈을 이루어낸 '잔인한 세상'인 것이다.


영화 <크루엘라>는 꿈보다 더 소중한 가치인 '가족', 그리고 '희생과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이다. 꿈이 아닌 가정과 사랑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그런 세상이 바로 천국인 것이다. 마땅히 사랑받을 자격이 없더라도, 사랑하기에 죽기까지 나를 다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천국 홀'이다. 예수님처럼, '위대한 개츠비'처럼 말이다.

영화 <크루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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