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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축친놈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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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재 Nov 08. 2024

펄-럭

 박지성 선수는 내가 축구선수로서도 인간으로서도 너무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는 내가 처음 공을 가지고 운동장에 나가게 만들었다. 내 인생 첫 유니폼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그의 유니폼이었고 언제나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거의 한국 해외 축구 팬덤의 대부분을 양성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시절 우리의 수면을 빼앗아 간 맨유의 13번이자 한국 축구대표팀의 영원한 주장인 그는, 개인보다는 팀을 위해서 플레이하던 위대한 선수였다. 때문에 이 선수의 능력을 체력으로만 치부하는 평판이 들릴 때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실제 경기를 보다 보면 활동량은 기본이고 양발을 이용한 깔끔한 패스, 뛰어난 전술이해도,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알게 해주는 위치선정 등 다재다능함이 있었던 선수였는데 말이다. 거기에 항상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태도는 많은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새로운 스타의 등장을 알렸던 2002 한일 월드컵부터 전성기를 구가하던 맨유시절까지 '해버지'의 플레이를 본 사람들이 많기에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긴 하다. 하지만 비교적 덜 알려진 맨유로 입성하기 이전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박지성은 대학 시절 선수로 활동하다 학교를 휴학하고 바로 일본의 J리그넘어간 특이한 케이스다. 국내선수로는 최연소로 J리그 교토 퍼플 상가에 입단했다. 게다가 이때 받았던 대우는 당시 K리그 최고 연봉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교토는 박지성에 대한 대우가 좋긴 했지만 다른 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팀이었다. 때문에 소년가장의 역할을 자처하던 박지성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강등되었고 돌아오는 시즌부터 2부 리그에서 뛰게 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강등 1 시즌만에 바로 1부 리그 복귀에 성공한다. 이때 그는 "2부에선 이기는 경기가 많아서 좋았다. 월드컵에 뽑히려면 내년엔 1부에 가야 하니 우승하고 싶었다"라는 말을 통해 2부 리그의 경험을 회상했다. 


 그렇게 1부, 2부를 가리지 않고 J리그에서 꾸준한 활약을 한 박지성은 그의 바람대로 월드컵 최종 명단에 발탁되고 그 대회는 '전설의 2002 한일 월드컵'이다. 한일월드컵의 자세한 이야기는 대부분이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하겠다. 그는 월드컵이 끝난 후 깊은 여운을 뒤로한 채 소속팀으로 복귀했다. 월드컵 이전에 교토의 소년가장이었던 그는 월드컵을 통해 그냥 가장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박지성은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통해 대표팀 감독이었던 히딩크 감독의 두 번째 부름을 받게 되었다. 대표팀 선배였던 이영표와 함께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으로부터 이적제의가 왔던 것이다. 유럽에 대한 열망이 있던 그는 에인트호번과의 계약을 빠르게 마무리 지었다. 당시 소속팀 교토에서는 계약기간 만료일까지 뛰고 잠깐의 휴식을 갖고 바로 합류하기로 했다. 


 2002년 12월 28일, 강등을 당했다가 다시 올라올 만큼, 우승컵과는 연이 없었던 교토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일왕배 대회에서 처음으로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결승전은 2003년 1월 1일인데, 박지성의 계약기간은 2002년 12월 31일까지였던 것이다. 팀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박지성이 경기를 뛰지 못한다면 결승전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때문에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경기였지만 팀의 사기는 내려앉았고 점차 패색이 짙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 그는 2~3년간 몸 담았던 팀에 보답하고 싶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교토는 참 고마운 곳이다. 대학생이었던 선수를 프로로 데뷔시켜 주었고, 2부 리그였지만 리그 우승도 경험했으며, 이때 활약으로 월드컵에서도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유럽까지 진출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때문에 그는 그곳을 떠나기 전에 트로피를 남기고 간다면 정말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계약기간이 전부 끝난 상황에 이적 전 부상 예방 차원에서도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결승전을 뛸 필요는 없었다. 때문에 박지성이 결승전에 뛸 것이라는 생각을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어쩌면 교토가 트로피를 들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출전하게 된다. 이때 박지성은 교토를 위해 돈을 단 한 푼도 받지 않고 무보수로 경기를 치렀다. 게다가 결승전에서 그는 1골 1 도움을 기록하며 구단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트로피를 안겼다. 이때 교토의 구단주는 팀의 역사를 쓰고 꿈을 위해 이적하는 박지성에게 "전 세계 어딜 가든 응원하겠다. 언젠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와 달라. 어떤 일이 생겨 만신창이가 되거나 절름발이가 되더라도 언제든지 널 받아주겠다"라는 헌사를 보냈다. 


 그리고 2023년, 그는 홈경기에 초청받아 20년 만에 교토로 돌아왔다. 팬들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기립박수로 그를 환영했고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박지성은 "오랜만에 교토로 돌아와서 인사드릴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교토는 저에게 정말 소중한 클럽, 잊지 못하는 클럽입니다. 지금까지 응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라며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뽐냈다. 


 연설이 끝나고 그는 팬들에게 인사를 전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 순간 관중석에서는 선수시절 그의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그런 팬들을 보고 회상에 젖은듯한 박지성은 경기장 한 바퀴를 크게 돌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일본 클럽의 경기장이었지만 곳곳에서는 태극기와  지금껏 그가 거쳐온 팀들의 유니폼을 들고 응원하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현지팬들이 들고 있던 걸개에는 '교토의 영웅 박지성 언제나 사랑해요'라는 문구도 있었다. 여기서 가장 놀라운 사실은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이 일본 교토에서 받는 대우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가도, 잉글랜드의 맨체스터가도 마찬가지이다. 아마 그가 지금껏 보여주었던 노력의 대가가 아닐까 싶다. 


"인정받기 위해서 정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다녔다" - 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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