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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축친놈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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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재 Nov 08. 2024

그라운드 위의 모차르트

 드디어 내가 가장 기다리던 시간이 왔다. 이번에 소개할 선수는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다. 그는 악보를 타고 연주를 하는 듯한 유니크한 플레이 스타일로 내 롤모델이 되었다. 그저 패스만 주고받는 것이 '벵거볼'이라고 생각했던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이 선수가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고 비로소 벵거의 철학을 이해했으며 진정한 아스날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하나의 공식이 세워졌다. 


'아스날 = 벵거볼 = 로시츠키'


 토마스 로시츠키는 세스갱 또는 황금 4중주로 불리는 그 시절 아스날의 미드필더이다. 처음부터 아스날에 있던 것은 아니고 체코에 있는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프라하에서의 활약으로 세계무대에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로시츠키는 "은퇴는 프라하에서 할 것"이라는 말을 남긴 채, 당시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 이적료로 독일의 명문 클럽 도르트문트로 떠났다. 시절 도르트문트는 대대적인 리빌딩착수했고 로시츠키를 중심으로 팀을 재건해 나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분데스리가 우승까지 거머쥐게 된다. 게다가 이때 그의 조국 체코는 파벨 네드베드, 토마스 로시츠키, 페트르 체흐, 얀 콜러 등과 함께 피파랭킹 2위까지 올라섰던 시기였다. 때문에 로시츠키의 주가는 천정부지치솟았다. 


 이렇게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던 로시츠키의 상황과는 반대로 도르트문트는 연이은 성적 부진으로 팀의 재정이 악화되었다. 반복되는 악재 속에 결국 로시츠키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이때 로시츠키와 계약을 하기 위해 여러 빅클럽들이 그와 도르트문트에게 접근했지만 그는 아스날만을 원하고 있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토트넘, 첼시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하지만 아스날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1년만 더 기다려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로시츠키는 본인의 바람대로 아스날에 입단하게 되었다. 아스날도 피레스후계자가 필요했고 로시츠키로 대체하기로 했던 것이다. 


 아스날로 이적한 후 그는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과 딱 맞는 아르센 벵거 감독을 만나 꽃을 피우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때부터 너무 잦은 부상으로 유리몸이라는 별명이 생기게 되었고 통계적으로도 참담했다. 10년 동안 머물며 치른 리그 경기의 수는 170여 경기 밖에 되지 않았다. 물론 리그 한정 이긴 하지만 한 해 평균 17경기씩 뛰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방출을 하지 않은 아스날이 대단해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시즌의 20%가량만 소화하는 선수를 방출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다. 벵거의 장기집권으로 아스날의 축구 철학으로 자리 잡은 '벵거볼'을 가장 완벽히 구현했던 선수이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패스 앤 무브먼트로 상대 수비진 사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넘나들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때로는 악보 위에 음표라도 된 듯한 리드미컬한 드리블로, 때로는 우아하고 치명적인 패스로, 때로는 빨랫줄처럼 뻗어 나가는 매혹적인 중거리 슛으로 본인의 다채로운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부상이라는 한계에 부딪혀 재능의 반도 펼치지 못한 안타까운 케이스지만 그는 등장 만으로 경기장 안의 공기의 흐름을 바꾸던 선수였다. 그가 공을 잡고 드리블을 시작하면 경각에 경기의 템포가 바뀌었다. 차분한 클래식에서 강력한 헤비메탈전환되는 느낌이었다. 본인 마음대로 연주하듯 경기를 조율하던 그는 그야말로 보법이 다른 선수였다. 


 반복되는 부상에도 팀이 그를 내칠 없었던 번째 이유는 부상재활세션반복하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폼이었다. 보통 선수가 부상을 당하면 원래의 기량을 찾는 데 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라는 빌 샹클리의 명언의 예외라도 만들려는 듯, 로시츠키는 부상이 너무 많을 뿐 폼도 클래스도 항상 일정했던 선수였다.


 아스날이 정들었던 하이버리(아스날의 예전 홈구장 명칭)를 떠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아스날의 현재 홈구장 명칭)으로 이전을 하게 되면서 겪었던 가장 큰 고통. 바로 주축 선수들이 라이벌 팀으로 이적하는 것. 그 시절 아스날은 팀의 에이스를 타 팀에게 빼앗기는 것이 빈번했지만 '로시츠키' 한 명은 지켰다. 세스갱의 모든 멤버가 떠났을 때에도 끝까지 본인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오직 아스날만을 바라보았던, 축구를 음악으로 표현했던 행위예술가. 팀의 간판스타들의 연이은 이적에도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팀을 지켰던 낭만형 미드필더. 그는 아스날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벵거의 철학이기도 했다. 


 로시츠키는 아스날과 마지막으로 연장한 계약이 종료되자 "아스날이라는 곳은 언제나 나에게 큰 무대였습니다. 나는 아스날에서 행복했습니다"라며 아스날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멘트를 남기고 조용히 팀을 떠나 고국 체코로 돌아갔다. 그가 체코로 돌아간 이유는 팬들과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그는 체코에 돌아가서도 은퇴하기 전까지 그라운드에서 낭만교향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2017년 로시츠키는 약속대로 프라하에서 본인의 마지막 연주회를 마치고 역사 속 한 페이지로 사라졌다. 지금도 그때의 로시츠키의 플레이를 생각하면 꼭 음악이 들리는 것만 같다. 물론 실제로 음악이 들리진 않지만. 아마 그의 플레이를 직접 목격하지 않은 사람은 내 말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아~ 들어갔어요. 토마스 로시츠키! 그라운드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역시 소프라를 위한 아리아, 사랑하는 이여 나에게 오라. 이런 노래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 김동완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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