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스램제'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 말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의 '폴 스콜스', 첼시의 '프랭크 램파드' 그리고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를 지칭하는 말이다. 은퇴한 지 시간이 제법 오래 흘렀지만 '누가 더 뛰어난 미드필더인가'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오늘 우리들의 낭만을 채워줄 선수는 이 세명의 선수 중 잉글랜드 국적이지만 스페인 선수들과 비슷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던 맨유의 원클럽맨 폴 스콜스이다.
1986년에 맨유의 공식 감독이 된 알렉스 퍼거슨은 유소년 시스템을 구축하며 미래를 대비하기로 했다. 스카우터들과 이곳저곳을 돌며 싹이 보이는 재능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축구에 재능을 보이던 스콜스는 스카우터의 눈에 들어 맨유 소속 아카데미로 입단하게 되었다. 아카데미로 입단한 스콜스는 유스 시절을 거쳐 정식으로 프로 계약까지 체결했다. 결과적으로 이때 진행했던 작은 소년과의 계약은 팀의 위대한 역사에 필요한 퍼즐 조각이 되었다.
프로에 데뷔한 스콜스는 다른 퍼즐 조각들과 함께 발을 맞춰 팀의 역사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유스 시절을 함께했던 '데이비드 베컴', '니키 버트' , '네빌 형제', '라이언 긱스'와 함께 친구들과 잉글랜드 축구판을 슬슬 흔들고 있었다. 방금 언급한 이 선수들이 바로 그 유명한 전설의 '클래스 오브 92'='퍼기의 아이들'이다. 작은 소년이었던 이 아이들은 다른 팀의 선배들을 제치고 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 우승 등 숱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게다가 98/99 시즌에는 제대로 사고를 치고 말았다. 잉글랜드 구단 최초 '트레블(트레블 : 한 시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 챔피언스리그 우승, FA컵 우승을 차지하는 것)'을 달성한 것이다. 물론 지금은 '맨체스터 시티'가 22/23 시즌에 트레블을 달성했지만, 그전까지는 잉글랜드의 그 어떤 클럽도 이 기록을 아무도 깨지 못할 만큼 위대한 기록이었다.
알렉스 퍼거슨의 별명은 헤어 드라이기였다. 이는 전반전이 끝나거나 경기가 끝났을 때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강도 높은 비판을 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극소수의 인원을 제외하면 이 바람을 맞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스콜스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 극소수의 인원에 속했다.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드라이기에 바람을 맞은 적이 거의 없다. 단 한 번 빼고. 사건은 이렇다. 퍼거슨이 2군 경기에 뛰라고 지시한 것인데 출전거부를 한 것이다. 때문에 벌금도 내야 했고 퍼거슨과의 사이도 잠시 틀어졌었다. 보통은 퍼거슨의 말을 거스르는 선택을 하는 선수가 있다면 실력과 관계없이 팀에서 나가게 되어있다. 잉글랜드의 '스탠딩 윙어' 베컴도 퍼거슨과의 불화로 인해 팀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콜스는 팀에서 나가지 않았다. 퍼거슨이 추구하는 전술은 그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퍼거슨이 얼마나 스콜스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스콜스는 후에 시간이 흘러 출전거부 사건에 대해서 너무 감정적으로 행동했다며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다.
스콜스는 긱스나 베컴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포지션이었다. 직접 공격포인트를 생산한다기보다 경기를 조율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팀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존재였고 언제나 1인분은 해주는 선수였다. 심지어 자기가 주로 뛰는 포지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중간중간 전술에 의해 포지션을 자주 바꾸기도 했지만 금세 적응하며 제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이는 그가 얼마큼 축구 지능이 높은지, 왜 퍼거슨이 그를 내칠 수 없었는지를 대변해 준다.
어느덧 스콜스도 은퇴를 생각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선수 생명 연장과 은퇴 중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퍼거슨이 그를 불렀다. 그러자 그는 에이전트도 없이 계약서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혼자 서명을 했다. 그렇게 재계약을 한 후 바로 '올드트래포드(맨유의 홈구장 이름, 이하 OT)'로 출근했다. 약속했던 계약기간이 끝나자 스콜스는 2011년 5월 31일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맨유의 영광의 시대를 함께했던 큰 별이 저무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스콜스는 본인의 몫을 마치고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갔다.
스콜스가 은퇴하고 곧바로 이어진 다음 시즌에는 맨유에 재앙이 닥쳐왔다. 중앙 미드필더들의 연이은 부상 레이스로 팀의 중원이 텅텅 비어 버렸던 것이다. 때문에 팀을 위해 고심하던 퍼거슨은 결국 베테랑 스콜스에게 복귀 요청을 했다. 그는 한 치의 고민 없이 스승님의 부름에 다시 한번 응답하고 'OT'로 돌아간다. 여담으로 이때 스콜스는 은퇴했었기 때문에 축구화가 없었다. 그래서 첫 복귀전은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6만 원짜리 축구화로 경기를 뛰었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 법이다. 복귀전에서 보여준 그의 클래스는 여전했다. 은퇴한 후 1년도 안 돼서 바로 돌아온 탓인지 여전히 그의 발 끝이 날카로웠다. 이때 시즌은 아쉽게 2위로 마무리했지만 스콜스는 추가로 계약을 1년 더 연장하고 다음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해버린다. 그렇게 은퇴 번복의 역사를 써버렸다. 이번엔 진짜 본인의 역할을 다 마쳤다고 생각한 그는, 늘 그랬던 대로 조용하게 2번째 은퇴를 한다.
"스콜스는 가장 완벽한 축구선수이다" - 지네딘 지단
"그는 내가 20년간 본 중앙 미드필더 중에 최고이다" - 사비 에르난데스
"모든 패스들이 그의 지능과 경기 이해도에서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 안드레아 피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폴 스콜스는 그의 세대 중 최고의 선수다" - 펩 과르디올라
"의심의 여지없이 스콜스는 프리미어리그 최소의 선수여야 한다" - 티에리 앙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