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것은 나에게 자신이 샐러드라 했다

3% 정도의 본질

by 동그라미



혹시 셀카를 찍으실 때 보정 어플을 사용하시는지? 트위터에서 봤던 재치 있는 표현 중에 '오렌지 과즙이 3%만 들어가면 오렌지 주스로 인정받을 수 있다. 셀카도 마찬가지다. 내가 3%만 첨가되어 있어도 이건 내 사진이다.'란 말이 있다. 당시에는 황희 정승 같은 마음으로 허허 웃으며 '그래 네 말도 맞다' 하고 넘어갔었다. 그런데 오늘 내가 갑자기 이 주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는데, 나의 일상에서 '이런 오렌지 주스'같은 경우가 불편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들이 투시해서 보시기와 같이(?) 나는 연약하다. 보이지 않는 면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경우도 있었다. 경남 김해에서 별자리 점을 봐주시는 별이님(경력 10년+)에게 별자리 운세를 받아본 결과에 의하면 나는 하늘이 내려준 행운가다. 이 일을 하시면서 봤던 수많은 고객들 중 태어났을 때의 하늘이 뭐 이런 각을 만들어내는 '로열 플래시'라는 것은 극히 드문데, 나는 그 로열 플래시가 2개나 있는 데다가, 돈이 마르지 않는 팔자란다. 팔자 중에 제일 좋은 돈 마르지 않는 팔자라니, 너무 좋아서 그 순간에는 별자리 점이라는 것은 5천 원을 내고 나 좋은 소리를 듣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그 뒤로 줄줄이 말해주시길, '소화기, 순환기, 신경계, 눈, 간, 심장, 위, 장, 뼈, 다 안 좋고, 쓸개도 조심해야겠고, @^&#^*&*...' 태어나서부터 여태까지 '쓸개도 조심해야겠고'라는 말은 처음 들어봐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렇다. 나는 하늘이 내린 돈만 있지 건강은 없는 신체를 가지고 태어난 거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원래 그렇게 타고났다는 것 치고 나는 살만 했고, 앞으로도 이 정도 잔잔바리 잔병치레라면 양손에 움켜쥔 로열 플래시 하나씩을 바라보며 감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20대까지는.


놀랍게도 30대가 되자 몸은 빠르게 노화했고, 그런 몸을 부여잡고 병원이나 운동을 갈 때마다 나는 가끔 별이님을 생각했다. 아아, 그대가 말씀하신 게 이런 거였군요. 그다지 많지도 않은 돈이지만 번번이 병원이나 스포츠 콤플렉스에서 지출을 할 때마다 로열 플래시가 싹싹 긁히는 것만 같다.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나는 유난을 떠는 몸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 자신에게 짜증이 날만큼 몸이 유난을 부리는데, 매화가 맺히기 시작할 무렵이 되니 몸이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재빠르게 계절을 타기 시작했다. 소화가 안된다. 입맛도 없다.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만이 출근의 낙인데 큰일이었다.


하지만 나도 나이를 헛으로 먹은 건 아니다. 이런 날을 대비해서 여태까지 먹은 음식을 아카이빙해서 다시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먹스타그램을 운영 중이다. 내가 여태까지 먹은 음식들을 간단하게 적어서 올려놨으니 내 입맛에 맞는 음식들만 올려놨을게 분명했다. 나만의 메뉴판에 들어가봤다. ...지금의 내가 소화할 수 없는 음식만 잔뜩이다. 하, 나이를 헛먹었다. 이렇게 시야가 좁다니. 하지만 이럴 때를 또 대비해 마련해둔 예비책도 있지. 사진첩의 스크린샷 폴더를 들어가자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가봐야지 했던 식당들이 한가득이다. 추리고 추려봤다. 그래, 역시 소화가 안 될 때는 채소류지! 오늘은 샐러드 집으로 가자!


신나게 샐러드 집으로 향했다. 운수 좋게 지하주차장도 날 위해 딱 한 칸이 비어있었다. 1층으로 올라왔더니 배달 주문은 밀려와도 홀은 텅 비어있는 식당이 반긴다. 혼밥이 디폴트로 설정되어있는 나에게는 너무 반가운 모양이었다. 메뉴판을 봤더니 정말 온갖 유형의 샐러드들이 존재한다. 요즘은 누들 파스타라는 것도 있고, 스테이크를 한 접시 담아 스테이크 샐러드라는 것도 있구나, 대박이다. 자주 와야지. 그리고 내가 고른 건 부리또 볼 샐러드. 부리또 볼이라는 게 토르티야를 접시처럼 튀긴 거라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겠지만 어찌 됐든 샐러드 아닌가! 먹던 도중에라도 위가 아 이건 에반데? 하는 신호를 보내면 접시 정도는 안 먹어도 되니까. 했다. 아주 안일하게.


한 입 먹어보니 이 건 천상의 맛이다. 매콤하게 해 드릴까요? 하시더니 아주 그냥 한국인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다. (샐러드가 매콤하게 설정 가능하다는 것부터가 이상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스리라차도 0칼로리라서 다이어트 소스라며. 그래서 다이어터들이 즐기는 소스인가 했었지.) 샐러드와 고기가 아주 절묘하다. 입안에서 축제가 벌어졌다. 비지엠으로 쌈바가 터진다. 아보카도의 느끼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기가 막히고, 간간히 깔린 퀴노아로 식감을 챙겼다. 내가 천 원을 들여 추가한 양파며 고수도 그 향기가 매혹적이다. 최고야. 샐러드 매일 먹고 싶다! 결국 나는 그 샐러드를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먹었다. 부리또 볼의 식감도 아주 예술이라 샐러드가 오래 닿았던 쪽은 살짝 눅진하며 소스의 맛이 베였고, 위쪽 부분은 바삭한 그 식감이 살아서 또 절미였다. 어찌나 맛있었던지 나는 회사 사람들이랑 같이 시켜 먹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회사까지 오는 배달비는 어떻게 되냐며 사장님이랑 하하호호 스몰 토크까지 했다. 그리고 기분 좋게 가게 문을 나서는 순간 드라마처럼 과거로부터 시그널을 받았다. 미친놈아! 이러다 다 죽어!


혹시 그 연구에대해서도 들어보셨는가? 우리의 위는 혹시 모를 끊김 사태에 대비해 자신의 용량에 대한 업데이트가 항상 10여분 늦게 이루어진다는 걸. 먹을 땐 몰랐고, 사장님이랑 떠들 때도 몰랐는데, 가게 문을 여는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 10분이 지난 순간이었다. 위가 더러워서 때려치겠다며 파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 사무실로 돌아가 소화 효소를 한 알 물고 뜨거운 작두콩차를 마시며 속을 달랬다. 그리고 이 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샐러드라며. 샐러드라며! 건강한 식단의 대표 주자잖아!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 샐러드 인척 하는 건강함은 3% 정도만 담겨있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면 업데이트가 느린 나는 어떡하라고! 세상에 자기를 무언가라고 표방할 거라면 최소한 그게 97% 정도 되는 성의는 보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도대체 세상은 왜 3%짜리 오렌지 주스를 오렌지 주스로 인정하기 시작한 거며, 나는 왜 건강을 생각한다며 튀긴 접시를 먹은 건지. 도대체 왜 이런 모순들은 항상 다 지나고 난 다음에야 교훈을 남기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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