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가 있기 전에 각 가정에는 @@가 있었다

K-장녀의 이야기

by 동그라미


행복한 가정은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완벽하고도 멋들어진 도입부다. 그래서 오늘은 이 유명한 문장을 조금 바꿔서 내 글을 시작해보려고 한다. 행복한 가정이건 불행한 가정이건 모두 비슷한 이유로(아마도 이 '답답한 인간들'을 참아낼 수가 없어서) 비서 역할을 해내는 가족 구성원이 있다. 놀랍지도 않지만 우리 집의 경우에는 나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시작은 아마 어린 시절 심부름이었을 것 같다. 심부름을 하면서 가끔씩 얻어 낼 수 있었던 잔돈으로 아이스크림 사 먹기가 너무 좋아서, 잔돈이 안 남고 딱 떨어질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트의 가격표를 다 외우고 있는 게 아니니까, 가는 길 내내 잔돈이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아이스크림을 살 수 있을지도 몰라! 하는 그 불확실한 기회가 즐거웠다. 두부를 사 온다던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가서 이웃집에 방금 만든 반찬을 가져다주고 온다던가 하는 등의 별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청포도 맛 쮸쮸바냐 콜라 맛 쮸쮸바냐 고민을 하면서 심부름을 하던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2002 월드컵을 한 해 앞두고 있었을 때고 인터넷 쇼핑이며 TV 홈쇼핑이 한창 유행을 타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나는 시대에 발맞춰 초등학교에서 컴퓨터 수업을 받는 첫 세대였다. 그 시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그려보자면, 지금 학생들이 들으면 상상도 안 될 시절이겠지만, 아빠는 학회에서 상품으로 200만원짜리 PDA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유지비가 든다는 그 사실 자체가 부담스럽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고장이 날까 두려워 충전기에 고이 꽂아두기만 했었을 정도로 개인용 무선 전화라는 컨셉 자체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시대였다. 공중전화가 아파트 단지마다 깔려서 놀이터에서 놀다가 친구 집에 가고 싶으면 공중전화에서 허락을 받고 친구 집으로 가야 했고(친구 집 전화로 엄마한테 전화했다가 엄마가 안된다고 당장 집에 오라 그러면 그 집 아줌마한테 미안하니까), 집집마다 유선전화가 모두 깔려있어서 학기 초에 나눠준 학급 전화번호부를 달달 외워 친구 집 전화번호를 눌러 아침에 같이 학교 가자고 약속을 잡던 시절이었다. 참고로 나는 여태까지도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전화번호를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이런 시대에 컴퓨터를 교과목으로 배웠던 초등학생인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컴퓨터를 잘 다루는 인물이었다. 엄마, 아빠가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겨우 필요한 문장을 쳐내고 이메일을 보낼 때, 나는 교내 타자 경시대회에 나가서 예선전을 치렀고(한컴타자연습으로 478타를 쳐서 여자 중엔 가장 잘 쳤지만, 같은 반 남자 애가 1000타를 넘게 쳐서 본선은 못 갔다.) 동생들이 시리얼 사 먹고 붙어있던 CD로 뿌요뿌요며 롤러코스터 타이쿤 따위를 할 때, 난 다음에 접속해서 아바타를 꾸미고, 벅스로 음악을 들으며, 인터넷 소설을 보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집안 유일의 네티즌 어린이가 된 거다.


아마 그래서였을 거다. 엄마는 뭔가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항상 나를 찾았다. TV홈쇼핑에서 좋은 걸 팔아도, 혹시 지마켓에 더 싼 게 있을 수도 있으니 한 번 더 검색해보라고 하셨고, 다른 아줌마들은 하프클럽에서 옷을 싸게 샀던데 거기도 한 번 들어가서 보여달라는 식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백화점에서 셔틀버스를 운영했고, 홈쇼핑 채널에서 집에 카탈로그를 배송해주던 시대니 엄마 입장에서도 인터넷의 최저가 검색이나, 비슷하면서도 훨씬 싼 보세 쇼핑몰들이 너무 신기했을 거다. 나도 그때까지는 집안에서의 내 역할이 귀찮긴 해도 그렇게 싫지 않았던 것 같다. 엄마의 검색을 대신해준다는 핑계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져서 좋았고, 가끔은 컴퓨터로 소설을 읽는 내게 엄마가 독서를 열심히 한다고 칭찬해줘서 더 좋았던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엄마가 동생들도 아니고 나한테만 그런 일(나도 잘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 잘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게 분명한 일)을 시키는 게 조금 버겁기는 했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중학교, 고등학교에 갈수록 세상은 더욱더 디지털화되어가고, 직장에서 일을 하던 아빠는 반 강제로 세상을 따라가게 됐지만,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집에서 지내던 대로만 지내게 되었다. 폴더폰을 지나 슬라이드 폰이 나오고 터치 폰이 나와 스마트 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엄마는 은행 일은 무조건 은행에서, 대부분의 쇼핑은 매장에서 진행했다. 교복을 입고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나에게 최저가를 찾아서 보여달라 그러면 신경질을 부리니 그냥 필요한 물건을 주문해달라고 했고, 나는 왜 동생들 다 놔두고 나에게 그러느냐며 지랄을 해댔다. 그렇지만 엄마는 동생들이 못 미더운 건지(내가 봐도 좀 못 미덥긴 하지만) 뭔지 꼭 나에게만 그런 부탁을 했다. 동생들이 사달라던 나이키 신발이 인터넷으로는 최저가가 얼만지(검색하자마자 나오는 광고 링크를 보며 이 29000원짜리 신발은 애들이 말하는 거랑 다른 거냐며 묻고, 나는 저런 건 다 사기고 클릭하게 만드는 뻥이라며 엄마가 심적으로 인터넷에서 더 멀어지게 만들곤 했다), 우리가 학교 간 사이에 집에서 심수봉 노래를 듣고 싶은데 어떻게 할 수 있는 건지(그때까지만 해도 소리바다를 통해서 불법 다운을 해 전자 사전이나 mp3 플레이어 등에서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전자사전과 mp3가 둘 다 있으니 하나는 엄마를 줘도 됐음에도 불구하고 소리바다에서 심수봉 노래를 찾아다닐게 귀찮아서 그런 노래는 인터넷에서 못 찾는다고 했다. 요즘 애들 노래나 인터넷에 있는 거라고 둘러댔다.), 등.


그러다가 스마트 폰의 세상이 도래하고 이제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의 일을 스마트 폰을 통해서만 해결한다. 은행을 방문해도 은행원들이 어플을 깔아달라고 요청하고, 이마트를 가도 포인트 카드며 어플을 써야지만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나에게 인터넷은 아무 거나 눌러서도 안되고, 눌렀다간 나도 모르게 돈이 다 빠져나갈 수도 있고, 취소나 반품은 어려운 세계라고 배웠던 엄마에게는 시름과 걱정이 둘러 쌓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이마트를 가야 하니 신세계에 가입시켜달라는 말, 롯데 마트에서 적립하려면 뭘 가입해야 되냐고 묻는(그러면서 동시에 가입을 종용하는) 말, 아웃렛에 가서 할인을 받으려면 이 걸 가입해야 된다는데 나는 눈이 잘 안 보이니 네가 한 번 해봐라 하는 말 등이 너무 귀찮았다. 우리 집은 애가 4명이나 있다. 그런데 왜 항상 이런 일은 나만 찾을까?


이렇게 적다 보니 내가 못된 사람 같다. 엄마가 그러실만했네! 소리가 절로 나올 것 같다. 그렇지만 나도 억울한 사례들이 많다. 둘째 동생이 노르웨이로 교환학생을 가게 됐는데 노르웨이는 얼마나 춥니?(내가 지리교육과니까 물어봤단다), 돈은 달러로 가져가면 되니?(이하 동문) 얼마 정도를 챙겨가야 되는지, 비상용으로 가족 신용카드를 하나 만들어 들려 보내려고 하는데 신용이 없는 대학생도 받을 수 있는 건지 찾아보라고 하지를 않나. 셋째가 취직을 위해서 서울에 자취방을 구해야 할 처지가 되니 나에게 서울에서 안전하면서도 집값이 싼 동네가 어딘지, 방은 얼마 정도 하는지, 그런 동네에 있는 부동산 중개업자 전화번호들을 알아봐 달라고 하는 거다. 또 막내가 성적이 좋아서 외국어 고등학교나 과학 고등학교로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있을 때도 전국의 외고, 과고 리스트를 뽑아달라고 하질 않나, 입학 전형이 어떻게 되는지 비교해달라고 하질 않나, 중복 지원이 되는지 같은 걸 알아봐 달라는데, 당연히 나도 모른다! 집안에서 나는 집안에서 유학원이 됐다가, 현대 카드도 됐다가, 네이버 부동산이 됐다가, 진학 상담사가 되기도 하는 거다. 그럼 내가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동생들은 무얼 하냐고요.


심지어 내가 임용 고시 준비를 위해 가족들끼리 하는 해외여행에 같이 못 가고 혼자 집에 남아있던 시절이 한 번 있었다. 가족들은 전부 뉴욕에서 빌딩 숲에서의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는데, 나는 에어컨 밑에서 인강이나 돌려보고 있던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런데 아빠한테서 보이스 톡이 오는 거다! 아 그래도 가족이라고 여행 가서도 내 생각을 해주는구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어~ 우리가 지금 35번가 어디 스트릿에 있는데 이제 어딜 가면 좋겠냐? 순간 말을 들으면서도 저 게 무슨 말인가 싶어서 뭐라고? 만 몇 번을 다시 물어본 것 같다. 너는 뉴욕에 놀러 와본 적이 있으니 이제 어디 가면 좋을지 알 것 같아서 전화했다는데, 혹시 나에게 보이스톡 걸 기회만 남겨두고 인터넷을 사용할 모든 기회를 박탈한 갱단을 만난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여행에 딸려있는 스마트폰만 5대고 아이 패드가 2개에 노트북도 2대가 있었는데, 가족들이 선택한 게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나였다는 게 너무 뒷골이 땅기는 거다. 너무 열 받았지만 일단 끊어보라 그런 뒤에 카톡방에 내가 뉴욕에서 다녀온 곳들 몇 곳을 보내줬다. 가족들은 그중에서 갈 곳을 정한 건지 ㅇㅋ 두 글자만 보내고 또 연락이 두절됐다.


이러니 나도 화가 나는 거다. 요즘도 엄마는 아침 홈쇼핑에서 뭔가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내 방에 들어와서 날 깨워 주문해달라고 그런다. 그러면서 네가 최저가로 할인면 얼마냐고 기대한다. 출근도 안 하고 집에서 자는 동생들은 절대 아침에 안 깨우면서. 그냥 자게 놔두라고 하면서. 그러면서 나에게만은 집에 우유와 요구르트가 떨어졌으니 롯데몰에 들려서 유통기한 임박으로 행사하는 걸 사 오라 하고, 계좌 이체가 아니라 카드 결제로 해결하고 싶은 일을 위해 점심시간에 능력개발원 대신 가서 결제해주길 바라고, 진주역에 도착할 동생들을 바쁜 아빠를 대신해 픽업을 해 집에 오길 바란다. 토니 스타크도 자비스에게 이 정도는 안 시켰을 거고, 현대 사회인들도 시리에게 이 정도 요구는 못 할 거다. 그러면서 동생들에게는 한 점 바라는 거 없이 주말마다 자취방에 가서 반찬 채워주고 대신 청소해주고, 친구들 만나러 가는 자리에 라이드를 해주고, 돈을 더 부쳐주고 싶기만 해 보인다. 이리저리 알아보고 굴릴 때만 내가 필요해 보인다.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런 말을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해볼 수는 없겠지만, 아마 자식들 중에서도 특별히 아픈 손가락이 있고, 무딘 손가락이 있는 거랑 같은 심정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딸은 엄마를 평생 짝사랑하고, 엄마는 평생 아들을 짝사랑한다는 그런 걸까. 큰 딸은 살림 밑천이라더니 나는 그냥 가족들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돗자리 같은 걸까. 나는 왜 하필 태어나길 K-장녀로 태어나고, 성격도 K-장녀처럼 되어버린 걸까. 차라리 나도 그냥 못 미더운 인간이 돼서 다 같이 못 미더운 가족들로 지냈으면 어땠을까. 그렇지만 오늘도 엄마가 제로 페이 충전을 까먹을까 봐 카톡을 넣고, 능력개발원에 지원한 수업의 경쟁률을 대신 체크해주고, 달력에 동생들이 집에 오는 날을 체크하고 있다. 말로는 싫다면서 착실히 출근하는 직장인 같다. 흑흑. 그리고 아마 나는 한 동안 더, 꽤 오래 이런 K-시리 역할을 하겠지 싶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서 이럴 때마다 속으로 생각하는 나만의 마음가짐도 공유하고 싶다. 이 것도 언젠간 그리워지고 후회할 시간들이 오겠지, 내 부모니까 내가 했지. 에휴, 우리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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