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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이공키로미터 Aug 07. 2022

행복을 찾아서 1, 좀티엔 서퍼 클럽


여름휴가를 맞아 휴가지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으며 여유롭게 보내려고 전자책에 몇 권의 책을 저장시켜 놓고 관심 있는 영화도 다운로드 받은 다음 여행을 시작했다.(책은 트루먼 카포티의 인콜드블러드, 영화는 디즈니 플러스의 오비완 캐노비를 준비했다) 하지만, 비행기에 타자마자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저가 항공기 좌석이 이렇게 좁을 줄 몰랐다. 전에는 용케도 이런 좁은 좌석에서 대여섯 시간을 문제없이 여행했는데, 이제는 몸이 굳어서인지 영 자리가 불편했다. 책을 읽기도, 영화에 집중하기도 어려워 정말 쩔쩔매면서 겨우 도착한 곳은 바로 태국 방콕이다. 아래의 모든 글은 휴가지에서 구상했고, 집에 돌아와 마무리했습니다. 


좀티엔은 파타야의 아래쪽에 몇 년 전부터 활발히 개발되기 시작한 해변가 지역이다. 근처에 골프장도 가깝고, 파타야의 번잡함도 피할 겸 난 이곳에 있는 한 숙소를 에이비앤비로 예약했다. 외지고 한적한 해변가에 자리 잡은 콘도는 '그랜드 플로리다 비치프론트 콘도'란 긴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콘도는 가운데 워터슬라이드와 파도풀까지 있는 거대한 수영장이 있으며 그 둘레를 고층의 건물이 둘러싼 형상이었고, 건물에서 조금만 나가면 바로 좀티엔 해변이어서 일광욕을 즐기기에도 좋았다.  

이 숙소의 장점은 바로 한적함이었는데, 큰 건물에 겨우 한 손에 꼽을만한 몇 가족만 머물고 있었다. 건물은 큰데 머무는 사람이 없으니 수영장에도 식당에서도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웠다. 나중에 알고 보니 코로나 직전 의욕차게 콘도를 만들었는데, 분양이 안돼서 그중 몇 곳을 에어비앤비로 돌린 것이었다. 그렇게 콘도를 독차지하고 시간을 보내다가 식사할 곳도 찾을 겸 동네 근처로 산책을 나갔다. 해변을 따라 규모는 작지만 특색 있는 식당과 펍들이 있었고, 그중 한 곳에서 석양이 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맛있게 식사를 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눈에 띄는 가게가 하나 보였다. 좀티엔 서퍼 클럽이란 곳이었는데, 가게 앞에는 몇 개의 보드가 꽂혀 있고, 안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이 주인의 외모가 아주 특이했는데, 머리는 백발이고, 온몸에 문신이 가득했으며, 키는 작고 몸은 말랐지만, 눈빛이 깊고 맑았다. 외모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풍기는 느낌이 너무나 독특했고, 신비로운 느낌까지 들었다. 우연히 그와 눈빛이 마주친 나는 자석에 이끌리듯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이곳은 서핑에 적합한 파도가 없어 사람이 많이 오지 않지만 바람이 많아 카이트 서핑하러 오는 사람이 꽤 있다고 했다. 마침 내일은 적당히 파도가 올 것 같으니 아이들에게 서핑 레슨을 한번 권하길래 가격도 저렴해서 그러기로 했다. 


다음날 하기 싫어하는 얘들에게 서핑 레슨을 시키고, 난 주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망해가는 콘도의 이야기도 해주고, 코로나로 얼마나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는지, 또 좀티엔에 있는 다른 흥미로운 곳들을 알려주었다. 코로나로 외국인들이 들어오지 않자 많은 외국인 대상 가게들은 문을 닫았고, 주민들은 내국인 대상으로 타깃을 바꾸고 그들 취향의 가게들을 열었다고 한다. 그런 노력으로 좀티엔에는 내국인들이 많이 오게 되고, 그나마 경기가 나아졌다고 한다. 


이후 나와 아내는 서퍼 클럽 주인이 알려준 베드가 3개밖에 없지만 엄청난 스킬의 마사지샵도 가고, 인테리어가 오직 붉은색인 펍에서 선곡이 좋은 음악을 즐기고, 정글 속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도시락을 먹기도 했다. 그가 알려준 곳들이 어찌나 내 취향에 맞고 좋던지 난 고맙다는 말도 전할 겸 다시 그 가게를 찾았다. 손님이 없어서 무료했는지 내가 찾아가자 그는 반가워하며 로컬 위스키를 권했고, 우리는 밤이 늦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서핑에 미쳐 세계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발리의 꾸타, 하와이의 노스쇼어, 캐나다의 토피노, 한국의 양양까지 전 세계의 서핑 스팟을 누비며, 수 십 년을 길에서 보냈다고 했다. 간간히 서핑 강습으로 생활비를 벌고, 가족도 없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활에 싫증을 느꼈다고 한다. “That day was crazy”. 그리고, 가진 돈을 모아 어렵사리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당신을 처음 봤을 때 외모에서 신비로움이 느껴졌다고 하자 그는 웃으며 말했다. 손님은 없는데, 파도소리를 하루 종일 듣고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고 말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파도소리는 잔잔했고, 밤하늘의 달빛은 부드러웠다.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한 게 있다. "지금 행복하신가요?"라고 말이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난 지금 매우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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