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라떼 아이스, 얼음 조금만 주세요.

by 다운

사람들은 말한다. 어떻게 똑같은 밥, 똑같은 커피만 먹고살 수 있어? 안 질려? 그럼 나는 대답한다. 난 이게 익숙해. 안 질려. 새로운 메뉴, 새로운 음료 도전하다가 실패하고 돈 버리는 것보다는 낫지.


약 30년을 살아오는 동안 늘 그래왔다. 편식이 심해 지금도 채소는 쳐다보지 않고, 한 때는 회를 입에도 대지 않아 친할아버지댁 옆 일식집에서 외식을 할 때면 먹을 게 없다고 드러눕기도 했으며, 메뉴판에 신기해 보이는 신메뉴를 시키면 너무 달거나 신 걸 잘 못 먹는 내 입맛의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모금만 먹고 남에게 권유하듯 건네주곤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어야 하는 날이 오기도 하고, 다양한 인연들과 다양한 식사 자리나 술자리를 가지면서 건네받는 한 입을 굳이 힘주어 거절하지 않은 적도 많다 보니 내 입맛은 아주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구 만리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취향이 있다면, 바로 커피 취향이다. 나는 너무 단 맛을 좋아하지 않아 초콜릿이나 사탕, 젤리 등 간식을 잘 찾아 먹지 않는 편이다. 아주 가끔 호르몬에 온몸이 지배될 때에는 당의 유혹을 못 이겨 한 입을 맛볼 때도 있었지만, 결국 치솟는 단맛에 윽 소리를 내고 말았다. 카페 입구나 카운터에 붙은 신메뉴 선전 포스터에 그려진 달콤해 보이는 비주얼을 보아도 같은 결말을 맞이할 거라는 생각에 바로 눈길을 돌렸다.


이런 내가 선택하는 메뉴는 너무 달지도 너무 쓰지도 않은 카페 라떼였다. 몇 년 전까지는 추운 날에도 아이스를 고르는 얼죽아 회원이었지만, 교정과 임플란트로 한껏 약해진 치아에 차가운 것이 닿았을 때 느껴지는 시린 느낌이 싫기도 하고, 나이가 들면서 추울 때는 따뜻한 것을 찾는 게 순리임을 인정하게 되어 기온이 떨어지면 따뜻한 라떼를 주문하곤 한다. 낮 기온이 20도 위를 웃돌고 있는 지금까지는 아이스를 고집하고 있다.


바닐라, 카라멜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시럽이 첨가된 텁텁한 단맛도, 각기 다른 맛을 가진 원두의 쌉싸름하거나 산미 있는 맛도 느껴지지 않는,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쓴 카페 라떼 한 잔이 이제는 내 일상 속 유일무이한 HP포션이 되었다.


재취업에 성공하며 회사 점심시간마다 카페를 가는 것이 루틴이 되었는데, 항상 같은 시간대에 같은 메뉴, 같은 요청사항을 내미는 내 얼굴을 익힌 사장님은 어느새 '얼음 조금' 요청사항을 말하지 않아도 해주시는 경지에 이르셨다. 아니, 내 얼굴만 보아도 바로 얼음이 작게 들어간 컵과 샷을 내리는 모습을 보이셨다. 아주 가끔 주문이 밀려 바쁘신 바람에 나를 못 보시고 '얼음 보통' 카페 라떼를 주신 적도 있긴 하시지만, 그건 어쩔 수 없지.


항상 '얼음 조금' 라떼를 받아 들고 늘 그렇듯 감사 인사를 나누는 5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사장님과 은근한 교류, 내적 친밀감을 쌓아온 것이다. 내가 카페라떼를 고집하지 않았다면, '얼음 조금' 요구 사항이 없었다면, 내 입맛이 까다롭지 않았다면 없었을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식사와 양치를 끝낸 1시 10분 전, 나는 오늘도 같은 카페로 가 카페라떼 아이스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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