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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성 Nov 14. 2024

14일. 글쓰기의 시작

고등학교 3학년 때,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세무서에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보고 느낀 점을 쓰는 과제가 있었다. ‘현장 실습’이라고 부르면 적당할까. 느낀 점이라고 해봐야 두세 줄이었는데, 그마저도 더럽게 못 썼다. 조원 중 한 명은, 그다지 친하진 않았지만, 내가 쓴 글을 두고 “초등학생이 쓴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자존심에 상처가 나거나 그러진 않았다. 기분이 잠깐 좋지 않았을 뿐.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나는 글쓰기와 전혀 관련 없는 삶을 살았다. 단언컨대, 작가나 글 쓰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장난 삼아 그렇게 말한 적도 없었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일기에 적은 문장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외로워서 그랬다. 대학교를 아주 먼 곳으로 간 까닭에 연고가 아예 없어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왜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입학하고 나서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마도 외로워서 그랬던 듯하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일기는 대학 생활에서 유일하게 즐기는 일이 됐다. 일기에 쓴 문장이 마음에 들어 수업을 듣는 와중에 공책에 썼던 문장을 끄적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되겠다거나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진 ‘작가’라는 직업은 머릿속에 들어와 있지도 않았다.     

우연히 한강 작가가 맨부커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봤다. 어쩌다가 봤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인터넷 뉴스에서 본 게 아닐까 싶다. 그때 처음으로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진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조금 낭만스럽게 말하자면, 꿈이 생겼다고 말할 수 있다.

스무 살, 무척 외롭던 시절에 처음으로 꿈이 생겼다. 어둡기만 한 밤하늘에 별이 하나 떠오른 셈이다. 그러나 별은 별일뿐, 달이 되진 못한다. 밤하늘에 별이 하나 떠있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많지 않다.

나의 이십 대 초반은 우울한 계절이었다. 시절이 아니라 계절이다. 돌이켜 보면 그때 당시 나는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그런 시절을 겪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 글쓰기를 만났고,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을 만났다. 그마저도 없었더라면 우울함과 좌절감으로부터 결코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 쓴 일기는 불태워버렸다. “달라지고 싶어!” 그 마음 하나로 1년 넘게 쓴 일기를 불태웠다. 일기를 불태운다고 해서 인생이 극적으로 변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저 공허함, 아쉬움이 남을 따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 않을 듯하다. 내가 가진 우울함, 좌절감, 분노 따위, 내가 글을 쓰게끔 만드는 것들이 모두 사라지지 않는다면 나는 영영 글을 쓸 것이다.  


내가 쓰는 글은 잔잔한 비명이다. 들어줄 만하다면 좋겠다. 나는 누구도 원망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모두를 좋아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가 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보이는 그대로 쓰고 싶다.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고, 그것이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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