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6월 모의고사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께서 벽에 우리나라 지도를 한 장 붙였다. 전국에 있는 4년제 대학교가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해주고 싶으셨던 듯하다.
나는 좀 달랐다. 항상 엇나가는 면이 있었던 지라 내게 눈이 띈 건 고향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대학교였다. 문자 그대로 ‘가장 먼’곳에 있는 대학교에 가겠다고 그때 다짐했다.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성적은 충분했고, 담임 선생님께선 그 대학교에 가기로 했다면 네 맘대로 원서를 쓰라고 했다.
정말 내 맘대로 정시에 원서를 썼고, 그중 두 군데가 되고 한 군데가 한 명 차이로 안 됐다. 흔히 하는 말로 상향 지원을 한 곳이 안 됐는데, 고백건대 그 대학교가 됐다면 그곳으로 갔을 것이다. 왜냐면 그곳도 집에서 충분히 먼 곳이었고, 그때 당시 내 수능 성적으로는 감지덕지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수능 성적이고 뭐고, 가장 큰 문제는 내게 거리 감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를 축소한 지도에서 고향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대학교라고 한다면 정말로 먼 곳에 있다는 뜻이다. 대중교통을 서너 번을 갈아타야 겨우 다다를 수 있는 곳에 있다는 말이다. 정말로 대학교를 다닐 당시 집에 오고 가는 시간만 8시간이 걸린 적도 있었다. 유학을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째서 고향에서 가장 먼 대학교에 가려고 했을까. 그때 당시 나는 달라지고 싶었다. 그래서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상황이 바뀌면 내가 알아서 바뀌리라고 믿었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진정한 나’를 되찾아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바람이 있어서 그랬다.
다만 문제는, 앞서 말한 대로, 거리 감각이 모자랐다. 돌이켜 보면 구태여 가장 먼 곳에 있는 대학교가 아니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설령 아는 사람이 있는 대학교에 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하기에 따라 나는 달라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 당시 나는 오로지 ‘환경’만 따졌고, 그래서 환경을 극단적으로 바꾸려고 했다.
커다란 실패이자 실수였다. 그렇다고 후회하진 않는다. 나름 재밌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나에겐 두 가지 세상이 있었다. 고향과 대학교. 옛날과 오늘. 과거와 현재. 나는 어디에 있어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러나 두 세계를 오고 갈 때면 마음이 조금 가벼웠다. 즐거웠다. 어떤 세계에도 속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좋았다.
따지고 보면 그 시절 나는 딱 그런 상태였던 듯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이곳과 저곳을 오고 가는 존재. 한마디로 ‘방황하는 젊음’. 내겐 방황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쓸쓸하고 외롭기도 했으나 어딘가에 머문다고 해서 그런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으니까.
나는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고향과 대학교, 또는 어딘가에 완전히 정착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여전히 방황할 때가 즐겁다. 혼자 어딘가로 떠나는 순간, 자유롭다고, 그래서 기쁘다고 느낀다. 그런 순간만 손꼽아 기다린다. 돈만 많다면 평생 방황하며 살고 싶다. 방황이 아니라 여행이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