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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성 Nov 16. 2024

16일. 면접, 다시 취업

퇴사하고 나서 자유로웠다.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보다 더 자유로웠다. 날마다 특별한 일 없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면 기쁘겠지만, 끝도 없이 이어지니 지루했다. 할 일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나 지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까 점점 무기력해졌다. 살아있다는 감각은 움직여야 깨어나는 듯하다.

     

놀러 가거나 친구를 만난다고 하면 돈이 든다. 밖에 나가 뭘 하려고 해도 역시 돈이 든다. 돈이 들지 않는 일은 산책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는 일이다. 모두 아주 훌륭한 일이지만, 나갈 이유가 없으니 밖으로 나가질 않는다.

좋은 날을 이렇게 보내고 있다는 게 싫어서 다시 한번 취업에 도전했다. 기간은 이전보다 세 배 짧은 두 달.     

그 기관은 내가 지원한 일자리를 두고 ‘일용직’이라고 부른다. 내가 아는 일용직에 다른 뜻이 있는가 싶어 사전을 뒤적였으나 일용직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을 뜻하는 말로 내가 아는 바와 다르지 않다. 아무래도 기관에서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 나는 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는 일자리에 지원했고, 딱 두 번만 월급을 받으면 끝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해서 면접을 안 볼 줄 알았으나, 대뜸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정장을 빼입고 밖을 돌아다니니 괜히 마음이 부풀었다. 예상한 대로 면접은 얼굴만 보는 게 전부였다. 나와 함께 일할 두 명을 그때 만났다. 뜬금없는 면접에 모두들 긴장한 듯보였다. 나 역시 조금은 긴장했을까. 잘 모르겠다.

팀장이라고 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10분 넘게 이야기했다. 무슨 일을 할지, 월급을 얼마일지, 주의할 점은 무엇인지, 자기가 화를 낼 수도 있다는 둥 여러 가지 이야기.

팀장은 머리를 바짝 깎은 중년 남성이었는데, 얼굴만 봐도 어떤 느낌으로 일하는지 보였다. 어쩌면 쉽지 않은 2개월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엔 끝까지 다니리라고 다짐했다.


면접은 20분을 살짝 넘겨 끝났다. 내가 한 말은 거의 없었다. 듣기만 했다. 듣는 건 내가 잘하는 일이다. 사람들은 모두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듣고 싶어 하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만 하는 사람은 여러모로 따분하다. 그래도 자기 일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뭐라고 말하는 건 그럭저럭 들어줄 만하다. 팀장이 그랬다. 자기가 하는 일에 자부심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2개월 동안 적어도 자부심을 건들 만한 말은 절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기간제를 퇴사하고 일용직으로 다시 일하고자 하는 지금, 별달리 드는 생각은 없다. 퇴사하고 나서부터 내게 주어진 시간이 교묘한 형벌처럼 느껴진다. “결국 넌 돌아오게 될 거야”라고 사회가 말하는 듯하다. 맞는 말이다. 돈 없고 능력 없고 젊음뿐인 내가 돌아갈 곳은 마땅치 않다. 있다면 감사해야 할 처지다.


솔직히 말하자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뭐라도 시도했고, 어쩔 수 없이 되지 않았다고 자위하고 싶었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합격했고, 또다시 일을 하게 됐다.


주어가 ‘나’인 문장에 수동태는 되도록 쓰고 싶지 않다. 하고픈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그렇듯 내가 쓰는 문장도 내 맘대로 되지 못한다. 그것이 소설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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