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군대, 직장. 그만둘 수 있는 건 모조리 그만둬 봤다. 무언가를 그만두는 일은 일상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것이 있던 자리 또는 있어야 했던 자리를 혼란이 가득 메운다.
그때 당시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고, 비유하자면 세상이란 바다를 작디작은 나무배를 타고 지나고 있었다. 어떤 일을 그만둘 때마다 파도가 크게 일렁였고,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거려야만 했다. 바다가 나를 잡아먹을까 봐 두려웠다.
내가 왜 그랬는지 말할 수 없을 때가 가끔 있다. ‘왜(why)’ 없이 움직이거나 말할 때가 종종 있고, 그것이 나쁜 습관이라는 걸 알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왜냐면 내가 느긋하게 답할 만큼 세상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끌려가 그렇게 행동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감정에 ‘왜’라는 이유를 물을 순 없다. 만약에 그 이유를 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시간이 한참 흐른 후일 것이다.
감정의 쓰나미가 지나가고 나서야 ‘왜’라는 배의 조각을 찾을 수 있다.
그것들로부터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으니, 이쯤에서 뭐라고 답을 해놓아야겠다.
나는 왜 군대를 나왔는가. 첫째로, 그곳이 내가 있으면 안 될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군대에 있는 내내 대변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군대에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셋째로, 사실 이게 진짜 이유인데, 나는 딱딱한 조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군대를 나온 건 올바른 판단은 아니었다. 솔직히 한번 버텨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돌이킬 수야 없지만, 상상하면 나름대로 해볼 만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왜 대학교를 그만뒀는가. 첫째로, 내겐 작가가 되겠다는 꿈이 있었다. 둘째로, 지금 이 순간 이루지 못하면 영영 이루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준 사건을 겪었다. 셋째로, 전공에 흥미를 잃었고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대학교를 그만둔 판단을 옳았는가? 역시 그렇지 않다. 문예창작학과에 붙고 나서 대학교를 그만둬도 됐다. 성급했다. 이유를 셋이나 말했지만, 진짜 이유는 내가 다니는 대학교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 듯하다. 다시 말해, 나는 대학교에 만족하지 못했고 그에 따른 이유를 찾고 있었고, 때마침 어떤 사건이 일어나 대학교를 떠났다.
진짜 이유는 내가 다니던 대학교를 좋아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나는 왜 직장을 여러 번 그만뒀는가. 첫째로,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로, 어떤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셋째로, 직장을 더 다니는 것보다 그만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판단은 옳았을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다. 직장을 그만둘 때마다 나의 일상은 난파선처럼 흔들렸고 지금까지 그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만약에 내가 꾹 참고 버텼더라면 지금처럼 흔들리진 않았을 듯하다.
뉘우칠 뿐, 후회하진 않는다. 후회하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 여러 번 그만둔 경험으로 내가 배운 건, 그만두고 나서 무얼 할지 정하지 않았다면 그만두지 않는 게 낫다는 것이다. 즉, 플랜 B가 없다면 그만두지 않는 게 낫다.
남들은 그냥 깨닫는 걸 나는 부딪혀 보고 나서야 배운다. 그 또한 나니까 받아들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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