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형 마트에서 일한 적이 있다. 공산팀에서 일했는데 직위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없었던 것 같다.
출근과 퇴근, 점심시간을 칼 같이 지켜야 했다. 감시하는 사람은 없었으나 그렇게 하는 게 규칙인 듯했다. 일을 설렁설렁한다고 까이는 선임 또한 시간은 똑바로 지켰다.
9시까지 출근하면 곧바로 술이 있는 매대로 간다. 빠진 술을 채우다가 트럭이 오면 물건을 받고 옮겨야 한다. 물건을 모두 옮기고 나면 다시 술을 채우러 가고 술을 다 채우고 나면 과자와 라면을 채워야 했다.
과자와 라면은 같은 매대에 있었고, 매대 위 선반에 재고가 있었다. 재고를 쌓을 땐 두 가지 규칙이 있다. 선입선출, 즉 먼저 들어온 게 앞 또는 위로 가게 해서 먼저 나가게 해야 한다. 다른 하나는 상자에 남은 재고를 적어야 한다. 신라면 5개가 남았다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유성 매직으로 ‘신라면 5’라고 큼지막하게 적어야 한다.
정말 합당한 규칙이다. 일하는 사람이 편하게 하기 위해 하는 규칙. 규칙보단 팁이라고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거의 그랬다. 쉽게 알아볼 수 있었고, 어려운 일은 없었다. 공산팀이라 물건을 옮기고 채우는 일만 주로 했기 때문에 몸이 힘들지 정신이 힘들 일은 없었다. 일을 가르쳐주는 사수가 좋은 분이어서 쉽게 일을 배웠다. 또 다른 선임은 점장에게 단단히 찍힌 듯 보였으나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냥 사람 자체가 조금 느리고 고집스러울 뿐.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기립성 저혈압을 갖고 있다. 언젠가 아침에 옷장 위에 놓은 알람 시계를 끄다가 그대로 기절한 적도 있다. 잠시 기억을 잃는다. 그때 당시 내가 쓴 기록을 그대로 빌려 오자면,“나는 방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자를 들고 옮기는 일을 할 때마다 눈앞이 흐려졌다. 하면 할수록 더 흐려졌다. 발판을 밟고 오르고 내릴 때마다 정신이 흐릿했다. 근로계약서를 쓸 때까지 그런 일을 거듭하다 보니 차마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장님은 당황한 듯보였다. “그런 말을 면접 볼 땐 안 하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었다. 그건 맞다. 예상하지 못했다. 오래전부터 앓고 있지만 그것이 심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인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하나였다. 만약에 내가 쓰러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에 대해 사장님은 뭐라고 답하지 못했다.
사람 좋은 사수는 그나마 시원스레 답을 줬다. “여기서 쓰러지면 구해줄 사람이 없다.”라고. 그래서 그 일을 그만뒀다. 만약에 계속 다녔다면 난 언젠가 쓰러질 테고, 그때가 되면 회사는 “나는 모르새” 할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쓰러질 위험이 있는 사람을 구태여 고용하지 않는 건 굉장히 합당한 선택이다. 창고형 마트는 여러모로 합당했다. 아주 직관적이고, 힘든 만큼 버는 곳이다. 그만큼 벌이에 한계가 있기도 했다. 수익의 저점이 낮은 대신 고점도 낮았다.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나서 느려터진 선임과 이야기를 나눴다. 선임이 말하기로 자기는 저혈압이 심하다고 했다. 그래서 점장이 뭐라고 말해도 늦게 알아듣는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저혈압 때문에 30분간 누워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선임에게 건강을 돌보라고 했으나, 선임은 고집스레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내가 틀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