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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성 Nov 13. 2024

13일. 통신사 대리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구직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가 무언가를 문 셈이다. 자랑할 만한 경력이나 그럴싸한 자격증 따위 없는 이력서지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회사 생활을 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면접에 붙었을 때인 듯하다. 세상이 장밋빛으로 물들고 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벅차오르는 순간.


길가를 걷다 보면 통신사 대리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SKT나 KT, 또는 LG와 같은 대기업 간판을 달고 있는 대리점들. 사실 그런 곳은 대기업에서 직접 운영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의 이름을 빌린, 작은 회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대리점에서 일하기 전까진 그걸 몰랐다. 아마 일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몰랐을 것이다.

그때 내가 들어간 회사는 바로 그런 일을 하는 곳이었다. 통신사 대리점. 고객이 오면 응대하는 일을 하는 곳. 규모는 크지 않았다. 내가 있는 지점에서 일하는 사람을 두 손으로 셀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람과 함께 일하는지가 매우 중요했다.

통신사 대리점은 무엇으로 먹고살까.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낼까. 다른 곳은 어떤지 몰라도 내가 다니던 곳은 프리미엄 요금제의 수수료로 먹고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고객이 휴대폰을 바꾸러 온다고 하면 이런저런 할인을 미끼로 해서 가장 비싼 요금제들, 다시 말해 프리미엄 요금제를 추천해야 했다.

만약에 고객이 프리미엄 요금제를 쓰지 않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는가. 어떻게든 설득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수입이 나질 않으니까. 그곳에서 하는 일은 그런 식이었다. 대기업에서 만든 제품에 비싼 요금제를 끼워 팔아 수수료를 남겨 돈을 버는 방식. 어찌 보면 다단계 사업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때까지 여러 가지 일을 겪은 탓에 직장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수익을 내는 방식을 깨닫고 나서 그저 흥미로웠다. 그를 통해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자리를 잡아야 드는 생각인 듯하다.

월급이나 연봉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에 따라 정해지지만, 직장에 대한 만족도는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때 당시 상사 한 명이 트러블메이커였다. 도무지 마음에 드는 일이라곤 없고, 입이 아주 험한 인간이었다. 한마디로 돼먹지 못한 인간. 그런 인간과 함께 일하는 게 싫어서 그만뒀다.

버틴다고 해서 그 일을 더 잘하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알음알음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이 일은 오래 해 먹지 못하는 일인 듯했다. 무엇보다 내가 보기에 대리점에서 하는 일은 장래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나만 해도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휴대폰을 쓰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한 듯하다. 

그래서 그만뒀다. 사연 없는 무덤은 없듯이 이유 없는 퇴사도 없다. 그러나 대리점을 그만둔 이유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못난 상사 한 명과 장래가 어두운 사업 때문.


버틴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에 그렇게 느낀다면 그것은 적응했기 때문이다. 상황은 더 나빠질 따름이다. 그때 나는 침몰하는 배에서 나온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갈 곳이 있는 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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