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민감한 주제다. 특히 나처럼 우울한 사람이 꺼내면 사람들은 걱정 어린 눈길로 본다. 그런 눈길이 질려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자살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실은 그런지 꽤 됐다. 자살은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할 만한 일이 되지 못한다.
어느 순간이 되기 전까진 자살을 여러 번 생각했었다. 생각 찌꺼기가 남아서 그런지 끊임없이 자살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정확히 말하면' 자살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아니라 '자살은 왜 하는가' 따위다.
내가 보기에 자살은 주체 없는 타살이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라고 되뇌는 사람도 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이다.
자살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다. 인간처럼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생쥐 한 마리를 벽으로 둘러싸 가둔다고 해 보자. 생쥐는 자기보다 서너 배는 큰 벽에 둘러싸여 좁디좁은 곳을 두리번거린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렇다는 걸 깨달아도 생쥐는 멈추지 않는다. 굶어 죽을 때까지 벽을 기어오르려고 하거나 하다 못해 소리를 지를 것이다. 결국 죽는다. 그렇다고 해서 생쥐가 자살했다고 말할 순 없다.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상상 속 생쥐와 같다고 본다. 그들은 자기에게 닥친 어떤 문제 때문에 죽고자 할 뿐이다. 그것만 사라진다면 그들은 멀쩡히 살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하는 사람에게 "자살할 용기로 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따위 말은 아무런 쓸모가 없다. 자살은 용기 문제가 아니라 환경, 다시 말해 죽음으로 모는 '실체 없는 객체'의 문제다. 그것이 사라져야 자살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 나라다. 굉장히 높다고 말하는 게 모호하다면 'OECD 국가 중 1위'라고 말하겠다. 그만큼 살해당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다. 아이러니한 점은 남성이 여성보다 자살하는 비율이 두 배는 높다는 점이다. 남성향이 짙은 사회에서 남성이 더 많이 죽는다는 건 남성에게 말하지 못할 짐을 지운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어떤 문제이든 사람에 대한 문제는 '그 사람을 다른 무엇이 아닌 한 사람으로 본다면'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남자에게 남자답게 행동하라고, 여자에게 여자답게 행동하라고 말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사는 것이 벅차서 죽고자 하는 사람에게, 사방이 가로막힌 생쥐에게 벽을 하나쯤은 없애준다면 어떨까. 하다못해 좁은 틈이라도 터준다면.
"그냥 살아 봐"라고 말해줄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자살하는 사람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