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
덜덜거리는 나의 아반떼를 타고 한계령을 간다.
저번에 정비소에서 점검을 받고 몇몇 부품은 바꿨지만, 사실 제대로 뜯어서 고친다면 비용이 비싸 전부 고치진 못했다. 정비소 아저씨도 조심히만 타라고 했다. 나는 초보운전이라 빨리 달릴 일이 없어 일단은 알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나에게 아반떼의 주유비도 부담이 되었기에 옛날처럼 아파트 주차장의 토템처럼 박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매번 주차하고 나면 토끼 얼굴 같은 아반떼를 보곤 딱한 마음이 들었다. 종종 할아버지께서는 아반떼가 그 당시 제일 비싸게 주고 산, 프리미엄 아반떼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프리미엄은 십몇년이 지난 지금은 다 꺼내 바꿔야 할 고장 부품이 되었다.
정비소 아저씨가 했었던 이틀에 한 번이라도 운전했었으면 괜찮았을 것이란 말이 조금 찔렸다. 괜스레 스무 살에 바로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냐 하는 마음으로 자동으로 펴지지 않는 사이드미러를 쭈욱 밀어 편다.
한계령에 가는 길은 뻥 뚫렸다. 나의 아반떼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지만 생애 가장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카세트테이프 밖에 들어가지 않는 대시보드 때문에 어떻게든 붙인 핸드폰 거치대로 뜨거워진 핸드폰 액정 화면을 툭툭 치면서 신나는 노래를 들으며 달린다. 초보운전이기에 여기가 무슨 고속도로인지도 모르겠지만, 핸드폰이 직진만 가리키고 있기에 부담 없이 액셀을 밟았다가 떼었다가 간다. 하얀 백색의 유선형의 아반떼가 붕붕 달린다. 그러다가 휴게소에 서서 담배를 한 대 피고 돌아와 보니 아반떼의 실내는 참 깔끔했다. 할아버지는 운전을 하진 않으셨지만 며칠에 한 번씩 실내를 점검하시곤 했다. 만약 할아버지가 자동차 엔지니어링을 아셨더라면 아반떼의 수명은 좀 더 길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쓸 때 없었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 순 없으니까. 나도 다기능 에어프라이기를 가끔씩만 에어프라이 기능만 쓰고 있으니까. 할아버지의 아반뗴와 나의 에어프라이기의 처지는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되돌려 보자면 그런 기계가 의외로 많은 듯하다. 손 떼가 계속 타지 않으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기계들 말이다. 겨울철 건조해서 산 가습기는 여름을 지나 다시 돌아온 겨울에 작동하지 않았다. 여름에 시원하게 쓴 선풍기는 겨울을 지나 다시 돌아온 여름에 목이 돌아가지 않았다. 아무리 나사를 풀어보고 이리저리 만져도 도통 목디스크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가습기는 이상한 작동 소리는 나지만 밖으로 나오는 것이 없었고, 터질까 봐 무서워 잔뜩 받은 물을 비우고 그날 바로 분리수거장에 투척했다.
엉덩이가 뜨거워진다. 충전기 꽂힌 핸드폰 마냥 자동차 시트가 뜨끈뜨끈해졌다. 옛날 차여서 온열시트도 없는 녀식이 또 밑부분 어딘가 막힌 듯했다. 나는 초조해 손발에 식은땀이 났다.
한계령 휴게소가 보인다.
열심히 올라와 아반떼와 한계령 휴게소에서 속초 바다를 본다. 아반떼에게 생각이 있을까.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사람들은 의외로 무생물인 사람에게 인격을 부여한다고 한다. 우리 어머니가 아반떼를 아방이라고 부르듯이.
다시 꼬불거리는 길을 내려간다.
브레이크 줄이 살짝 풀렸는지 브레이크를 끝까지 밟아도 속력이 크게 줄지 않는다.
유서라도 썼어야 했다.
옆으론 낭떠러지가 보인다. 새빨간 불빛의 비상등이 코너 가드레일마다 발광하며 붙어있다. 아반떼도 나도 힘써서 급경사를 내려간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이 더 무서울 줄은 몰랐다. 그래도 평지에 내려오니, 긴장이 풀려 엑셀 밟기 무서워 완전 천천히 기어갔다. 강원도에 터널이 뚫려 이제 이런 꼬불 급경사길은 안 타고 내려오더라도, 엉덩이가 더 뜨거워져 마치 터질까 봐 공포감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내가 왜 이렇게 위험한 일을 했을까. 분명 정비소 아저씨가 험하게 타지 말라고 했는데.
자책을 하며 내린천 휴게소를 지날즈음엔 아예 시속 몇 킬로 이상을 밟으면 핸들이 미친 듯이 떨렸다.
아이고, 나 죽겠구나. 하고 속도를 줄이면 신기하게 떨림이 멈춘다. 그래도 고속도로인지라 속도를 너무 느리게 가면 민폐일까 살짝 밟으면 핸들이 덜덜거린다.
같이 오래된 친구와 떠난 여행이 마지막 이별 여행이 되는 걸까.
해가 지고 슬슬 익숙한 서울 풍경이 보일 때쯤, 나는 더 무서웠다. 차 없는 고속도로에서 아반떼가 터지면 나밖에 없지만 이렇게 사람 많은 올림픽대로에서 터지면 상상하기도 싫었다. 조금 더 핸들을 꽉 잡고 천천히 운전했다. 다행히 차가 많아 속도를 크게 낼 일이 없었기에, 아반떼도 조용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집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탈출하듯 아반떼에서 내렸다. 불쌍한 아반떼, 어쩌면 마지막까지 혹사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집에 올라가 나는 가족들에게 살 떨리게 불안한 동반 여행을 이야기했다. 다들 살아 돌아왔다고 내 어깨를 두드렸는데 기분이 묘했다. 왜냐면 동시에 아반떼에겐 사형선고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폐차는 할아버지가 하셨다. 옛정으로 타고 가신 듯했다. 간단한 정비를 마친 후 폐차장으로 떠나는 아반떼를 보며 나는 조금 씁쓸했다. 백 년 만 년 갈 듯한 쇳덩어리의 자동차도 몇십 년이 지나면 제 기능을 다하지도 못하는구나. 나도 그런 처지인가 싶어 괜히 심술이 난다. 나도 속이 다 썩기 전엔 쓸모가 있어야 할 텐데. 어쩌면 주차장에 박혀 있는 쇳덩어리 토템이나 집에 콕 박혀있는 살덩어리 인간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구나.
어떻게 보자면 인격을 부여하는 게 우스울 일도 아닌 듯 보인다. 사람이나 자동차나 오래 안 쓰면 그저 녹슬 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