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에서
-박숙경
정오의 축을 살짝 비켜선 창백한 해가
정수리 위에서 한 바퀴 돌다가 냉정함 쪽으로 옮겨갈수록
저묾의 영역에 들지 않겠다는 하루의 표정이 안쓰럽다
수평선의 손편지를 물고 건너오는 파도의 숨 가쁨으로
하고 싶었던 말만큼의 소주잔을 기울이는
바다의 목젖이 부풀어 오르는데
추억을 바지런히 물어다 나르는 해풍의 손길과
섬세하게 강약조절을 하는 은빛 발라드
몇 잔을 기울여 봐도 왼쪽 오른쪽은 없다
눈의 방향은 늘 그대로여서
하루가 서 있는 그자리가 왼쪽 오른쪽이 된다
가끔은 목 놓아 울 줄 아는 떠돌이별이 되고 싶어
머금었던 망망대해를 뱉고 나니
낮술에 꼬여진 파도의 혓바닥이 풀어진다
굳이 푸른 꿈을 꾸는 까닭을 말하라면
하염없이 네거리를 지나고 서른번째 정류장을 지나도
여전히 가득한 사랑, 그거라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