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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Feb 03. 2023

압락사스를 향햔 끝없는 여정

고전산책01 <데미안> 헤르만 헤세

 이 땅에는 두 종류의 세상이 있다. 밝음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 밝음의 세계는 꿈과 희망, 사랑과 온유가 가득하다. 늘 행복하고 포근한 안식처이다. 이와 반대로 어둠의 세계는 분노와 공포, 위선과 거짓, 절망과 탐욕이 지배한다. 인간은 언제나 밝음의 세계만을 원할까? 때로 인간의 내면은 알 수 없는 욕망으로 가득차 있다. 가보지 못한 어둠의 세계는 늘 두려우면서도 경험하고 싶은 유혹의 땅이다. 심지어 어둠의 세계를 가 본 경험이 한 개인을 성장시키기도 한다. 

  소설의 주인공 싱클레어도 그런 아이였다. 그가 속해 있는 세계는 가정이라는 밝음의 세계였고 자상한 부모, 질서와 예의범절이 항상 가까이에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내면에서부터 어둠의 세계에 대한 동경이 자라나고 있었다. 가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환상이었다. 그는 자신의 보금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그가 경험한 어둠의 세계는 꿈꾸고 동경했던 그런 세계가 아니었다. 그는 죽음과도 같은 쓴맛을 경험해야만 했다. 새로운 탄생은 죽음을 대가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고통의 저 밑바닥에서는 작은 희열이 자라고 있었다.  그것은 익숙함과의 결별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성장의 기쁨이었다. 

  크라머가 싱클레어가 지닌 감성의 억제된 영역을 자극하고 이끌어주었다면 데미안은 지성의 영역에서 유혹자의 역할을 한다.  그는 금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는 금지된 곳에 직접 가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고 있어. 스스로 찾아내야만 해. 무엇이 허용되고 금지되어 있는지> 데미안은 끊임없이 싱클레어를 유혹한다.  평안한 일상의 행복에 젖어있던 싱클레어의 내면에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금기에 너 자신을 맡기지 말라는 데미안의 충고는 싱클레어를 혼란에 빠뜨린다. 옳고 그름에 대해,  믿어왔던 기존의 가치에 대해 싱클레어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제 싱클레어는 기나긴 여행을 시작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소설 <데미안>을 상징하는 대표적 구절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를 지니고 있다.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진리는 동서양에 걸쳐 삶의 먼길을 걸어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등대가 되었다.  여기서 말한 압락사스는 선과 악을 한 몸에 지닌 신이다. 사회적 금기와 악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것으로 모든 사람이 반드시 따르고 지켜야 할 절대법은 아니다.  관습과 금기는 시대와 공간의 한계를 분명히 지니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일찍이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자신이 되어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자기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 각자 자기나름의 목표를 향하면서 노력한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건 누구나 자신뿐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통념이 때로 그 사람 내면에서는 동일하게 작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금기를 넘어서지 못하고 평생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이 금기를 넘어선 사람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범죄자에게도 참회의 영혼은 있다.  파란만장한 인생의 여정끝에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그에게 있어 금기를 넘어선 행동은 성장의 영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개개인의 성장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고유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헤세는 이러한 압락사스를 향한 인간의 노력을 인류전체로 확장시켜 바라본다. 1차 세계대전은 바로 이러한 인류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20세기에 들어와 두 차례에 걸친 전쟁을 겪은 인류는 스스로 우월하다고 느꼈던 이성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하기 시작한다.  아도르노, 호르크 하이머, 에리히 프롬 등 일단의 독일철학자들을 중심으로 '도구적 이성'의 한계에 대해 글을 발표한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계몽의 변증법> 등이 그 결과물이다.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자가 겪어야 할 숙명과도 같이 우리는 끊임없이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고 그 오류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그것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성숙의 길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오류가 없으면 배울 수도 없다. 잘못된 길로 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잘못된 길을 피할 수도 없다.  안전한 길만 가서는 안되며 그 길만 갈 수도 없다. 우리는 모두 길에 던져진 생명체로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오늘도  길을 간다. <데미안>은 그 길을 가는 여행자에게 주는 귀중한 지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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