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초보 여행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낯선 곳에서의 첫날

by 헤세

2023년 10월 18일 오후 2시

드디어 도착. 비가 쏟아진다. 제법 많이 온다. 구글맵을 켜서 공항 바로 앞 버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 가는 버스를 찾았다. 1분 후 도착이다. 황급히 달려가 버스에 올랐다. 그러나 트레블 월렛, 하나 비바 체크카드 모두 요금 지불이 안 된다. 아마 다른 방법이 있는 것 같다. 요금은 1 유로. 말도 안 통하고. 돌아가는 길에 2 유로를 지불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무도 티켓을 확인하지 않는다. 숙소를 찾아 방을 배정받았다. 6인실인데 나를 포함해 두 명이 있었다. 이틀 숙박 요금이 22유로. 성수기를 지나 저렴한 듯 하다. 새벽에 어두운 조명 아래 글을 쓰려니 쉽지 않다. 눈도 안 좋고. 숙소 주변을 쭉 돌아보았다.
아직 빌뉴스 도시 전경을 미처 그리지 못해 길을 오가는 사람들, 그리고 입은 옷들, 거리 주변을 살폈다.
여자들은 한결같이 오똑한 코에 금발 또는 짙은 갈색의 머리를 갖고 있었다. 남자들은 제법 큰 덩치에 수염을 기른다. 신기한 유전자의 다양성이다.

현금인출기를 찾아 유로를 인출했다. 제법 든든해진 마음이다. 숙소 안에서 같은 방을 쓰는 친구를 만났다. 영어로 인사. 서툴지만 그래도 말이 나온다. 방을 꼭 잠그고 다니란다. 비가 그치고 산책 겸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초보 여행자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문제가 생겼다. 숙소가 중심가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페와 식당 모두 사람이 가득하다. 서로 대화하며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다. 자리가 없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동양인 하나가 비집고 들어가 식사를 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여행 유튜버들은 잘만 하던데. 내향적인 나는 선득 발길이 움직이지 않는다. 덕분에
올드타운 여기저기를 구경삼아 제법 많이 걸었다. 날이 어두워지고 조명이 켜지자 낮에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3~4층 정도의 석조 건물들이 조명과 어두워진 밤의 대비를 통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카메라로 계속 찍었다. 빌뉴스의 첫인상이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다.

여행자의 용기는 앞으로의 숙제다. 내일 또 도전해 보기로 한다. 결국 숙소 옆 스시 집에서 우동과 초밥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배달도 함께 하는지 볼트 배달기사가 계속 드나든다. 여행지에서의 기쁨 중 하나가 새로운 음식을 먹어 보는 건데 결국 난 또 먹어 보았던 음식을 먹었다.

진입장벽이다. 등산 초입의 몸풀기. 한 달 정도는 진입장벽을 없애고 나 자신을 풀어 놓아 주는 데 집중할 생각이다.

20시간의 비행기 타기와 경유대기로 많이 지쳐 있어 잠을 청했다. 현지 시간으로 밤 9시. 한국 시간 보다 6시간 느리다. 눈을 떠 보니 12시, 한국 시간으로 새벽 5시 30분이다. 웃음이 나왔다. 15년 간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수영을 다녔다. 몸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잠은 다 잔 셈이다.

일어나 곰곰해 생각했다. 뭘하지?

어떤 글을 쓸지 나머지 생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지. 모든 것이 막막하다. 대략의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의 뜻을 제대로 실감한다. 없는 길을 찾아 가는 자의 운명이랄까?

문득 섬광처럼 떠오르는 한 구절. " 한 쪽 길이 막히면 다른 길이 열린다." 더 이상 빠져나갈 길이 사라질 때 그래서 간절하게 길을 찾을 때 비로소 새 길이 여명처럼 밝아 온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빠져 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서는 새 길을 만들 수 없다. 그래서 시작한 선택이고 도전이다. 30 여년 남은 인생을
더 값지게 살고 싶어서

긴 호흡으로 여유있게 뚜벅뚜벅

20년 이상 간접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알아왔다면 이제는 몸으로 직접 부딪치면서 배우리라 다짐한다. 언제까지가 될 지는 모르지만 당분간 한 밤의 고독을 즐기며 글을 쓰리라 마음 먹었다.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대로 적으리라. 의식의 흐름대로. 창문으로 새벽이 밝아오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마침내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