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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 Nov 01. 2023

길에서 만난 사람들

꿈을 찾아서

아주 단순하게 삶의 목적을 물어 본다면 행복이라고 짧게 답할 수 있다. 그런데 행복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이며 어떻게 얻을 수 있냐고 묻는다면 아주 다양한 대답이 나온다. 각자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다.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자기의 재능을 발현하며 사는 것,  꿈을 실현하며 사는 것 등등

나에게 행복을 정의하라고 하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  나를 알고 나의 능력을 알고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그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나를 알고 나의 능력을 아는 것 그것 만큼 어려운 일도없다.

가장 큰 원인은 자아를 발견하는 일에 끼어드는 훼방꾼 때문이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을 갖는 것. 이게 보편적인 행복의 기준이다. 지금 한국 학부모들에게 의대광풍이 불고 있다. 서울의 이른바 좋은 대학 이공계에 들어가는 것보다 지방 의대가 더 낫다라는 분위기가 휘몰아치고 있다. 저마다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할 수 있는 행복의 기준이 틀로 찍어낸 붕어빵처럼 비슷하다.  이러한 압도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진짜 자기 행복의 기준을 찾지 못한 채 남들이 말하는 행복의 기준을 자기의 기준이라고 착각한다. 이 착각은 자기가 속한 무리를 벗어나기 전에는 깨닫기 어렵다. 그래서 무리 안에서 크게 두 부류의 인간형이 등장한다.  열심히 그 행복을 좇는 부류와 거기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는 나머지 부류가 생기게 된다.

어제 숙소에서 만난 한국 청년도 그 두 번째 유형에 속한다. 도저히 압도적으로 지배적인 행복의 기준에 적응하지 못해 대학을 중퇴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무작정 페루로 떠났다. 커피를 좋아했던 그는 커피의 본거지인 남미에 가서 커피를 공부하고 싶었다.  책으로 하는 공부 말고 몸으로 하는 공부를 선택한 것이다. 이상하게 한국사회에서는 공부를 테스트를 잘 보기 위해 책으로 하는 학습이라고 매우 협소하게 정의 내린다. 사고의 프레임이 굉장히 좁다. 이것은 아주 많은 오류를 낳는다. 청소년기에는 모든 것이 공부이다. 모든 경험이 학습이다. 스포츠도 사교도 취미활동도 모두 학습이다. 흔히 말하는 미국의 명문대
아이비 리그도 입시에서 성적만 보지 않는다. 취미활동, 스포츠 활동 등 생활의 전반적인 균형을 본다.
유독 한국사회에서만 인간 능력의 일부분인 학업성취도만을 집중적으로 고려한다. 그 결과 교육의 전체적인 방향이 학업성취도에 맞춰져 있다. 학교폭력이 왜 그리 많은지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의 자아를 확장하기 위한 일련의 모든 시도들과 그 속에서 얻게 되는 지식과 경험 이런 것들이 전부 공부이다. 공부는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그는 알바와 공부를 병행하면서 남미 여기저기를 여행한다. 그리고 우연히 기회가 닿아 마추피추 기슭에서 한국식당을 위탁받아 경영하게 된다.  비빔밥, 떡볶이, 제육볶음 등 다양한 한식요리를 손님들에게 제공했다.  요리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대 초반에 또래의 젊은이들이 경험하기 힘든 자영업자의 소중한 경험을 획득한다. 그것도 먼 외국 땅에서.

지금은 사정상 식당을 그만두고 유럽으로 건너와 견문을 넓히고 있다. 우연히 라트비아 한 호스텔에서 나를 만났다. 내가 먼저 아는 체를 했다. 배낭에 선명한 태극마크를 보고. 그의 꿈은 바리스타다. 나는 그에게서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 한 잔을 선물받았다. 그는 커피를 내리는 데 필요한 장비를 소중하게 파우치 가방에 담아 지니고 있었다. 그의 보물 1호다

그의 부모는 그를 위해 무척 많은 노력을 했다. 그가 공부에 관심이 없음을 선언하자 영어라도 배워야 한다며 비싼 과외 선생님을 고용했다. 고향인 청주에서 평택까지 차로 데려다 주며 그를 지원했다. 그러나 내면에서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시작되지 않은 그 어떤 학습이나 활동도 강한 추진력을 얻기 힘들다. 학습의 효과를 제대로 얻지 못한 채 포기를 선언한다. 아직 배움의 때가 찾아 오지 않은 것이다. 그때 부모님의 낙담하시는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남들 다 가는 대학에 가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두려움에 전문대를 지원해서 합격했다. 그러나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를 알 지 못한 채  입학한 대학은 그를 붙잡아 두지 못했다.  이내 자퇴를 결정한다. 그리고 좋아하는 커피를 배우기 위해 남미행을 결정한다.

자기를 아는 것, 자기의 재능과 적성을 아는 일은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과정이다.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통해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다.
어떻게 직업 선택의 기준이 하나같이 안정적 보수라며  똑같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심어준 것이다.사회가 되었든 부모가 되었든.  그리고 그 결과로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갈래로 펼쳐져 갈 자아의 형성이 다 막히고 하나의 길로 갈수 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진짜 자기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인간은 본질적으로 행복을 추구하며 참자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모색한다. 나이와 상관이 없다.
돌보지 않고 무관심했던 진짜 자아를 찾기 위해 탐구하기 시작한다.

청년이 말했다.

“ 자신 있어요. 뭐든지 해낼 자신이 있어요. 오히려 너무 자신감이 넘쳐 이래도 되나 걱정이에요”

내가 말했다.

“자신감이 없는 것보다는 훨씬 좋아요. 아직 가진 것이 없어 큰 사업이나 투자를 할 게 아니니  괜찮아요. 무조건 부딪치며 경험을 쌓아요.”

공자가 말했다.


15세에 배움에 뜻을 세우라고. 그리고 30세에 스스로 서라고.  서른 살 정도까지 삶의 방향을 세우면 잘 하는 거라고.  방향이 정해지면 그 때부터는 온힘을 다해 자기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그대는 지금 뭘 해도 괜찮다. 그리고 실패하라. 실패하면 어떠냐. 다시 시작하면 되지.  이제 그는 겨우 24살이다.

서울에서 살 계획을 세우며 서울 생활비를 나에게 물어본다. 상세하게 대략의 규모를 알려 주었다. 멋진 바리스타가 되어서 자신의 꿈을 펼칠 그대를 응원한다.

어제 오늘에 걸쳐 한국사람을 계속 만난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과 꿈을 지니고 있었다. 인생은 한편의 드라마이다. 무대 위에 올려진 연극이다. . 각본은 내가 쓰고 연출도 내가 하고 연기도 내가 한다.

모두 멋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를 기원한다.  

검은 받침대는 무게를 측정하는 디지털 저울의 기능도 한다. 정말 정성껏 내려주었

신성한 의식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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