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식이와 학씨 스타일

by 임경환

‘폭삭 속았수다.’ 흥행 이후로 여인들이 남자를 두 종류로 분류한다.

‘관식이 스타일이냐, 학씨 스타일이냐?’

오직 아내와 가족만을 위해 살아온 관식이와

부정한 짓, 못 할 짓, 폭력을 일삼고, 바람피우는 부상길이다.

그 부상길이 기분이 나쁠 때마다 내뱉은 말이 ‘학~씨~’다

혀가 짧은지, 제주도 말이 그런지 ‘확~씨’가 발음이 안 돼서

‘학~씨~’라고 한다.


어찌 남자를 극단적으로 두 부류로 분류하느냐고 반항하지만,

여자들이 그런다면 그런다.

반항하는 자체가 아내가 좋게 봐주지 않을 거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는데

역시 예감이 맞다.

아니 몇 번 안 본 안사돈 앞에서

아내가 “이 사람은 확실한 학씨 스타일이죠.”

기가 찬다.

농담이라도 대꾸할 말이 없었는지

안사돈이 말머리를 돌리는 데도 다시 아내가 한 번 더 말해준다.


나는 회복이 안 되는 학씨가 돼버렸다.

예수님보다 더 억울하지만

평생을 같이한 아내가 그렇다고 평가하면 변명을 못 한다.

관식이처럼 똑같이 하진 않았지만 많은 부분 관식이랑 닮았고

조금은 학씨 부분도 닮았다고는 인정하는 데

아내는 완전히 한쪽으로 몰아붙인다.

하긴 이 드라마가 나오기 오래전부터 아내의 낌새를 눈치채고

‘지금부터 잘하면 되느냐?’라고 했더니

“이미 늦었으니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어.”

하긴 잘 보이려면 잘못한 거의 최소 두 배는 잘해야 하는데

그 시간이며 정성을 어떻게 감당하는가?

차라리 아내가 그렇게 말해줘서 시원하다.

실망 속에서도 나름 나대로 준비된 삶을 할 수가 있으니….


그런데 그 말을 하는 아내를 곰곰 생각해 보면 뭔가 꿍꿍이가 있다.

결국 네가 학씨처럼 했으니 나도 맘대로 하겠다는 말이며

관식이 아내 애순이처럼 살지 않고

‘이젠 춤도 좀 추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런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저녁엔 동사무소에 라인댄스를 알아봐야 하니까

식탁에 대충 밥만 차려주고

내 보고 혼자 먹으라고 하곤 거기다,

늦으니 커피도 니가 내려 먹으란다.


학씨 근처에도 못 가는 나를 학씨로 몰아붙이고

아내가 학씨 마누라처럼 남편 핑계 삼아 춤도 좀 추고

놀고 싶어서 그랬을 거라는 추측이다.


하긴 난 관식이처럼 살라면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내 유전자에 어떤 성향이 새겨져 있다.

그걸 어떡하냐구?

약간은 조상님께 감사와 원망을 드리면서

유전자의 영향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부분에선 학씨를 능가했겠지만

많은 부분에선 관식이를 닮은 행동을 한 적이 훨씬 많은데

아내도 나의 일부분만 보고 그렇게 단정을 해버렸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본인이 학씨 아내처럼 늦게라도 뭘 해보고 싶어서

남편을 그렇게 말한 게 아닐까?

정말 내가 학씨였다면 사돈 앞에서 그렇게 말하겠어!


나도 좀 늦게 관식이 흉내를 내기로 했다.

아내가 그러더라도 대꾸하지 않고,

알았으니 춤 잘 배우고 실컷 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혼자 밥 먹고 커피 내리고

아내에게 몇 시에 올 거냐고 전화도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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