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250805

by 원호연


”J씨는 가족들이랑 같이 살아? “

“아직 철이 덜 들어서 부모님과 지내요. “

내 대답을 들은 사장이 말한다.

“어차피 결혼하면 따로 사는 게 반 세월인데, 엄마 그늘 밑에 있을 수 있을 때까지 붙어있는 게 좋지. 엄마도 좋으실 테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안심을 해버린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고 나서 독립이나 출가를 하지 못한 삶이 문득문득 부끄러워질 때가 있었는데, 삶이란 역시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 보인다는 게 맞나 보다.


수더분한 대화를 곱씹으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경비실 앞엔 하루 동안 쌓여버린 택배와 우편물들이 나를 기다린다. 그것들을 한가득 챙겨 들어와 정리하고 뒷정리까지 마친다. 그러고 나니 빨래 바구니 속 옷 무덤이 거슬려 지나칠 수 없어 세탁기까지 마저 돌리고 가만히 앉아 깨닫는다.


엄마는 내가 지금 행하는 것들을 내 나이 때 나를 키우면서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엄마가 마련한 그늘에서 살림을 돕는 자식이지만, 엄마는 자신이 일군 터전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았다. 자신이 없다. 내가 그렇게 살 자신이 없어서 차일피일 미루던 독립과 결혼을 이렇게 또 핑계를 대본다.


냉장고 속 8킬로나 되는 수박을

단 칼에 썰어 먹기 좋게 손질해 둔 것들에도

화장실 선반 안 가지런히 포개어진 수건에도

시들지 아니하고 푸름을 뽐내는 화초들에도

엄마가 밀려든다.

그 모든 풍경 속에 파도처럼 스민다.

턱 끝까지 울렁울렁 차오른다.

엄마가 파도처럼 밀려온다.

고성 / iphone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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