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드는 생각은요

211211

by 원호연


메모장에 묵혀둔 글을 업로드하기도 합니다. 이 이야기는 21년도에 제가 뒤집어진 피부로 인해 한창 피부과 치료를 받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술을 거의 안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지만, 아직 저 땐 술자리의 즐거움을 놓지 못했던 인간으로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글 시작해 보겠습니다.



술 한잔 마셨습니다...

피부 치료가 잘 안 돼도 좋습니다...

그의 진심이 느껴져서, 글의 첫 문장으로 인용해보았다.


올해 초부터(분명 마스크 때문이겠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 트러블과 커질 대로 커져버린 스트레스로 인해 몸에 병이 나버려 온갖 약을 처방받아먹고 있었다. 나의 이번 연말은 반가운 얼굴을 만나도 술은 입에도 대지 못해, 스스로를 시험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사실 술이란 게 인간에게 뭐 좋을 리 있겠냐마는 이 세상,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엔에 앞서 가끔은 알코올의 힘을 빌리고 싶은 날들이 있지 않겠는가? 특히나 급작스레 추워져 길거리에 캐럴이 들리는 연말에는 다 같이 웃고 떠들 수 있는 기분 좋은 술자리 생각이 절실해지곤 한다.


얼마 전 새로 알게 된 모임이 있다. 내 인생에서의 세 번째 모임이다. 첫 번째는 친구를 가장한 사이비들이었으니 패스하겠다. 두 번째는 중국요리 모임이었다. 19년도에 마라탕이 급 유행했고, 단순한 호기심에 마라탕이 진짜 맛있냐고 물어보려고 들어갔다. 그러다 한국에서 본토의 맛을 낸다는 찐 중식의 맛을 보러 다녔고(이때 중국 냉면이란 것도 처음 먹어봤다.) 중국요리 미식에 빠져, 함께 상해 비행기까지 탔었더란다. 이렇게 모임원들과 여행까지 같이 간 사이였지만 개인적인 이유가 쌓여 방을 나온 지 오래되었다.


‘흠... 개가 똥을 끊지...’

나는 여전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거부감과 거리낌이 없었기에 또다시 새로운 모임 목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방을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번 모임은 수도권에 사는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모여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했다. 주로 일에 대해서 그리고 실패한 연애담이나 오늘은 무슨 웹툰을 봤는지 평범하게 사람 사는 대화들을 나눴다. 난 그곳에서 주로 화자보다 청자에 속했으며, 이것은 내가 친한 사람들을 만나도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통용되곤 한다.


첫 만남 때 먹었던 것

첫 만남 땐 어색한 분위기가 괜히 술을 먹지 않는 나 때문인 거 같아 소주 두 잔을 들이켜고 말았으니, 이번 만남에는 콜라와 사이다로 연명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아 이번에도 결국 술을 마시겠구나 하는 게 감지되었다. 결국 ‘서울의 밤’이라는 도수 25 짜리의 술 몇 잔과 소주 몇 잔 정도를 홀짝거리고 말았는데 오랜만의 음주인지는 몰라도 달큼했다. 분명 마지막 기억의 참이슬은 알코올 향이 입안 가득 맴돌며 식도 끝에서부터 밀어내는 역한 맛이었는데, 이렇게 술은 매번 다르게 기억되는 게 신기하다. 계절, 장소, 사람, 시간, 마시는 사람의 상태 수많은 조건이 맞춰져야 느껴진다는 달큼한 소주. 아무튼 노래방까지 가고 나서야 모임은 파했지만 집으로 가는 버스는 거진 24시간 운행된다는 걸 알기에 차라리 밤새 마실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피곤한 탓인지 더 이상 술 마실 의욕도 나질 않고 무엇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집에 들어가서 모든 걸 씻어내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꼬치를 구워주는 이자카야에 들어갔을 텐데 분명.


어찌 되었든 집에 가려면 버스를 두 번 타야 하는데 첫 번째 버스와 타이밍이 맞지 않아 40분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냥 택시를 잡기로 했다. 그렇다. 당연히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택시를 기다리는 것인지 새벽까지 안에서 담소를 나눌 수 없는 시국이니 밖에서 담소를 나누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새카맣게 삼삼오오 무리 지어 서있었고 사람들 틈 사이엔 다음날 비둘기들에게 일용한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 밤새 생산적인 활동하는 자들도 함께했다.


최대한 이런 상황은 이미 어릴 때 많이 경험해 봤다는 쿨한 모습으로 나의 모든 신경과 생각은 최대한 금액을 아끼는 선에서, 일행과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에 갈 생각뿐이었기에 관심조차 주지 않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택시와 버스를 조회했다. 기다리던 저기 심야버스가 왔다.


“저거 타야 돼 우리”


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미 만석으로 꽉 차버려 정류장을 그대로 지나치는 버스를 보며 같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탄식했다. 당혹감과 내 그럴 줄 알았다 싶은 감정이 결합된 탄식이었을 것이다. 다시 택시 앱을 켜본다. 절대 잡히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내 눈앞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반절은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휘청거리는 이 거리를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도 분명 저런 순간이 있었을 텐데 하면서 지금 내가 저런 모습이 아님에 행복했다. 뭐랄까 약간의 안도감이 함께 들었달까? 그렇지만 휘청거리며 비둘기 밥을 주는 사람들이 아침에 눈을 떠 흑역사 생성했다고 생각해도 좋으니 별일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자 또 한 번의 심야버스가 왔다.


이번엔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같이 가는 일행은 5시간 뒤 출근해야 함에 절망적이었는지 매우 피곤한 얼굴이었다. 일단 나도 집에 가야 한다. 첫 번째 버스에서 내려 24시간 내내 끊기지 않는다는 버스를 타러 줄을 섰다. 물론 끊기지 않는 버스 노선인 건 맞지만 배차 시간이 10분 이내였던 것이 자정이 넘어가면 30-40분 정도 되어버린다. 그래도 괜찮다 큰돈 들이지 않고 집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버스니까! 그렇지만 시간대가 이래서 그런 건지 내 뒤론 가래침을 20초마다 한 번씩 뱉는 남자와 내 앞으론 비틀거리다 차도로 몸을 던지고 다시 올라와 가로수에 기대어 알 수 없는 몸짓을 하던 남자가 있었다. 그 뒤로 길게 늘어진 분명 한잔 걸친 아니 한 다섯 잔은 걸친듯한 얼굴을 한 사람들이 길게 늘어져있었고 그저 빨리 버스를 타고 싶었다. 분명 이 버스 승객의 99%는 취객이었을 것이다. 나도 술을 마셨으니 취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취하진 않았지만 괜히 멀쩡한 승객으로 보이고 싶어 행동거지를 더 철저히 했다. 병이기도 하다.


무사히 잘 내렸고 집으로 걸어가던 순간 김밥 생각이 절실해져 편의점에 들러 김밥 한 줄과 짭짤한 삶은 계란 두 알을 샀다. 술집 메뉴판에 황도나 화채가 없는 게 아쉬웠던 건지 이상하게 맛없어 보이던 두부김치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물과 술만 들이켰더니 뱃속이 요동쳤기 때문이다. 집에 거의 다 와가 먼발치에서 바라본 우리 집 거실 불이 켜져 있다. 얼른 들어가 거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아빠에게 나 때문에 안 주무신 거냐는 형식적이지만 용기가 담긴 질문을 했고, 아빠는 아니라며 원래 이때까지 안 잔다고 하셨다. 아 물론 사실이다. 늦게 주무시는 건 맞지만 그래도 딸 생각에 방으로 안 들어가고 계신 건가 싶었으니까.


재빨리 모든 옷을 벗어 세탁 바구니에 곱게 쌓아두고, 휴대폰을 소독하고 손을 씻었다. 그러고 계란과 김밥을 냉장고에 넣어뒀다. 선반에 컵라면도 준비되어 있으니 풍족해진 느낌이다. 밥은 둘째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씻고 싶어 샤워기를 틀고 뜨거운 방향으로 돌려 몸을 말랑하게 녹여본다. 그러다 마주한 거울 속 내 얼굴을 보고 사람은 참 효율성이 떨어지는 생물체라고 밖에 생각이 들지 않아 참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어떻게 이렇게 조금만 이렇게 무리하면 얼굴에 바로 무언가 올라오는 것인가! 그러니까 좋은 것으로 챙겨 먹자고 애쓰고 병원에서 독한 약도 타서 먹는데도 술 한 잔에 바로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버리는 소위 말하는 개복치스러운 내 피부에 개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모든 걸 체념하기로 했다. 연말이니까 말이다.

연초가 되면 다짐할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아니 적게 마시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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