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0일.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아침에 유치원에 짝짝이 양말(어제 유치원에서 오늘 신고 오라고 나눠준)을 신고가야 할 임무를 받아서 분홍색과 녹색의 서로 다른, 크리스마스 냄새가 물씬 나는 양말을 소망이가 스스로 신었다. 외할아버지는 그 모양도 섬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이런 할아버지 어디에도 없다. 소망이에게 맞춤형 할아버지..)
소망이와 할아버지는 함께 나갈 채비를 한다. 소망이가 말했다.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라서 양말을 짝짝이를 신으라는데 왜 짝짝이를 신어요? 그리고 나 장애인이잖아요. 장애인의 날이면 제 날이네요.”라고 아무런 편견도,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냥 무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또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그냥... 다 같은 사람인데, 굳이 장애인, 비장애인을 나누는 것에 대해 별로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아들의 말이 좀 따끔따끔하게 내 마음을 아리게 하는 것을 느껴졌다. 외할아버지는 “양말이 짝짝이로 다를지라도 다른 건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거야. 외할아버지도 나이를 먹으니 이제 가까운 글씨가 안 보여요. 그리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모를 수도 있지만 누구나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장애가 될 요소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는 거야. 조금 불편함을 줄 수 있는 그런 것들. 할아버지가 글씨가 안 보일 때도 있는 것처럼. 그러니깐 다 괜찮아.”라고 친절하게 그리고 조금은 비범하게 대답해 주신다.
‘다 괜찮아.’ 그래,, 다 괜찮아. 장애인이라고 불리면 어떻고, 비장애인, 장애인 나누면 또 어떤가. 그냥 너는 소망이, 나의 작은, 소중한,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인데, 그냥 우리 같이 행복하게 하루하루 만들어 가면 되는 거지.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여 짧고 정신없는 아침 시간이었지만, 이런 대화를 나누고 할아버지 손을 붙잡고 흰 지팡이를 앞세워서 등원 길에 오르면서 따라나서는 나에게 내비게이션이 되는 지팡이는 언제 사주냐, 지금 사줄 순 없냐면서 정말 평범한 7살 아들 같은 질문을 마구 뿜어내는 너의 말에 대답하면서, 그냥 지금 이대로 행복하다고 느낀다. 이렇게 따뜻한 외할아버지가 있고, 너를 가족들에게 위임하고도 그 시간 동안 아무런 걱정 없이 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따뜻하게 자고 먹고 가족들과 소소한 행복의 웃음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모두 감사할 일이다. 그것으로도 나는 이미 넘치도록 행복하다. 너도 그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