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관장라떼

by Merry Christmas

9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창문 밖으로 선선한 바람이 느껴질 정도로 더위가 가시기 시작했다.


블루베리가 28주를 넘기고 나서야 나는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누워서 먹던 밥을 앉아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앉아서 먹으니 밥맛이 더 좋았던 것일까. 먹는 양은 늘지 않은 것 같은데, 공복혈당이 오르기 시작했다.


항상 92-98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던 공복혈당이 100을 넘어 102-105 사이로 왔다 갔다 하고, 내과에서는 또다시 당뇨약을 먹는 문제로 나와 신경전을 했다. 나는 약을 먹을 생각이 없었으므로, 인슐린 용량을 조금 더 증량했다.


이즈음 공복혈당보다 나를 더 괴롭게 하는 것은 바로 변비였다. 나는 밤마다 누워서 별을 세는 대신 화장실 못 간 날을 세며 잠들었다. 블루베리의 체구가 평균보다 컸기에 다행이었지, 만약 평균보다 작은 아기였다면 변비로 쌓인 변이 아기 자리를 다 차지해서 못 컸다고 여길 정도였다.


입원한 나의 고충이 이러저러한 동안, 혼자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던 남편은 결국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시어머니께서 오명가명 도와주고는 계셨지만 한계가 명확했고, 퇴근이 늦은 남편의 직장 특성상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28주가 넘은 블루베리가 언제 태어날지 모르기에 미리 휴직을 하고 있다가 응급상황에 대비하자는 생각도 있었다.


남편은 공무원이었지만, 남자가 대부분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남편이 일하는 직장에서는 어린 아기를 두고 상처(喪妻)했다는 직원 한 명을 제외하면 육아휴직을 쓴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우리의 결혼 주례를 해 주셨던 남편의 기관장이, 아기가 생기기도 전에 육아휴직은 불가하다고 미리 말할 정도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남편은 직장에서 ‘영아기 자녀를 둔 배우자의 사별’이 아닌 이유로 육아휴직을 하는 최초의 직원이 되었다. 우리의 사정을 아는 남편의 상사가 적극적으로 편을 들어주어 가능한 일이었다.


직장생활을 한 이레로 처음 해보는 장기 휴가라 남편은 제법 설렌 것 같았다.


"자기가 육아휴직을 먼저 하고, 내가 다음으로 휴직하는 거라서, 월급의 100%를 준다네요? 전체는 아니고 본봉의 100% 겠지요?"


수당을 제외하고 '본봉'의 100%인데, 상한액이 150만 원이라서 세금이나 기여금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100만 원 언저리를 받을 수 있었다. 둘 다 휴직 중이다 보니 생활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우리는 휴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에 더 감사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성의껏 첫째를 돌보고는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이의 어린이집 생활을 사진으로 올려주는 '키즈노트'를 보자면, 머리가 엉망으로 묶인 것 하며, 위아래 옷이 난감한 콘셉트로 입혀져 있기 일쑤였다. 준비물을 빠트리고 가는 경우도 자주 있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대부분 알아서 해결하는 것 같았다. 입원 중인 내가 신경 쓰지 않도록 배려해 주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알 수밖에 없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남편의 육아휴직은 첫째 아림 이에 대한 걱정을 덜어줄 수 있어 무척 기꺼웠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사도 하고 싶었다. 이미 집값이 너무 많이 올라버려서 원래 가려고 했던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었고 이사는 포기하자 생각도 했었지만, 여러 번 고심해도 초등학교가 가깝고 남편과 나의 직장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으로 언젠가는 가야 했다. 눈높이를 낮춰, 가고자 하는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라도 가기로 마음먹었다. 입원하기 전 3억5천하던 20년 넘은 아파트는 불과 몇 달 만에 호가가 5억 5천이 되어 있었다. 원래 우리가 사고자 했던 집의 가격과 비슷했다. 지금 사는 집이 5억 7천이었으나, 팔아서 대출을 갚고 나면 다시 얼마간 대출을 내야 했다.

신생아를 데리고 이사하긴 어려우니, 휴직기간 동안 집을 정리하여 가능하면 이사도 해보겠다던 남편의 포부는 또다시 난관에 부딪혔다.


"대출 때문에 은행에 갔다 왔는데, 내가 휴직을 해서 대출한도가 줄었데요."


소득이 줄어드니 대출한도도 줄어드는 것이 당연했다. 대출부터 받고 나서 휴직을 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미처 그 계산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사는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포기하면 마음이 홀가분하다는데, 나는 소인배라 홀가분해지지가 않았다. 태교를 위해 읽고 있던 빨간머리앤 원서를 덮어버렸다. 심란했다.

이럴 때 효진 씨가 있었다면 같이 수다 떨고 놀아주었을 텐데.


고개를 돌려 다들 뭐 하나 봤더니, 1번 동생 근영은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고, 3번 하선 언니는 인간극장을 보며 인간사의 고뇌를 간접체험하고 있었다. 4번... 그 새 누군가 차지한 4번 병상은 하루 이틀 머물다가는 환자가 몇 번 바뀌고 있었는데, 단기 환자다 보니 친해지지가 않아 홀로 커튼을 치고 단절되어 있었다. 이 중에서 그나마 말을 붙일 수 있는 것은 1번 동생이려나 싶어, 말을 붙여 보았다.


"1번 동생, 뭐 보는 거야? 재밌어?"


"..."


대답이 없길래 몸을 일으켜 자세히 보니, 이어폰을 하고 있었다.

1번 동생과의 수다를 포기하고, 남동생 1호에게 카톡을 보냈다.


[야, 심심하다. 넷플릭스 아이디 불러봐]


마침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는지 바로 답장이 왔다.


[뭔데, 원래 티비 안보자나]


[이제 좀 볼라고. 불러봐]


[내 계정 여친이랑 같이봄. 한달 무료 이벤 하던데 그걸로 보셈]


그렇지. 현실남매의 대화는 이토록 전투적이다. 전투적이어야 맞는데... 동생이 갑자기 안 하던 소리를 했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젤 필요할 때 엄마 도움도 못 받고...]


동생 1호는 어릴 때 사고로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되었다. 불편한 몸으로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엄마의 도움이 항상 필요했다. 내가 다른 입원 환자들처럼 친정엄마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 서운한 것이 없지는 않지만, 그게 엄마나 동생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아는데, 동생은 엄마를 독점하는 것에 대해 늘 내게 미안해했다. 그리고 나는 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하는 것에 마음이 불편한 소인배였다.


[무슨 일 있나, 어디 아프나?]


[아니, 이번 주말에 엄마랑 한 번 갈게]


드물게 다큐멘터리를 모드였던 동생의 말대로, 주말에 엄마가 왔다. 재입원할 때 이후로 한 달 만에 엄마를 봤다.


"호이~ 우리 딸~!"


활짝 웃으며 들어온 엄마의 손에는 관장라떼로 유명한 별다방의 연유라떼-무려 벤티사이즈-와 뜨개질 용품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웬 털실?"


"심심하다며, 뜨개질 가르쳐줄 테니까 수세미 떠라. 떠서 다 나주면 내가 잘 쓸게."


나에게 수세미 뜨기를 가르쳐서 수세미 조달을 할 걔획인가본데, 나는 순순히 계획에 동참했다. 커피를 내려놓자마자 당장 해보자고 했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수세미 뜨기는 쉽지 않았다.


"잘 봐라. 요렇게 요렇게 감아서 요렇게 빼라!"


당최 요렇게 요렇게가 어떻게 인지, 엄마 손에서는 한 땀 한 땀 짜여지는 실이건만, 내 손에서는 잘 되지 않았다. 같은 부분을 세 번쯤 시범 보여주다가 마침내 엄마가 역정을 냈다.


“니-는 선생님이 돼가지고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


“아, 내가 잘 알아들으면 선생이 아니고 학생이게! 엄마가 잘 못 가르치는 거지! 아 됐어. 유튜브 보고 배울 테니까 냅두고 가. 내가 꼭 배워서 수세미 왕창 만들어 줄라니깐!”


동생이 같이 들어오지 못하고 차에 기다리다 보니 엄마는 마음이 급했던 모양이다. 나도 그걸 알아서 빨리 가라고 했다. 한 시간도 못돼서 돌아서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인시 하고, 엄마가 주고 간 관장라떼 벤티사이즈를 원샷으로 마무리했다. 디카페인이지만 거의 반년만에 커피를 먹다 보니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얼른 유튜브를 틀어 수세미 뜨기 영상을 시청했다.


약 두 시간 후, 내 손에서는 동그란 기본 수세미 하나가 완성되었다. 비록 허접한 자태였지만 나는 몹시 뿌듯했다.


그리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호가 왔다.

나는 무려 20일 만에 악마를 퇴치할 수 있었다.


엄마, 고마워... 사랑해!




안녕, 블루베리 2편에서 이어집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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