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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주 2일의 출산

by Merry Christmas

어째서 기쁨이란 누구에게나 같지 않고, 오래 머물지도 않는 걸까.

615호에 잠시 왔던 기쁨은 봄처럼 살랑이다 바람처럼 사라졌다.


내 기쁨에 겨워, 누군가의 얼굴이 어둡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간 그다음 날


효진 씨의 진통이 시작되었다.


효진 씨의 트랙토실 용량은 이미 최대치였고, 출산에 임박한 진통까지 잠재울 수는 없었던가보다. 의료진이 수액을 더 연결해보기도 하고, 마그네슘으로 바꿔도 보았지만 진통 강도는 더욱 강해졌고 진통 간격도 더욱 빨라졌다. 효진 씨의 담당의사가 병실로 들어설 때, 진통간격은 2분까지 짧아져 있었다. 효진 씨는 조기진통으로 입원했기에 나나 하선언니와 담당의사가 달랐다.


"35주 1일... 일단 분만실로 내려갑시다."


안경을 낀 커트머리의 여의사는 단단해 보이는 얼굴로 효진 씨에게 분만을 권했다. 37주 이전이 조산이긴 하지만 35주 정도면 출산해도 크게 무리가 없으리라 판단한 것 같았다.


"아뇨, 아뇨, 저 안 내려가도...! 아... 돼욧.. 아..."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강한 진통이 오는데도, 효진 씨는 분만실에 내려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저, 첫째 때도 계속 진통이 있었는데, 안, 아!.. 안 나왔어요. 애가요. 촉진제!... 맞고도 분만실에서 3일이나..! 읏...! 걸려서 낳았거.. 든요!....! 진짠데..! 저 억지 부리는... 거! 아니고, 진짜예요. 3년 전에....! 이 병원에서 낳았거든요...! 하여튼, 아... 아.... 잠시만요....! 후우....! 저 여기 있을게요. 아차피 금방...! 안 나오니까...! 분만실보다 여기가 편하고... 그래서 그래요."


"지금 진진통이에요. 애가 천천히 나온다고 버티기엔 환자분이 너무 고통스러울 겁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응급상황에 분만실만큼 빨리 대응하지 못해요. 35주면 낳아도 큰 문제없으니 내려가서 무통 맞고 낳아요."


의사의 의견과 효진 씨의 의견이 달랐다. 다를 수밖에 없다. 의사는 생각을 말하고, 엄마는 마음을 말하기 때문이다.


"저... 별로 아프지...! 않아요! 참을 수 있어요!"


일그러진 얼굴로 웃으면서 별로 아프지 않다는 효진 씨의 말과 달리, 그녀의 배에 부착된 기계는 이제 1분 간격으로 수치 100을 찍고 있었다.


이미 첫째를 낳으면서 진통을 겪어 본 나로서는, 그 기계가 나타내는 수치가 어느 정도의 고통인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코끼리가 배를 자근자근 밟아대는 고통이라던가. 코끼리한테 밟혀 본 적은 없지만 딱 그런 고통일 것 같다.


진통이 올 때마다 효진 씨의 얼굴은 희다 못해 파랗게 질리고, 침대시트를 붙잡은 손에 힘줄이 도드라져 덜덜 떨렸다. 의사가 잠시 병실 밖으로 나가자, 효진 씨 옆에서 덩달아 안절부절못하고 서 있던 간호사가 도리질을 하며 말했다.


"난 지금 안 낳았으면 좋겠어. 아직 아닌 거 같아."


간호사가 의사 오더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는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몇 달이나 매일 얼굴 보던 친한 사이이다 보니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말한 것이리라.


의사의 판단도 효진 씨의 판단도 모두 근거가 있었다. 아직 이른 주수인 것은 맞다. 효진 씨는 저토록 강한 진통에도 불구하고 아직 자궁 문이 20%도 채 열리지 않았다. 고통을 감수할 수 있다면 하루라도 배에서 더 키우고 낳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마가 죽기 살기로 버텨도 아기가 못 버티는 경우도 있다. 내 경우가 그랬다. 나는 첫째를 분만할 때, 자궁 문이 60%에서 더 열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자연분만을 하겠다고 진통을 참으며 버티다가, 결국 아기 심박수가 떨어져 응급제왕을 했었다.


버티는 것도 낳는 것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게 뭐야. 우리는 진통도 없이 문이 다 열려서 못 열리게 꿰매고 누워었는데, 왜 효진 동생은 문도 안 열리고 진통만 하는 거야."


하선 언니가 울상을 한 채로 중얼거렸다. 맥 수술을 한 사람이 앉지도 못하고 일어서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언니의 말대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인류 보편적인 일인데, 그 과정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이 기가 막힐 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효진 씨의 남편이 왔다. 첫째 아이는 맡기고 온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 것 같았다.


"낳자. 너 너무 힘들었고, 더 힘든 거 내가 못 보겠어. 이제 그만 낳자."


남편의 말에 효진 씨가 울기 시작했다.


"아직 덜 컸잖아...! 우리 아기가..!"


"낳아서 키우면 되잖아. 우리 하준이 키워 봤잖아. 괜찮아."


의사가 나라고 잠시 후에, 효진 씨의 남편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분만실에 내려가겠노라 말을 했다.



그렇게 효진 씨가 분만실로 내려갔다.

점심때쯤 내려간 사람인데, 그날이 저물도록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출산 소식이 들린 것은 그날 밤을 꼬박 새우고 다시 다음날 저녁이 되었을 때였다.


35주 2일.


효진 씨를 똑 닮았더라는 효진 씨의 아기 요미는, 폐가 펴지는 주사를 몇 번이고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숨을 쉬지 못했다. 엄마에게 안겨보지도 못하고 아기는 인큐베이터로 옮겨졌고, 많은 이들의 기도에도 불구하고 뇌출혈이 왔다.


효진 씨의 짐은 1인실로 옮겨졌다. 분만 이후로 정신을 놓을 듯이 울고 있다는 소식을 짐을 가지로 온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들었다.


나의 입원 생활이 이토록 편안한 것은 효진 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생긴 불운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그녀에게 받은 도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정작 효진 씨의 불행 앞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고작 하루 만에 달라진 병실 분위기가 믿어지지 않았다. 텅 빈 4번 침상이 낯설었다. 효진 씨가 다시 웃으면서 택배를 들고 들어오며 '이제 불 끌까요?'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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