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일상은 언제나 같았다.
외래를 보기 위해 끊임없이 오는 환자들
퇴원하여 가는 환자들과 새롭게 입원하는 환자들.
누군가는 아기를 지키지 못하여 가슴을 뜯으며 울어도
누군가는 아기의 탄생에 행복한 웃음을 웃고,
그 모든 사람을 품고
매일 같은 시간에 문을 열고, 진료를 보고, 문을 닫았다.
그 속에 있는 나도 병원과 같았다.
누군가의 슬픔을 보며, 기쁨을 보며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오늘도 똑같은 아침을 맞이하며 눈을 떴다.
아침의 밝은 햇살과 흘러가는 뭉게구름이 보였다.
1번 자리에서 2번 자리로 옮긴 후, 며칠 만에 내 컨디션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창이 없어 컴컴하던 1번 자리와는 달리,
2번 자리는 밤낮이 선명했다. 햇살을 받아서인지 몸이 덜 피곤했다.
게다가 창문 앞이라 환기가 잘 되다 보니
은근히 나를 괴롭히던 소양증이 덜해지기도 했다.
좋은 컨디션으로 기상했기에 내 앞자리-원래 내가 있던 그 1번 자리 말이다-에 새로 들어온 신입에 대해 말해보기로 하겠다.
울산 산모의 비보가 전해지던 날, 남편과 함께 615호에 들어온 이 어린 부부는 대략 2-3일 정도 남편이 내내 옆에서 지극정성 수발을 했다. 수술을 하고 들어온 것인지, 환자인 아내는 누워서 거의 거동을 하지 않았었다.
그날 이후, 남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고 우리 병실 사람들은 무던히 애를 써 보았으나,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실제로 내 자리는 커튼을 열면 1번과 마주 보고 앉아서 밥을 먹는 구조다- 있어야 되다 보니, 서로 간에 서먹한 사이가 되면 병실 생활의 질이 대단히 떨어지게 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이유로, 병실 내에서 거리는 가장 멀지만 친하지 않은 자를 견디지 못하는 효진 씨가, 이 새로운 신입에 대해 몇 번이고 친밀도를 높이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내내 남편이 딱 붙어 있어 그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 채 오늘까지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그 남편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효진 씨가 스콘- 대단히 맛이 있어서, 퇴원할 때 집에 왕창 사가지고 가고 싶은 1순위다- 을 잔뜩 들고 내 자리로 왔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1번 신입에게도 나누어주며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스콘을 먹으며 우리는 이제 아는 사이가 되었다.
약간 통통하고 피부가 정말이지 깐 달걀처럼 뽀얗고 매끈한 그녀의 이름은 문근영이었다.
쌍꺼풀 굵게 진 순하고 호동그란 눈 하며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삼십 대 초반인 그녀의 실제 나이보다도 훨씬 어려 보였으므로 우리 셋은 그녀를 거의 20대 초반으로 보았다.
말도 안 되는 동안을 가진 근영 씨의 외모보다도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이제 막 23주가 된 근영 씨가 벌써 3번째 수술을 한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병실에서 최고위험산모였다.
실제로 자궁 경부는 단단한데,
출산이 임박하거나, 수술 등으로 약해진 경우에는 강도가 약해지며 두부 같은 질감으로 변한다고 한다.
근영 씨의 경우는 원추절제로 경부 일부분을 잘라냈었기 때문에 그 잘라낸 한쪽 벽이 단단하지 못하고 경도가 약해진 것이다.
두부에 바늘로 실을 꿰어 매듭을 묶어도 단단하게 고정되기 힘들듯이 그렇게 자꾸 한쪽이 풀려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4차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데요!."
이 사람아... 그게 그렇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말인가. 3차 수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들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데도, 근영 씨는 마치 '병아리가 태어났어요!'라고 할 법한 어투와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격이 아주 낙천적인 사람인 것 같았다.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는 아기 태명도 심지어 '룰루'였다.
3번 언니와 내 표정이 심각해지자 효진 씨는 얼른 대화 주제를 근영 씨의 남편으로 돌렸다.
"내가 보니까, 이제까지 입원해서 본 남편들 중에 1번 동생 남편이 간호를 젤 잘하는 것 같아. 2번 친구도 봤지? 머리 빗겨주는 거? 우리 남편은 와서 딱 네마디만 하고 가. '아픈데 없냐. 먹고 싶은 거 없냐. 심심한데 할거 없냐. 그럼 난 간다.' 이게 끝이야."
"맞다. 내가 3일 동안 보니까 차도 끓여주고 초콜릿도 까주고 달라고 안 해도 밥 먹을 때 물도 딱 떠 놓더라. 그것도 빨대까지 꽂아서."
내가 맞장구를 쳤다. 3번 언니도 새삼 감탄하며 칭찬을 더하다가 그 남편은 지금 어디에 가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근영 씨 남편은 회사에 갔는데, 병원과 아주 가깝다고 했다.
"여기서 보일걸요?"
그리고 창문 밖으로 멀리, 밤이 되면 꼭대기에 빨간 불이 깜박이는 가장 높은 건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삼성? 삼성 다녀?"
동탄 거주민인 효진 씨는 바로 알아봤다.
사내커플이라더니 좋은 회사 다니는 부부로구나. 우리 셋은 부럽다기보다는 기특한 마음으로 1번 동생을 보았다. 근영 씨가 너무 동안이다 보니 나이차는 많이 나는 동생 같은 느낌이랄까.
"며칠 쉬어서 엄청 바쁠 거예요. 이제 좀 있으면 장기 해외출장이 있어서 준비할 것도 많고."
근영 씨가 재미있다는 듯이 킥킥대며 웃었다. 우리는 웃지 못했다.
"... 장기면 얼마나?"
"39일이요."
"..."
우리나라 굴지의 기업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근영 씨 남편이 대단한 사람인 것은 알겠지만
아내가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한 달이나 자리를 비워야 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남편 없이 4차 수술을 하게 되면 어떡하는가 말이다.
근영 씨를 대신해서 앞으로 닥쳐올 상황으로 인해 근심에 빠진 우리 셋과는 달리,
근영 씨는 아주 깨발랄하게 코미디 프로를 보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쨌든... 우는 것보다 웃고 있으니 보기에는 훨씬 좋았다.
근영 씨와 커튼을 열고 말할 수 있을 사이가 된 그날 점심쯤
"이게 누구야?"
아중씨가 다시 병실에 왔다.
못 알아볼 뻔했다.
우아한 체크무늬 원피스를 맵시 있게 입고 차분한 머리에 화장까지 한 그녀가 아중씨임을 알아차리는데 5초쯤 걸린 것 같았다.
"오늘 퇴원하거든요."
출산 후 이제까지 1인실에 입원해 있다가 아기와 함께 퇴원하는 것이었다.
가기 전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 동네에 있는 덕원고를 나왔던, 김포 사는 아중씨.
우리가 이렇게 만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
아중씨도 같은 생각인지 눈물을 보이다가
이내 작은 종이가방을 나에게 내밀었다.
"입원 중이라 좋은 건 못 샀어요. 그래도.. 언니 블루베리 옷 아직 하나도 안 샀죠?"
사실이었다. 이제 27주에 접어들었지만, 나는 혹시 만약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걱정을 마음 한 구석에 늘 가지고 있었다. 웃고 떠들고 태평하게 지내고는 있었지만 블루베리의 출산준비물은 단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
"이제 괜찮아요. 언니 다 왔어요. 블루베리는 반드시 무사히 태어날 거니까 걱정 말아요."
내 아기 블루베리의 첫 옷이 그렇게 생겼다.
그 소중한 옷을 받아 들고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몰랐다.
삼키고 삼켜 겨우 고맙다는 말을 했다.
눕신. 2번 동생. 꼼 꼼 이의 엄마. 고마운 그녀.
9월 9일. 블루베리 27주 4일.
아중씨는 그렇게 우리를 떠나 아기와 함께 행복한 일상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