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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1)

by Merry Christmas

새로운 아침이 밝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켜고 임신어플을 열었다. 입원 이후 매일 아침의 루틴이다.


D-90
오늘 블루베리는 27주 2일이에요!
[우리 아기는 이만큼 성장하고 있어요]
크기:35cm~38cm 몸무게 1000g ~1300g
[이 시기의 아기는-]
*손가락 빨기를 좋아해요~!
*흑백의 빛을 구분할 수 있어요~!
*1kg이 넘으면 조산으로 태어나도 생존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또한 28주부터는 모체 밖에서의 생존율이 95% 이상이지요.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28주가 코앞으로 다가왔네요-!

[이 시기의 엄마는-]
*태동이 강해지고 자궁이 커져 내장기관의 압박이 심해집니다.
*숨을 쉴 때마다 흉통이 느껴질 수 있고
방광과 대장이 눌려 자주 변의를 느낄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한다.

태아의 성장과 특징을 보여주는 임신어플인데, 주수별로 보여주는 것이라서 내용은 어제와 똑같았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줄어드는 D-day 날짜와 하루하루 늘어나는 아기의 주수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았다.


어플에서 알려준 바와 같이, 블루베리가 1kg을 넘으면서부터 소변을 보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었는데 반해, 변의는 반비례하듯 점점 뜸해졌다. 쾌변두유도 먹고, 바나나도 먹고, 푸룬주스를 먹어봐도 소식이 없었다.


앞으로 90일 동안 변비에 시달려야 하는 것인가...


암울한 생각을 하면서, 침대 옆 탁자 서랍에 넣어둔 혈당체크기를 꺼내어 손가락에 피를 내어 보았다. \


타닷-! 소리와 함께 니들이 순식간에 손가락을 찔렀다. 불발이다. 무서워서 너무 얕기 찌르다 보니 피가 나올락 말락 하고 있었다. 다시 찌르기가 싫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손가락 피를 짜내고 있는데, 바로 옆 3번 침상에서 커튼이 걷히는 소리가 나고 하선언니가 인사를 건네왔다.


"잘-잤어-?"


아침의 여운이 묻어있는 차분한 목소리와 동시에, 병실 저쪽에서 링거 거치대를 끌고 오는 소리가 났다. 우리 목소리를 듣고 효진 씨가 오는 소리였다. 효진 씨는 내 자리인 2번과 3번 침대 사이에 둔 의자-사실상 효진 씨의 전용석이었다-에 포르르 와서 앉았다.


“뉴스 봤어? 옆에 하주대 응급실하고 중환자실 간호사들이 코로나 확진됐데.”


“어이구- 어떡해.”


한두 명이 아닌 데다, 하필 응급실과 중환자실 간호사라서 뉴스 댓글창은 난리가 나있었다. 병원에서 관리를 똑바로 하지 않아 그렇다는 둥, 확진된 간호사의 부주의함이 문제라는 둥, 대부분 병원과 의료진을 비난하는 댓글이 폭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병원에 있어보니 알겠다. 불특정 다수의 환자가 드나드는 병원에서 의료진이 감염에 가장 취약하다는 것을. 일주일에 한 번 내과 진료를 보러 갈 때면 외래환자들과 같이 진료를 볼 수밖에 없는데, 병원의 안내 문구에도 불구하고 마스크를 벗는 등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환자들이 드물지 않게 보였다. 병원에서는 입원환자들의 감염을 막기 위해, 외래진료 전이나 점심시간 등 진료시간을 달리해보지만 완전히 그들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진이 감염병에 걸리면 그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았다.


"댓글들이 너무하네 진짜. 의료진도 환자한테 옮는 건데! 안 그래? 마스크 쓰라고 그렇게 말해도 얼마나 말을 안 들어? 학교에서도 그래. 감염병 돌면 학교 안 온다고 서로 눈 비비고, 기침 일부러 하고 병균 옮겨주는 애들 꼭 있어! 마스크 절대 안 써! 그러다 교사가 옮잖아? 그럼 학부모들이 전화 오고 민원 넣고 난리가 나. 교사가 위생관리를 도대체 어떻게 하길래 감염병 걸리냐고! 그럼 병가 내면 또 민원 와. 애들 수업 결손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아 화딱지 나네 진짜."


말하다 보니 열받아서 급발진을 하고 말았는데, 3번 언니가 가만히 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2번 동생 혹시... 선생님이야?"


"..."


나는 그렇게 정체를 들켰다.


어찌 되었든, 그날 하주대 사태는 우리가 입원해 있는 감탄 병원에도 영향을 끼쳤다. 지정된 1명의 보호자 외에는 면회가 전면 금지된 것이다. 이것은 첫째를 집에 두고 온 많은 장기입원환자들을 눈물 흘리게 할 사건이었지만, 뉴스를 확인한 당일의 우리는 그 여파를 짐작할 수 없었다.


오늘은 수액 바늘을 교체 하는 날이었으므로 샤워가 가능한 날이었고, 3일 만에 씻는 우리는 기분이 좋았다.

간호사가 와서 수액 바늘을 빼고 새 옷을 주면, 우리는 샤워실로 가서 짧은 샤워를 했다. 오래 서 있으면 안 되는 몸이기에 꼼꼼하게 씻을 수는 없었지만 3일에 한 번 오는 그날이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3번 언니와 내가 순서대로 샤워를 하고 나와 새 수액라인을 연결하고, 언니는 검사실로 내려갔다. 오늘 드디어 임신당뇨 검사를 하러 간 것이다. 라보파가 혈당을 올리기 때문에 임신당뇨가 나올 확률이 높긴 했지만, 3번 하선 언니는 워낙 마른 체형의 소유자라서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건만,


"역시 나도 임신당뇨야. 미리 예상했었어."


평소보다 눈썹이 약간 쳐져 있는 것 같긴 했지만, 현실부정 없이 언니는 바로 납득하고 수긍했다. 본인의 임신당뇨를 예상한 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언니가 챙겨 온 입원 가방에서 혈당체크기가 나왔다는 사실이었다.


"언제 사 왔어요?"


"응, 나는 임신당뇨일 것 같아서, 예전에 친정엄마가 쓰시던 거 달라고 해서 챙겨 왔어."


이 언니 준비성 무엇...

'J '임이 확실하다.


그렇게 나름대로 평온한 하루가 흐르는 것 같았던 그날 저녁,


“어머 어떡해, 이거 도와줘야 될 것 같은데.”


휴대폰을 보던 3번 언니가 신음을 흘렸다. 언니는 우리에게 감탄병원 카페에 들어가서 새로 올라온 게시물을 보라고 했다. 효진 씨와 나는 각자 휴대전화로 게시물을 찾아보았다.



[제가 어떻게 해야 아기를 살릴 수 있을까요?

오늘 막 23주 됐는데, 경부가 3cm 열려 양막이 돌출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입원해 있는 울산 병원에서는 양막 나와있으면 맥수술을 못한다고 하는데, 제가 찾아보니 감탄병원에서는 저와 같은 상황에서 수술하신 분들이 있고 성공하신 것 같은데, 제가 가면 아기를 살릴 수 있을까요? 여기 병원에서는 이동 중 잘못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기를 포기하라고 합니다. 저는 포기를 못하겠는데, 아기를 꼭 살리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해야 아기를 살릴 수 있을까요? ]



글을 보는 순간 그 절박함에 덩달아 가슴이 옥죄였다. 내가 겪은 상황과 너무나 비슷했다.


“아무것도 못해보고 보낼 순 없잖아. 어떻게든 살려야지. 여기 오라고 댓글 달자.”


3번 언니가 먼저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4번 효진 씨는 조기진통이니 게시글과 같은 케이스가 아니었지만, 3번 언니는 자궁경부무력증으로 비슷한 케이스였기에 나처럼 마음이 심란할 것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내가 해줄 수 있는 도움을 주기로 했다.


-힘내세요. 이동 중 위험이 있는 것도 맞아서 무조건 오시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저도 같은 케이스였는데,

대구에서 여기 와서 수술 잘 받았어요. 오시기로 마음먹으셨으면 지금 진료 끝난 시간이긴 한데 일단 병원에 전화해 보세요. 그리고 전화 안 받으면 이 카페 응급맥 긴급수술 게시판에다가 현재 증상 상세히 달고 전원요청 글 쓰세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병원에서 바로 응답 줄 거예요.


우리는 셋 다 열심히 댓글을 달았다. 우리 말고도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댓글도 줄줄이 달리기 시작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하면 점심때쯤 오겠지? 우리 실에 자리 비었으니까 우리 방으로 올 수도 있겠다.”


내가 있던 1번 침상이 아직 비어있었다.


“내가 아까 다른 방 다 둘러봤는데, 지금 병실 빈자리 우리 방 밖에 없어. 여기로 올 거야.”


효진 씨가 그렇다고 하니 우리 방에 들어오는 것이 거의 확실하지 않을까?


“여기 오면 좋겠다 그렇죠?”


3번 언니에게 말하며 돌아보았는데 언니는 진실로 경건하게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교회에 안 다니지만, 종교를 떠나서 남을 위해 저렇게 진지하게 오래 기도를 할 수 있는 언니가 훌륭해 보였다.

우리는 잘 될 줄 알았다. 또 한 명의 아기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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