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눕신의 뒤를 잇는 자

by Merry Christmas

꼼꼼이의 탄생은 615호의 등대가 되었다.


길고 긴 항해,

감당하기 어려운 파도에 오롯이 홀로 맞서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얼마나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는지 우리는 안다.

너무나 멀어서 희미해 보여도, 시간이 걸려도, 우리는 무사히 도착할 것임을,

아중씨는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동안 고생했다고, 정말 축하한다고 그 손을 잡고 인사해주고 싶었지만, 아중씨는 615호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곳은 고위험 산모 병동이고, 분만 병동은 다른 층에 있었기 때문에, 수술 후 그쪽으로 옮겨진 것이다.

같은 병원에 있건만, 달라진 층 하나로 그와 우리의 상황이 분명히 구분되었다.


첫째를 제왕절개로 낳아 본 나로서는, 그녀가 지금쯤 또 다른 고통을 겪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것은 분명 행복한 고통일 것이다.


오래 입원한 환자답게, 병실을 드나들던 간호사 및 여사님들 모두 아중씨의 출산을 알았다. 남겨진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중 몇몇은 아기 얼굴도 보고 왔는지, 아기가 아빠랑 똑같이 생겼다는 것과 아중씨가 몇 호실에 있다는 것 등을 말해주었다. 소식을 전하는 그들의 얼굴도 안도와 기쁨이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밝게 들뜬 분위기 속에서, 비어버린 2번 침상이 보였다. 그곳에 늘 누워있던 아중씨의 모습이 잔상처럼 기억났다. 사실은 고작 16일의 인연이다. 내가 615호에 입원한 지 고작 16일이 지났을 뿐이므로. 그러나 한평생 알아왔던 사람이 없어진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문득 효진 씨도 아중씨의 자리를 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나보다 아중씨와 더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에 빈자리가 더욱 허할 것이었다. 남겨진 사람의 마음은 남겨져 본 자만이 알 것이므로


"효진 씨도 곧이네. 둘 다 가면 나 정말 기분 이상할 것 같다. 하하..."


나는 머지않을 미래를 생각해 보며 미리 설레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붙잡을 수 없는 곳이 아닌가. 목표날까지는 어떻게든 남아있어야 하고, 그 시점이 지나면 반드시 나가야 하는 곳. 우리가 있는 곳이 그런 곳인데.


허전하지만... 멍하게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난 감상을 털어내며 현실적 자아를 강제로 각성시켰다.

이곳은 자리가 비자마자 다음 환자가 들이닥치는 곳이었다. 누군가 615호의 명당인 저 2번 자리로 들어오기 전에 내가 가서 누워버려야 했다.


드디어 나도 햇빛 비치는 자리로 가는구나.


원무과에 전화를 거는 내 마음이 두근두근 거렸다.


"615호 1번 환자, 서현진입니다. 오늘 우리 병실에 2번 자리가 비어서, 제가 1번에서 2번으로 자리 이동을 요청드립니다."


나는 기대를 담아 정중하고 상냥하게 내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자리이동이요? 안됩니다-"


이런. 거절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왜, 왜요?"


당황한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저희가 환자 관리가 어렵고, 그런 식으로 해달라는 대로 이동시켜 주다가는 끝이 없어요. 안되니까 그렇게 아세요."


수 간호사의 매몰찬 말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허망하게 손에 들린 수화기 너머로 다시 텅 빈자리가 보였다. 머리 쪽과 오른쪽으로 창문이 있어 햇살이 내려오는 환한 침대가 아련했다. 이동하겠다고 생각했다가 좌절되자, 창문도 없는 내 자리가 더 침침하게 느껴졌다. 꼼꼼이의 탄생으로 한 껏 행복했던 파스텔색 마음이 순식간에 회색이 되며 침침해졌다.


다시 전화해 볼까?

아니다. 전화 내용에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본디, 한 번 안 된다고 한 것을 되게 해 달라 조르는 성미도 아니었다. 괜히 졸랐다가, 소위 '진상'으로 찍혀서, 앞으로 남은 병원 생활이 고달파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쉽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체념은 했는데, 마음이 우울해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저녁때가 지나고 이동을 도와주시는 여사님이 들어오셨다. 일요일 저녁 진료가 있을 리 만무하건만, 여사님은 퇴근 전 꼭 병실을 둘러보며, 별일이 없는지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곤 하셨는데, 지금이 그 시간이었다.


여사님과 우리는 다시 한번 꼼꼼이의 탄생 이야기로 소소한 이야기 꽃을 피웠다. 화기애애한 이야기 중에 문득, 효진 씨가 여사님에게 내 자리이동이 거절당한 이야기를 전했다. 오늘이 일요일이라 새로 입원하는 환자가 없어서, 저녁때가 되도록 자리는 비어 있었다.


“안 해준다고 했다고? 걔들이 차트가 꼬일까 봐 그래. 침대 번호 보고 기록하고 하는데 자리 바뀌면 자기들도 신경 써야 될 일이 있으니까. 그래도 그렇지.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고 창문도 없는데, 애가 지금 몇 주지?"


"27주예요."


"27주면 아이고야~ 석 달 가까이 있어야 되는데 햇빛도 못 보고 그렇게 있으면 안 돼. 그럼 애한테 안 좋지. 잠깐 있어봐.”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여사님이 병실 밖으로 서둘러 나가셨다. 그리고 약 10분쯤 뒤에 다시 들어오셨다.


"저 자리로 가자"


그렇게 툭 한마디 던지고, 내 자리에 있던 생수며 가방을 손수 2번 자리로 옮기는 것이었다.


"바꿔도 된데요?"


“내가 수간호사한테 바꿔주라고 했어. 햇빛도 못 보고 몇 달 누워있으면 애한테도 안 좋다고,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는데 애한테 좋은 환경을 줘야지 않겠냐 했더니 바꿔준다고 하네."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수간호사를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당황스러워하는 와중에 짐을 챙기나 효진 씨도 얼른 와서 이불이며 침구를 2번 자리로 옮겨주었다. 나도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뭐라고 안 해요?"


"뭘 뭐라고 해. 못살아~ 정말~!!! 이러고 말지. 수간호사가 말투가 좀 뾰족해도 애가 착해. 나중에 고맙다고 음료수 하나 갖다 줘."


감사한 일이었다. 자기 일도 아닌데, 안 좋은 소리 들으면서까지 생판 남을 위해 나서주는 여사님이 너무 고마웠다. 자리 옮기기가 마무리되자 여사님은 이제 퇴근한다며 병실을 나섰다. 나는 그 뒤에 대고 여사님을 불렀다. 그러고보니 나는 아직 여사님 성함도 모르고 있었다.


"여사님. 제가 아직 여사님 성함도 몰라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나? 나 김미영이야."


김미영 여사님이 눈을 찡긋하며 웃으셨다.


그렇게 난 눕신의 뒤를 이었다.


그토록 환해 보였던, 아중씨의 자리. 며칠 전 그녀가 앉아 창 밖을 바라보던 그 모습 그대로, 이중 씨가 보고 있었을 창 밖 풍경을 보았다.

뿌옇고 검은 도시의 밤하늘, 저 멀리 높은 빌딩 꼭대기에서 붉은빛이 깜박였다.

중간에 잠깐 퇴원했던 기간을 빼고라도 내가 입원했던 기간이 거의 한 달이었는데,

나는 내가 입원한 도시의 야경을 처음으로 본 것이다.


아중씨는 창 밖을 보며 그 긴 시간 동안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나도 아중씨처럼 잘 버텨내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내게 해주었던 것처럼 신입생(?)에게 잘해줘야지.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니, 바로 앞 냉장고 너머 3번 침상이 보였다. 가려진 커튼 안쪽에서 조용히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아마 울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이가 아픈 동안 들어와서 살갑게 대해주지 못한 것이 이제와 미안한 마음이 되어 떠올랐다.


"언니, 울어요?"


조용한 인기척이 안에서 들리더니 -아마 눈물을 닦는 것 같았다- 3번 침상을 가리던 커튼이 조용히 열렸다. 중단발을 한쪽으로 느슨하게 묶어 내린 여성스럽고 처연해 보이는 언니의 얼굴이 보였다. 언니는 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화면에는 일시정지 된 영상이 더 있었다. 나도 종종 첫째의 동영상을 보다가 아이가 보고 싶어 울곤 했는데, 언니도 그런 것 같다고 속으로 짐작했다.


"무슨 영상 보고 있었어요?"


"인간극장 보고 있었어..."


아, 아이 영상이 아니라 인간극장이었구나. 언니는 인간극장을 보다가 너무 감동적이라서 눈물이 난 모양이었다.


"인간극장이 슬펐어요?"


"아니... 내가 비염이 있어서... 여기가 좀 건조한 것 같아."


그렇다고 한다. 어쨌든 우는 게 아니라니 다행한 일이었다.


“인간극장 재미있어요?”


“응... 재미있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 수도 있고...”


인간극장... 시작부터 약간 우울해지는 BGM이 떠올랐다. 평소 슬프거나 우울해지는 것을 절대 보지 않는 나로서는 -사실 난 텔레비전 자체를 잘 안 보는 편이었지만- 이해불가의 영역이었는데, 인간극장이 재미있다는 언니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입원기간 내내 인간극장을 정주행 했다.)


나보다 네 살 많은 3번 언니의 이름은 박하선이었다. 뱃속의 아기는 27주 4일로, 블루베리보다 3일 빨랐다. 그러고 보니 아직 아기 태명을 물어보지 않은 것이 떠올랐다.


“태명이 뭐예요?”


“... 뜨빠기.."


듣자마자 탄생 배경이 떠오르는 명징한 태명이었다.


"아... 뜻밖에 생겼구나. 하하... 둘째예요?"


"아니... 셋째야.. 첫째는 초등학교 6학년이야....”


둘째는 7살. 둘 다 여자아이로 언니를 꼭 닮았다. 성별은 아직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딸인 거 같아... 시아버지가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카드 주셨는데... 다시 돌려드려야 될 것 같아.”


"아들일 수도 있잖아요."


"아니야... 그냥 느낌이 그래."


그렇다고 한다.


“임당 검사는 했어요?”


“아니... 친정이 충남인데, 여름이라고 놀러 갔다가 갑자기 애가 나오려고 해서 거기 대학병원 고위험 산모실에 3주 누워 있었거든. 그래서 임신당뇨 검사를 못했어... 그런데 난 임당일 것 같아.”


아니 왜 또...


"난 가족력이 있거든. 엄마가 당뇨가 있으셔.”


내 친정아빠도 당뇨가 있으시다. 나도 그래서 임당인가.

어쨌든, 난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 근거 없는 행복회로를 돌리는 편인데, 이 언니는 안 좋은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는 유형인 것 같았다. 알게 된 지 며칠 지나지는 않았지만 24시간을 함께 지낸다. 자연히 대략의 성격은 짐작을 할 수 있게 되는 편인데, 나는 이 언니가 큰 소리로 웃거나 고무된 것을 보지 못했다. 반대로 화내거나 짜증내거나 초조해하거나 슬퍼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의 감정은 표정이나 목소리만큼이나 잔잔한 파도와 같았다. 희노애략의 기복이 심한 나와는 분명 다른 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할수록, 진지하고 잔잔한 말투가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효과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덩달아 침착해지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하선언니는 좋은 사람 같았다. 그렇게 나의 병원 생활을 가장 오랫동안 함께하게 될 3번 언니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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