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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보(2)

by Merry Christmas

그래. 나는 정말로 잘 될 줄 알았다. 내가 그랬듯이 - 그녀도 아기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간절한 기도가 흐른 밤은 느리게 지나갔다.

커튼 사이로 비치는 여명이 병실 안에 들어찬 어둠을 겨우 흩어내기 시작하자,

조용히 615호 병실 문이 열렸다.


부스럭부스럭, 달그락


청소여사님이 조심스럽게 병실 청소를 시작했다.

행여 잠든 환자들을 깨울까 봐 비질도, 쓰레기 정리도 소리를 죽여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내 오른쪽에는 창문이 있기 때문에 굳이 침대를 가리는 커튼을 치지 않고 자는데, 여사님이 커튼 치치 않은 안쪽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우리는 눈이 딱 마주쳤다.


"... 안녕하세요."


"하이고, 깜짝이야!"


자는 줄 알고 있다가 내가 인사를 하자 그녀는 무척 놀랐는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놓쳤다.

미안한 가운데 놀라는 모습이 웃겨서 나는 낄낄 웃으며 사과를 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는 것을 의식해서 놀라 입을 막으며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었는데, 3번과 4번 커튼이 열리면서 하선 언니와 효진 씨도 여사님에게 인사를 했다.


"왜 다들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어요?"


그러게. 왜일까.


"여사님 놀래키려고요."


내가 실없는 말을 하는데, 3번 하선 언니가 진지하게 오늘 1번에 신입이 들어올 것 같다는 말을 전했다.

여사님은 농담처럼 '그럼 더 깨끗하게 해야겠네'라고 하며, 캐비닛이며 서랍 등을 한 번 더 닦고 나가셨다.


약 30분이 지나고 본격적인 병원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수련간호사가 들어와 혈압과 체온을 체크하고,

아침식사가 들어오고,

밥을 먹고 2시간이 지나서 나란히 혈당 체크를 했다.

평소와 어김없이 같은 일상 속에서 우리는 초조히 병실 입구를 바라보며 '소식'을 기다렸다.


"... 저기... 울산에서 여기까지는 얼마나 걸려?"

"글쎄... 4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은데."

"그럼 아침 9시에 출발하면 한시쯤 도착하는 거네."


그리고 오후 1시가 지나갈 무렵까지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즈음 내가 기억을 더듬어 병실 동지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주었다.


"아까는 미처 색각을 못했는데, 내가 올 때 시간이 더 걸렸어. 대학병원이 퇴원수속이 엄~청 느리더라고. 바로 안 해줘. 낼 서류도 많고. 아마 수속하느라 오전 다 보내고 빨라도 11시는 돼야 출발할 수 있을걸?"


"11시에 출발하면 오후 3시는 돼야 도착하겠네!"


내 경험상 그러했기에.

오래 걸릴 것이라 말은 해놓고서는, 혹시 들어오는 엠블런스가 잇는지 일어나서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2번 친구 뭐 해. 엠블런스 거기로 안 와."

"아... 맞나."


그리고 우리는 또 기다렸다.

기어코 오후 3시까지 아무 소식이 없자, 4번 효진 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안 되겠어! 내가 가서 보고 올게!"


어디로 가서 뭘 보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병실에서 유일하게 기동력과 정보력을 갖춘 효진 씨의 행동력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부른 배를 안고 링거 폴대를 끌고 나간 효진 씨는 약 20분 후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병실로 들어서는 효진 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아니 어두웠다기보다 충격받은 것 같았다.


"... 왜 그래?"


불길함을 느낀 내 물음에, 효진 씨는 드물게 뜸을 들이다가 말을 이었다.


"... 분만되었데..."


분만.

일반적으로 분만했다는 것은 아기를 낳았다는 말이었으므로, 슬픈 단어가 아니건만, 우리가 있는 이곳에서는 그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분만된 것이 23주 아기라면...


우리가 병실에서 기다리던 오후 1시경, 울산에서 온 엠블런스는 병원에 도착했다.

대기하던 박순제 선생님을 만났지만, 진료실에서 이미 아기 머리가 나오고 있었다고 했다.

발이나 팔이 먼저 나와 걸려 있었다면 양수천자로 수술을 시도해 볼 수 있었을 테지만, 그 작은 아기의 머리는 너무나 허무하게 엄마의 몸 밖으로 나와버렸다.

아기는 살지 못했다.


효진 씨에게 이야기를 전해 듣고, 나는 찬물을 뒤집어쓴 마냥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그녀와 같았던 나의 입원 과정이 떠오른 것이다. 울산의 그녀와 나의 차이는 아기의 자세였다.


대구에서 감탄병원으로 출발하기 직전 보았던 초음파에서, 블루베리는 분명 머리가 아래로 향한 자세였다.

대구에서 이곳으로 이동한 시간은 약 3시간. 그 사이에 아기는 뱃속에서 반바퀴를 돌아 다리가 아래로 향한 역아(逆兒) 자세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내 아기의 목숨을 살렸던 것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기적 앞에 간담이 서늘하면서 곧바로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미 일어난 기적은 기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내게 일어난 기적이 다른 사람에게도 일어날 거라고 쉽게 생각했던 걸까.



만약 우리가...

여기로 오라는 댓글을 달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기를 살릴 수 있었을까.

적어도 니큐(신생아 중환자실)가 확보된 병원에서 태어났더라면, 아기가 살 수 있지 않았을까.

가보지 않아 결과를 알 수 없는 일말의 가능성이 주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효진 씨도 하선 언니도 충격 속에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결국 이곳에 입원해 있는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줄 수 있는 도움도 없었다.


침잠하는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서 눈 돌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당분간 카페를 보지 말아야겠다. '


그렇게 생각하며 감탄병원 카페 화면에서 뒤로 가기를 누르려는 그때,

울산 산모의 글이 올라왔다.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았습니다. 용기를 내서 왔는데... 결국 저의 아기는 하늘로 갔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네요.

분만하는데, 마지막까지 꿈틀거리던 태동이 잊히지가 않아서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도 저는 충분히 힘들어하고 충분히 슬퍼하겠습니다.

제게 와서, 함께 해준 그 행복한 시간을 생각하며 씩씩하게 또 살아가겠습니다.

그 새벽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댓글을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지키지 못했지만, 여러분들은 아기 지키시고 순산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어디선가 소리 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내는 울음인지도 모르겠다.


저녁 어스름이 질 무렵 침구를 든 간호사가 병실로 들어왔다. 1번 자리에 새로운 환자가 들어온 것이다.

새로 온 환자와 보호자가 짐을 풀고 조용히 커튼을 치는 동안

해는 완전히 저물었다.


어떤 이의 하늘이 무너져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야 했고, 우리 모두는 그 시간 속에서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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