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중씨의 아기 꼼꼼이가 태어난 날은, 마침내 내 딸 아림이의 열이 떨어진 날이었다.
수술 날짜는 잡아 놓았지만, 아중씨는 아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서 먹었다. 일찍 태어날 아이가 조금이라도 더 자라기를. 혹시라도 그 사이 양수가 늘어나서 분만 날짜가 뒤로 미루어지기를. 아중씨뿐만 아니라 효진 씨도 나도 새로 들어온 3번 하선 언니도 온 마음으로 기원했었다.
하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36주 5일. 그날, 꼼꼼이의 주수였다.
수술을 몇 시간 앞두고, 아중씨는 부지런히 머물던 자리-2번 자리 말이다-를 정리했다. 출산 후에는 남편이 와 있어야 하기 때문에 1인실로 옮길 예정이라, 사실상 오늘 오전이 아중씨가 615호에 머무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석 달이 넘는 병실 생활을 했음에도 버릴 짐이 많지 않았다. 남편이 자주 오고 있기도 하고, 수술 날짜를 받은 시점부터 부지런히 짐 정리를 했던 것 같았다.
"언니, 이거 언니 줄까요?"
아중씨가 나에게 건네준 종이가방에는 몇 알 남지 않은 니페딕스-수축 방지를 위해 경구 복용 중인 약-와 질정, 어플리케이터, 혈당을 체크할 때 쓰는 니들과 알코올솜 등이 들어 있었다. 입원 중인 우리에겐 밥보다 더 가까이했던 필수품인데, 이것들을 정리해서 주는 것을 보니, 새삼 아중씨가 병실을 떠난다는 사실이 눈앞에 다가왔다.
"고마워... 잘 쓸게...."
615호 병실에 남을 우리 세 명 중에, 내가 제일 늦게까지 있어야 해서 나에게 준다고 했다.
어느새 짐 정리를 다 하고, 덮고 자던 이불이며 베개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2번 자리가 보였다. 어차피 사용하던 침구라 세탁을 할 것이 분명한데도, 각 잡아 접어 놓은 이불이 - 과연 아기 태명만큼이나 꼼꼼하고 깔끔한 그녀의 성미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곧 간호사가 와서 아중씨를 데려갔다.
"괜찮겠지?"
내가 혼잣말처럼 효진 씨에게 물었다. 사실은 괜찮을 거다라는 대답으로 나를 좀 안심시켜 주기를 바라고 한 말이었다.
"그럼~. 폐 성숙 주사도 맞았으니까 괜찮겠지."
긍정적인 효진 씨는 역시 내가 바라는 대답을 해 주었지만, 대답과 달리 표정은 불안과 초조가 가득했다. 이 친구는 걱정은 되더라도 좋은 말만 내뱉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새로 온 3번 언니는 아닌 모양이었다.
"엄마가 임신당뇨면 애가 폐 성숙이 느리다는데... 애도 작다면서..."
우리가 걱정하는 포인트를 바로 짚은 발언이었지만, 내가 듣고 싶은 말은 아니었다. 나는 더 초조해졌다. 그동안 병실을 스쳐갔던 영애언니, 려원 씨, 그 밖에 다른 환자들도 있었지만, 내가 입원한 이후로 우리 병실에서 출산을 하게 된 것은 처음이라 더 긴장되었던 것 같다. 긴장하니 시간이 평소보다 더 천천히 가고 있었다.
약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아중씨의 남편이 병실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
"자가 호흡 했어요?"
"아기 숨 쉬었어요?"
효진 씨와 나는 거의 동시에 질문을 쏟아냈다. 아중씨의 남편이 웃었다. 사실 질문을 하면서도 그의 얼굴이 밝아 보여 꼼꼼이의 무사함을 예감했더랬다.
꼼꼼이는 대견하게도 스스로 첫울음을 울었다. 첫울음으로 물이 가득하던 폐에 공기가 차고, 쪼그라져 있던 폐를 날개처럼 펼쳐내었다.
마침내
태아는
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