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주사 맞고 있어.]
딸은 아동병원 수액실에서 해열주사를 맞고 있었다. 아침부터 두 종류의 해열제를 교차복용 해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 시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집 앞에 있는 아동병원에 가신 것이다.
[아림아, 많이 아파?]
[아니? 이거 봐. 엄마랑 똑같아]
아이가 수액 바늘을 꽂은 제 팔을 전화기 앞으로 들어 보이며 어쩐지 자랑스럽게 말했다. 면회 왔을 때, 내 수액바늘을 유심히 보더니, 자기도 엄마와 같아진 것이 좋은 모양이었다.
39도까지 열이 올랐었는데, 해열 주시를 맞으니 38도로 떨어지는 중이라고 했다. 여전히 콧물이나 기침 등의 증상은 없다고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열이 떨어지는가 보다 했는데, 저녁 8시경 다시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다시 열이 오른다고 했다. 쉽게 내릴 열이 아닌 것 같았다. 해열제를 교차복용하고 옷을 벗기고, 미온수로 닦이주는 등 열날 때 해야 할 조치를 남편에게 알려주고, 오늘 밤을 보낸 후에 내일 아침에 아동병원에 입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날 밤을 무사히 넘겨주기를 바랐건만, 멀리 있는 아이의 열은 부모의 뜻대로 내려주지 않았다.
밤 9시. 아이가 자기 전에 늘 걸려오는 영상통화가 오지 않았다. 열이 나서 일찍 자는가 했는데, 10시경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대기 중이라는 남편의 전화가 왔다. 열이 나서 응급실에 간 들, 고생만 한다는 것을 신생아 때 경험한 후로 어지간해서는 응급실에 가지 않는 우리였다.
[열이 몇 도 길래 응급실에 갔어요?]
[40도였어요.]
40도. 단언컨대 출생 이후로 그 정도의 고열이 난 적은 없었다. 사람 체온이 그렇게까지 올라갈 수가 있는 것이었나. 딸과 영상통화를 하고자 했으나, 열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아림이는 의식은 있었으나 엄마를 알아보지도 말을 하지도 못했다.
[자기한테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자기도 힘들 텐데 걱정까지 시키고. 미안해요]
남편은 그 와중에도 내가 신경 쓰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아이가 아픈데 엄마가 당연히 알아야 하고 걱정을 해도 같이 하는 게 당연한데도. 나중에 알면 더 마음 아프니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을 달라고 했다.
속이 타들어가는 부모의 희망과는 달리, 그 밤에도 응급실의 대기는 길고 길었다. 아이가 의사를 만난 것은 밤 12시가 되어서였다.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PCR 검사를 하고, 폐 x-ray, 피검사, 더불어 뇌수막염 의심 소견도 있다 하여 뇌수막염 검사도 했다. 남편과 아이는 새벽 2시가 되도록 검사를 계속했다. 힘들었던 것은 아이가 소변을 보지 않아 소변검사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정신이 혼미하다 보니 물도 잘 마시지 못했고 졸다가 깨다가 하는 정신없는 아이에게 억지로 물을 먹이는 것이 힘들었다 한다.
새벽 2시. 고생스러운 검사가 끝나고 남편과 아이는 음압병실에 들어갔다. 코로나 음성이 나오기 전까지 격리조치 된 것이었다.
피곤한 몸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잠들 수가 없었다. 음압병실은 너무나 추웠고 열이 나서 더 추위를 타는 아이의 몸은 경련하듯 덜덜 떨렸다. 밤새 남편이 아이를 안고 있었다.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은 해가 뜨고도 한참 뒤인 오후 3시였다.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 추운 음압실에서 밤을 지새우고도, 아림이의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코로나가 아님을 확인했으나 열의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남편은 여전히 열이 나는 아이를 데리고 해열제만 받은 채 오후 4시에 퇴원을 했다.
아이가 아파서, 내 속이 타들어가도 615호 병실의 일상은 계속 흘러갔다.
아중씨가 실을 푼 지 하루가 지났고
9월 4일. 금요일인 오늘. 려원 씨는 드디어 퇴원을 했다. 며칠 전 보았던 려원 씨의 남편과 딸, 유모차를 탄 아이가 와서 엄마의 퇴원을 함께 했다. 려원 씨의 딸은 우리 딸과 나이가 비슷했다. 엄마를 반기는 그 몸짓과 아직 아기 같은 말투 하며 모든 것이 아림이를 생각나게 했다.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 눈물이 났다. 려원 씨에게 기쁜 일인데 울어서 미안했다.
울며 웃으며 배웅을 하고 나는 아예 자리에 커튼을 치고 누웠다. 아이가 열이 나는 것은 따지고 보면 그리 큰 일도 아닌데 울적해져 있는 모습을 아중씨나 효진 씨에게 보이는 것이 미안하고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오전에 려원 씨가 퇴원하기가 무섭게 3번 자리에는 새 환자가 들어왔다. 나는 커튼 너머로 그 소리를 들었다. 평소라면 반갑게 병실 생활을 안내해 줄 나이지만, 엄마도 없이 고열에 시달리는 내 아이 생각에 낯선 사람과 친교를 나누기가 힘들었다. 새로 온 그 환자도 마음이 좋지 않은지 커튼을 치고 혼자 울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거의 하루 종일 커튼을 치고 우울해있자, 진료 볼 시간도 아닌데 진료실 이동을 도와주시는 여사님이 병실로 들어오셨다.
"이 방 분위기가 오늘 왜 이럴까? 얘는 또 왜 이러고 있니?"
나를 두고 한 말이 분명했다. 효진 씨가 여사님에게 내가 우울한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몇 마디가 오가고, 여사님이 내 커튼을 열어 내 안색을 살폈다.
"걱정 마. 걱정한다고 애가 좋아지는 것도 아니야. 여기서 계속 있을 것도 아니고, 시간 금방 가. 나가서 더 사랑해 주면 돼. 애가 엄마 없는 거며 아픈 거며 기억할 것 같지? 애기들은 사랑받은 것만 오래 기억해. 아무 걱정 마. 가서 많이 안아주면 돼."
여사님의 멘털케어 서비스를 내가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엄마 같은 여사님이 위로를 해주니 어릴 적 엄마가 호- 해주는 것처럼 덜 불안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오지도 못하는데도 그랬다. 신기한 일이었다.
아림이의 열이 내린 것은 그로부터 이틀이나 뒤였다.
일요일인 6일 새벽. 마침내 아림이가 정상 체온이 되었다. 며칠을 열에 시달려 아픈 기색이 역력한 채 휴대전화 너머 엄마를 보고 웃었다. 웃는 작은 얼굴에 서러운 열꽃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