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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22. 2021

인어

말할 수 없는 비밀


상반신은 사람을 닮았으나, 하반신은 물고기의 지느러미와 비늘을 달고 있는 그 존재를 인어라 이야기하지요. 우리의 친숙한 동화 '인어공주'와 다양한 매체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친구인 인어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매혹적인 이야깃거리지요. 어쩌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르고요.

물론 저는 인어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요? 그 이윤 바로 제 친구 때문입니다. 자신이 직접 인어를 보았다고 이야기하는 제 친구 때문이지요. 그 애는 지난주부터 계속 인어에 빠져 인어에 관한 모든 정보를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적, 잡지, 논문 마다하지 않고 전부 다요. 뭐 이러나저러나 저에겐 그다지 새롭고 흥미로운 일은 아니라 그저 지켜보고만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그 애에 대한 소개를 안 했군요.


최현해. 제 부모님 친구의 자식이자, 제 옆집에 사는 친구였습니다. 지금은 이사 가서 서로의 집이 약 10분 정도 걸리는 사이이지만, 같은 학교에 다녀 매일 얼굴 보는 사이입니다. 워낙 조용하던 저와 호기심 대마왕인 그 애는 모두가 우리 둘이 친구라는 사실에 놀랄 정도로 비슷한 구석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딱 하나만 빼놓고요. 바로 학교에서 5분 정도 걸으면 있는 골목길의 샌드위치 취향을 말이지요. 그곳에 파는 고등어 샌드위치가 무척 맛있습니다. 그 애는 정어리 샌드위치를 더 좋아하지만요. 생소하고 난해한 이름인 만큼 이 가게는 다른 사람들의 눈길, 발길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 덕에 이곳은 우리의 아지트이기도 했어요. 중학교 시절부터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을 들러서 서로의 꿈과 남들에겐 말 못 할 비밀 이야기들을 나누었지요.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학원에 다니게 되어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겼습니다. 가장 최근에 다녀간 적은 갑작스러운 수업 취소로 시간이 났을 때였습니다. 오랜만에 현해와 함께 간 샌드위치 집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조심스럽게 다가와 속삭이는 말투로 인어를 보았다고 말하는 그 애의 말에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지요. 원래 어렸을 적부터 공상과 현실의 구분을 선명하게 그어놓지 않은 그였기에 저는 이번에도 심심치 않은 맞장구를 쳐주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인어에 대한 각종 자료를 조사하고, 다시 인어를 보기 위해 학교를 빠지고 저 먼 서해바다까지 간 것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저도 서해바다에 함께 와있습니다. 그 애가 인어를 보았던 날이 지난 8월. 오늘날은 바람이 쌀쌀해지고 반팔에서 긴팔로 갈아입게 되는 10월입니다.  어쩌다 보니 그 애가 부모님께 한 거짓말로 인해 이곳까지 함께 오게 되었지만, 저는 지금도 강력히 현해가 무언가를 잘 못 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어란 건 그저 인간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요. 그래도 답답했던 수험 생활에 뻥 뚫린 바다를 보니 기분전환도 되고,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낮엔 하루 종일 해변에 돗자리를 깔고 수평선을 쳐다보았습니다. 그 애의 인어 찾기 열망은 아주 지독했지요. 저는 덕분에 파라솔도 그늘도 없는 그저 돗자리 위에서 메말라 갔습니다. 오후 10시가 지나고, 어둑한 밤이 온전하게 찾아왔을 때,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일으켰습니다. 실망해하는 그 애를 달래 먼저 보내고, 돗자리 위의 짐을 정리하고, 돗자리를 탈탈 털어 잘 개어낸 뒤에야 저도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아, 제가 일어난 순간에 바로 주저앉았다고 이야기했나요? 그렇습니다. 저는 다리에 힘이 풀려 그동안 부정해왔던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깊고 넓은 바닷속, 해수욕장의 안전 선 뒤로 보이는 저 사람의 상반신과 물결에 비친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저 지느러미와 비늘. 그 순간 인어의 존재를 보았습니다. 분명 인어가 맞을 겁니다. 태어나서 눈 뜬 순간 이후로 이토록 아름다운 존재를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뿐만이 아니라 곧바로 심장 뜨는 소리가 쿵! 하고 울렸습니다. 매분 매초 울리는 심장인걸 알면서도 이렇게 뛰다니요. 시험을 앞두고 커피 넉 잔을 연이어 마셨을 때보다 더 크게 울렸습니다. 놀란 맘은 쉬이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주저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한참을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애에게 얼른 오라는 재촉 문자가 아니었다면 그곳에서 밤을 지새웠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힘 풀린 다리에 해변가에서 주은 나무막대를 짚으며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는 동안 한참을 인어의 생각뿐이었습니다. 또한 그동안 그 애의 말에 코웃음 쳤던 제 자신을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이튿날 저는 해가 뜨기도 전에 일어나 해변으로 향했습니다. 날이 밝아지면 사람들 눈에 쉽게 발각되니, 가장 어두운 해가 뜨기 전 새벽이라면 다시 한번 인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요. 새벽의 바닷바람은 꽤 쌀쌀했습니다. 얇은 긴팔 옷이 펄럭이고 거친 원단이 살결을 스칠 때 제 동공은 바람보다 더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때 툭 치는 익숙한 손짓. 제 곁으로 다가온 현해는 한쪽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로 잠옷 위에 후드 집업 걸치고 슬리퍼를 신고 다가왔습니다. 원래 아침잠이 많아 지각을 아슬하게 모면하고 했는데 말이죠.


어젯밤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숙소에 도착해 바로 잠에 들었습니다. 인어의 자태를 찾으려 했지만, 저 수평선 너머로 붉은빛이 돋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일출도 무척이나 아름답긴 했지만, 어젯밤에 마주한 인어의 자태에 비하면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제 옆의 현해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말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인어를 봤다는 얘긴 거짓말이었어.  

그냥 매일 학교에 가서 공부만 하다가 집에 오면 잠만 자고 다시 나오는 일상들이 너무 지루했나 봐. 너도 예전처럼 내 얘기를 재밌어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챘어. 아무래도 난 너처럼 무언가를 제대로 잘하지 못하니까. 그냥 벗어나고 싶었어. 옛날엔 우리 둘이 가만히만 있어도 정말 즐거웠었는데 말이야. 너와 이야기를 나눈 자체만으로도 하루가, 매일이 즐거웠었어. 우리가 열 살 때 해적이 되어 바닷가로 모험을 나가자고 했던 얘기 기억해? 바닷속 인어와 요정들을 만나자던 그 얘기. 우리는 나중에 크면 모험을 떠나자고 했었지. 그런데 이젠 그럴 수 없겠지. 우리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알아. 물론, 나쁜 뜻은 아냐. 점점 클수록 내가 모를 네 모습이, 네가 모르는 내 모습이 생겨나겠지 그리고 우린 그렇게 어른이 되어갈 거야.


잠시만, 현해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습니다. 거짓말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어젯밤에 본 건 대체 뭐였는데, 그 황홀한 자태에 마치 눈이 멀어버릴 듯했고, 두 다리를 잃은 듯 주저앉아 버렸던 그 순간을 형형하게 기억하는데 말이야. 저는 당장이라도 현해의 어깨를 붙잡고 어젯날의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애의 얼굴이 너무나도 쓸쓸해 보여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 건드리지 않더라도 금방 울음을 토해낼 것 같은 눈망울과 애써 올린 입꼬리, 그리고 먹먹한 분위기를 가진 것은 처음 보아서, 그 애의 준비물을 챙겨주던 건 항상 저였지만, 슬픈 저를 위로해준 건 항상 그 애였습니다. 저는 처음 본 그 애의 슬픈 얼굴에 어떤 섣부른 위로도, 토닥임도 건네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문을 연 국밥집에서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조용히 비우고는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여 가장 늦은 오전 시각에 출발하는 버스를 올랐습니다. 제 옆자리에 앉은 그 애는 평소랑 다를 것 없이 익숙하게 꼬인 이어폰의 줄을 풀고 귀에 꼽고선 눈을 감았습니다. 그 애는 무척이나 평온한 얼굴로 제 옆자리에 앉아있는데 저만 이상한 것 같았습니다. 어젯밤 제 두 눈으로 마주한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여름밤의 환상도 아닌 다 늦은 가을 무렵의 신기루였을까요, 아니면 제가 그날 해변에서 정신을 잃고 꾼 꿈은 아니었을까요. 저는 아무래도 어젯밤 일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어 얘길 꺼내면 다시 그 먹먹한 얼굴을 마주할까 봐 겁이 납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엔 우스갯소리로 지나가듯이 꺼내어볼 수 있을까요.




다음 날, 학교에서 본 그 애는 지난주와 다를 것 없이 웃는 얼굴로 제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이후로 우린, 여느덧과 다름없는 나날들을 보냈고, 성인이 되었고 다른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자주 만날 수 없는 환경에 연락 주기는 갈수록 뜸해졌지만, 우린 그래도 함께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제가 그날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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