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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Jul 26. 2021

화분

우연의 커다란 의미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내가 식물에 애정을 주고 키워본 건. 아무래도 초등학교 시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가져오라고 해서 엄마가 내 손에 쥐어주던 작은 화분. 고사리 손으로 품에 소중히 안고서 가져갔었지. 친구들은 알록달록하고, 아름다운 꽃을 가진 화분을 들고 와 누구 것이 가장 예쁘나 뽐내곤 했었는데 하필 엄마가 내 손에 쥐어준 건 몸통만 달랑 있는 모난 선인장이었다. 일생이라 하기 뭐하지만 8세 인생 통틀어 동물을 키워본 적도 무언가에 애정을 가진 적도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살았던 아이라는 것을 엄마는 일찍도 알아차려서 내게 맞는 화분을 골라주었다. 친구들은 매일 아침 일찍 반에 와서 가방만 제 자리에 내려놓곤 곧장 제 화분으로 가서 아침 인사를 하곤 학급 공용 물뿌리개로 한가득 머금을 수 있도록 물을 주었다. 반면 나는 다육 선인장으로 일주일에 한 번 물을 줄까 말까 해 생기려던 관심도 없어지던 찰나였다. 나를 대신에 결국 선생님의 물을 주었고, 선생님이 보살피는 화분이 되어버렸다. 모든 학기가 마치고 과한 영양분을 받은 화분은 되려 시들어버렸고, 몇몇 화분만이 살아남아있었는데, 생기는 없지만 죽지 않은 것을 살아남았다 하니까. 그중 하나가 내 화분, 아니 선생님의 화분이었다. 추운 겨울날에 가장 따뜻하고 건조한 곳에 자리한 선인장은 우리가 학년을 마치고 이 반을 떠날 무렵에 자그마한 흰색 꽃을 틔웠다. 지금 생각하자면 꽤 예쁜 꽃이었지만, 그 시절 우리에겐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분홍색, 노란색이 아니라면 다 별로인 꽃이었었다.

지금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바로 어제 화훼농가 살리기 프로젝트로 옆 부서에서 전 직원에게 나눠준 화분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괜찮다며 거절해도 한사코 모든 인원에게 물량을 배치한 옆 부서 사람들은 다른 가족들도 함께 키우라면 양 손 가득 나눠주었고, 그럼에도 양 손에 한가득 담긴 다른 부서에 나눠줄 꽃 바구니를 들고 돌아갔다.


그렇게 나의 퇴근길을 함께한 이 화분은 이름표도, 물을 주는 주기도 적혀있지 않았다. 다만 연보라색의 잎을 활짝 핀 꽃은 제법 예뻤다. 그래도 기왕 받은 화분은 베란다 한편에 볕이 잘 드는 곳에 두었다. 몇 달이나 가는지, 아니 며칠이나 있을 지조차 모르겠지만 살아있는 동안은 애써 키워볼까 하는 심산이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꽃을 검색했더니 꽃의 이름은 뭐였더라. 외국 이름의 다섯 자였는데 유의 깊게 보지 않아서 기억이 잘 나진 않는다. 벌써 화분이 우리 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으니 나의 기억력치곤 이 정도만 기억해도 나름 괜찮은 거다. 물은 일주일에 한 번만 주면 된다 해서, 매주 돌아오는 토요일 느지막한 오전에 일어나서 물을 주곤 한다. 주중에는 거들떠도 안 보는데 주말에 아점을 먹을 생각에 냉장고를 뒤적이다 보면 자연스레 떠오르게 된다. 그렇게 나는 혼자지만, 혼자 살지 않게 되었다.


이 꽃이 나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약 일 년 후의 일이다. 지금은 아직 알지 못할 터지만, 추후 일 년 후의 내가 느낀 감정과 변화를 꼭 이야기하리라 다짐하며, 기대해도 좋을 기분 좋음을 만끽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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