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의 배경을 알 수 있는 '난각번호'
계란을 고를 때 단순히 가격이나 브랜드만 고려하는 소비자가 많다. 하지만 껍데기에 찍힌 숫자만 제대로 읽어도 생산 환경과 유통 상태, 제품 유형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다. 국내에 유통되는 계란에는 ‘난각번호’라는 10자리 숫자가 새겨져 있다. 이 번호는 산란일자, 농장 고유번호, 사육환경 순으로 구성되며, 숫자 하나하나가 계란의 배경을 설명하는 정보다.
특히 마지막 자리는 닭이 어떤 환경에서 길러졌는지를 나타내며, 동물복지와 직결된 수치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숫자가 계란의 영양이나 품질을 좌우하지는 않는다. 계란의 신선도는 유통과 소비 시점에 따라 달라지며, 기능성 계란이나 대란 역시 성분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난각번호 마지막 숫자, 즉 사육환경을 뜻하는 코드는 1부터 4까지다. 숫자가 작을수록 닭이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사육된 것을 의미한다. 자유 방사(1번), 축사 내 방사(2번), 개선된 케이지(3번), 기존 케이지(4번) 순이다. 동물복지 인증을 받은 계란은 1번과 2번 제품에 해당된다.
닭이 사는 공간은 수치로도 확연히 구분된다. 기존 케이지(4번)는 한 마리당 0.05㎡, 개선된 케이지(3번)는 0.075㎡의 공간이 제공된다. 반면, 방사형 사육은 훨씬 넓은 공간을 확보해 닭의 스트레스를 줄인다. 윤진현 전남대학교 동물자원학부 교수팀은 지난 2월 ‘산란계 동물복지 현황과 과제 토론회’에서 사육환경과 스트레스 지표 사이의 상관관계를 제시했다.
연구에 따르면, 3번 환경에서 기른 닭이 낳은 계란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스테론 수치가 2번 환경에서보다 약 두 배 가까이 높게 나타났다. 이에 따라 정부는 축산법 시행령을 개정했고, 기존 케이지(4번) 방식은 2027년 9월부터 시장에서 퇴출될 예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육환경 차이가 계란 속 영양성분까지 바꾸는 건 아니다. 김동진 대한양계협회 전무는 연합뉴스에 “사육 방식에 따라 가격 차이는 발생하지만, 영양성분 자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계란의 신선도는 숫자로도 확인할 수 있다. HU(Haugh Unit) 지표는 계란의 중량과 농후단백 비율로 계산되며, 높을수록 신선도가 높다. HU 72 이상은 1등급, 60 이상 72 미만은 2등급, 40 이상 60 미만은 3등급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 수치만으로 신선도를 판단하기엔 한계가 있다. 계란이 닭에서 막 나왔을 때가 가장 신선한 상태이며, 이후 보관 온도와 유통 시간이 길어지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실제로 대부분의 유통업체는 저장 온도를 10도 내외로 유지하며, 선도 관리를 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계란을 빨리 소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신선도 유지 방법이다.
산란일자를 직접 확인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난각번호 첫 4자리는 계란이 낳아진 날짜다. 냉장 보관할 경우, 산란일자로부터 한 달 내에 섭취하는 것이 권장된다. 외형으로도 신선도를 확인할 수 있다. 계란을 그릇에 깼을 때, 노른자가 높게 솟고 선명한 형태를 유지한다면 신선하다. 반대로 노른자가 퍼지고 색이 지나치게 진하면, 보관 기간이 길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대형마트나 온라인몰에서 판매되는 계란은 기능성, 유정란, 대란, 왕란 등 다양한 형태로 나뉜다. 하지만 이들 간의 차이는 성분보다 소비자의 취향에 더 가깝다. 크기가 클수록 단백질이나 지방량이 약간 늘어날 수는 있으나, 성분의 구성 자체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소란은 44g 미만, 중란은 44~52g, 대란은 52~60g, 특란은 60~68g, 왕란은 68g 이상으로 분류된다. 기능성 계란은 닭에게 특정 사료를 먹여 영양소를 강화한 제품으로, 오메가-3, 셀레늄, 비타민 등을 더한 형태다. 그러나 기능성 성분을 제외하면, 일반 계란과 다른 부분은 거의 없다.
국립축산과학원 역시 “기능성 계란은 일부 영양소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인 구성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무정란과 유정란의 차이도 발생 가능성 여부뿐이다. 유정란은 수정란이지만, 식용으로는 무정란과 큰 차이가 없으며, 영양상 차이 역시 없다.
계란을 고를 때는 난각번호를 확인해 사육환경을 따져볼 수 있고, 산란일자를 기준으로 신선도를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영양성분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용도나 보관 방식, 소비 시점 등을 기준으로 제품을 고르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계란을 오래 보관할수록 신선도는 자연스럽게 떨어지므로, 냉장 상태에서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좋다. ‘좋은 계란’은 어떤 기준을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