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남현동. 나는 대학생 시절을 온전히 남현동에서 보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사시를 준비한 3년도 남현동에서 보냈다. 심지어 군복무도 남현동에서 했다. 살아방패 죽어충성. 수방사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했으니까. 법대에 진학했는데 왜 군복무관이 아닌 행정병으로 근무했는지 궁금할 수 있겠다. 나는 법대에 진학하지 못 했다. 내 기대에 어그러지는 수능 성적을 받고 법학과 대신 독어독문학과에 지원했다. 로스쿨이 없던 시절이라서 혼자 공부해서 사시를 볼 수도 있었고 우리나라 법 체계는 대륙법 체계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독일어를 공부해두면 분명 법률가로서 성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괴테와 실러를 읽고 사령부에서 문서를 작성하고 3법 조문집과 판례집을 읽는 동안 9년이 흘렀다. 이모집에서 짐을 싸서 일산 법무연수원으로 떠날 때 나는 서른 살이었다. 나에게 20대는 관악구다. 그리고 나에게 관악구는 최동현이다.
최동현. 나의 유일한 친구. 아, 참고로 동현이의 현은 고개 현이 아니다. 밝은 현이다. 스무 살에 처음 만난 우리는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이었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전혀 없었다. 아, 하나 더 있구나. 나는 고령 출신이고 동현이는 서울 출신이다. 우리 아버지는 우곡면에서 딸기 농사를 지었고 동현이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으로 일했다. 우리 어머니는 대가야시장에 나가 딸기를 팔았고 동현이 어머니는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과장을 지낸후 대형 로펌에서 일했다. 우리 부모님은 고등학교까지 다녔는데 동현이 부모님은 서울대 국제경제학과에서 만났다. 나는 서른세 살에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고 동현이는 학창시절 삼 년을 캘리포니아 버클리에서 보냈다.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이었다. 내가 수능 문제를 많이 맞추지 못했더라면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 그런 사람이었다.
지금도 서울대에는 '산과 인생'이라는 유명한 교양과목이 있다. 내가 신입생이던 2009년에 처음 개설었으니 그 과목을 나는 1기로 수강한 셈이다. 2009년 4월 20일 월요일, 서울중앙지법에서 미네르바가 무죄를 선고 받은 그날에 나와 동현이는 함께 관악산을 등반했고 친구가 되었다. 서울대입구역에서 집합해 깔딱고개를 거쳐 연주대를 찍고 호수공원을 거쳐 관악산공원 입구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5513번 버스에서 내린 후 낯가림이 심해 등산로 입구까지 줄곧 혼자 걷고 있던 내게 동현이가 다가왔다. 동현이는 내게 물었다. "태현이는 데이비드 린치 좋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