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는 당황한 기색을 드러내며 머뭇거리더니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응. 아, 아줌마는 너희 엄마 친, 친구야." 심리적 거리감을 표출한 '아줌마'라는 호칭은 분명 무례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어렸다는 말로 변명하고 싶다. "엄마 집에 계세요." 나는 아줌마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돌아섰다. 이후 나는 종종 이 날을 떠올리며 소주를 마시거나 줄담배를 피웠다.
변호사로서 스스로를 변호하자면, 서울법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하루 18시간씩 공부만 하던 시절이었다. 항상 몸과 마음이 피곤하고 지쳐 있었다. 입시에 대한 불안감과 긴장감이 극도에 달해 있었다. 그런 측면도 있지만, 솔직히 인정하겠다. 나는 '싸가지 없는 아이'였다. 공부만 잘 한다면 무슨 짓을 해도 용납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대단히 강했던 시기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선생님을 대할 때도 차갑고 오만한 태도로 일관했다. 어쨌든 부모님과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공부 하나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잘 했던 나는 스무 살에 대구 수성구를 떠나 서울 관악구에 도착했다.
아,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 나는 대학교를 다니던 4년간 관악구 이모집에서 지냈다. 같은 관악구라고는 하지만 남현동 이모집에서 대학동 학교까지 걸어서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아무튼, 내가 4년 동안 지낸 이모집이 관악구 남현동에 있었다. 이게 왜 재미있는 이야기냐고? 조금 긴 이야기인데, 꽤 신기한 이야기이니 한 번 들어봐 주시라.
당신은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렸을 때 나는 외가에 가는 걸 참 좋아했다. 고령 집 근처에는 극장이 없었는데, 외가에 가면 영화를 좋아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꼭 나를 데리고 극장에 갔다. 우리 셋은 달서구 할머니집에서 버스를 타고 중구 향촌동에 갔다. 지금은 없지만 그때는 경감영공원에서 길을 건너면 아세아극장이 있었다. 우리는 아세아극장에서 람보도 보고 인디아나 존스도 보고 이티도 보고 플래툰도 봤다. 영화를 본 직후에는 어김없이 극장 앞에 있는 대보백화점에 갔다. 우리는 방금 함께 본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짜장면을 먹었다. 가끔 백화점 2층에 있던 뷔페인 '나드리예'에도 갔다. 엄앵란이 운영하던 식당이었는데, 음식 맛은 더이상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고우영이 그린 그림 - 남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산책하는 - 은 지금까지도 선연히 기억이 난다. 그런 행복한 추억 덕분에 지금까지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영화 이야기를 하며 외식을 하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생각나는 대로 떠들다 보니까 횡설수설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아무튼,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라는 영화를 알 것이다. 영화는 각종 기이한 우연들을 언급하며 시작한다. 영화의 서사 자체가 우연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 경이로운 영화에 나올 법한 경이로운 우연이 나의 인생에도 있다. 내 이름과 관련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 보겠다.
한태현. 청주 한 씨 - 내가 자란 고령군 우곡면 대곡리 한실마을은 청주 한 씨 집성촌이다 - 몽계공파. 클 태에 고개 현 자를 쓴다. 고개 현. 사람 이름에 쓰이는 일이 매우 드문 한자다. 이름에 들어가는 현 자는 주로 어질 현이나 나타날 현일 것이다. 내 이름은 아버지가 지어주셨다. 내가 내 이름의 뜻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께서 왜 '큰 고개'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는지 알지 못한다. 영영 모르겠지. 아무튼 이 고개 현은 지명에 많이 쓰인다. 앞서 언급한 서울 관악구 남현동을 비롯해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서울 강남구 논현동,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대구 달서구 송현동 그리고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이 여섯 곳의 공통점은 지명에 고개 현 자가 들어간다는 것이다.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내 인생과 접점이 있거나 심지어는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꾼 장소들이다. 나는 꽤 신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이야기인데, 지금부터 고개 현 자를 쓰는 행정구역에서 다섯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교차했는지. 그 이야기를 들려 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