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3일
재수를 하던 스무 살. 너무 힘들고 지친 날에는 종로를 찾았다. 대학로에서 저녁을 먹은 후 이화마을을 거쳐 낙산공원에 갔다. 처음 낙산공원에서 본 일몰을 지금도 선연히 기억한다. 일몰을 볼 때면 내 인생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도 나는 슬프면 일몰을 보러 떠난다.
달아공원을 아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유명한 일몰 명소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일몰을 보러 통영에 가는 것이 아니다. 봉합하러 가는 것이다. 작년에 나는 일상의 균열을 발견했다. 월요일부터 그 균열이 확연히 커졌다. 점점 커져가는 균열이 결국 나의 일상을 회복될 수 없는 파편으로 만들어 버릴까봐 두렵다. 그래서는 안 된다. 지켜야 한다.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 서아와 은우를 부탁한다. "일요일 저녁까지는 갈게." 감사하게도 그리고 우리 엄마답게도 묻지 않는다. 사흘 동안 집을 비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이다. "고마워, 엄마." 전화를 끊고 긴 생각에 잠긴다. 왜? 왜 태현 씨는 이토록 무책임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걸까? 태현 씨의 12년 전 고백과 5년 전 청혼을 내가 주저하지 않고 받아준 이유는 그가 책임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저버린 채 통영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통영대전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시야가 흐릿해지고 있다. 비가 오고 있는데, 비는 차 밖이 아닌 내 눈에서 내리고 있다. 왼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오른손으로 연신 눈물을 훔친다. 태현 씨를 원망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는데, 그럴 힘이 더이상 남아있지 않다. 나와 상의하지 않고 일주일 동안 휴가를 낸 그가 밉다. 추석에 연휴 하루만 더 써서 하와이에 다녀오자고 할 때는 싫다고 했으면서. 갑자기 통영에 가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그가 밉다. 오 일이 지나는 동안 단 한 번도 짧게라도 통영행의 이유와 근황을 전하지 않은 그가 밉다.
북통영톨게이트를 지났다. 달아공원에 거의 다 왔다. 지금 너무 감정적이야.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천천히 내쉰다. 심호흡을 여남은 번 반복하니 마음이 차분해진다. 달아공원에 도착했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세운다. 차 밖에 나오니 바다가 보인다. 주차장 난간에 몸을 기댄 채 바다를 하염없이 보고 있는데 전화가 온다. 태현 씨다. 전화를 받는다. "예진아." 그는 지금 울고 있다. 처음 듣는 흐느끼는 그의 음성에 일순 마음이 완전히 풀어진다. "왜? 무슨 일 있어?"
통화가 끝나고 나는 다시 차에 탄다. 운전석에 놓인 두 손이 강하게 떨리고 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일요일에." 돌아가셨다는 어머니는 화요일에 우리 집에 오셨다. 아버님께서 최근 급격하게 체중이 감소하고 눈의 흰자가 노랗게 변해서 서울의 큰 병원에서 진찰을 받으셨다고 하셨다. 서울에 온 김에 서아와 은우가 보고 싶어서 우리 집에 들렀다고도 하셨다. 화요일에 어머님을 뵀는데, 지난 주에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