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2일
잃어버릴 게 많은 사람은 보수적인 사람이 된다. 지킬 보, 지킬 수. 보수적이라는 건 어떠한 변화도 바라지 않으며 일상의 평화를 지키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지켜야 한다. 우리 가정의 평온한 일상을 지켜야 한다. 이렇게 비일상적인 사건으로부터 일상을 지켜내야 한다. 나는 잃어버릴 게 많은 사람이다. 12년째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자, 첫째 서아, 둘째 은우, 단조롭고 얼마간 권태롭지만 행복하고 평화로운 일상, 풍족한 생활. 더 바라는 건 없다. 다만 하루하루 무탈하기 바랄 뿐이다. 그런데. 나의 평화의 일부로서 그것을 지탱하던 남편이 나의 평화를 위협하는 인물로 돌변했다.
금요일 오전 1시. 당혹감과 분노를 누그러뜨리려 와인을 마시고 있다. 대상이 분명한 분노를 느낀다. 분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 애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태현 씨에게 너무 크게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왜 갑자기 이런 일탈적인 행동을 자행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아내인 나를 철저하게 배제했는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든다. 의식이라는 양치기 개를 부려 양떼처럼 수많은 생각을 안전한 축사로 옮기려고 노력한다. 안전한 축사. 나에게 우리 가족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곳. 그러나 생각은 자꾸 말 안 듣는 어린 양들처럼 축사를 탈출해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 생각들이 도달하는 곳마다 내가 모르는 어떤 남자가 서 있다. 내가 얼마전까지 누구보다 잘 안다고 착각했던 남자, 태현 씨가.
서아가 켠 TV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알람소리에 깨지 못한 건 정말 오랜만이다. 남편에게 문자가 와 있다. "아직 통영이야. 곧 갈게" 그 문자 위 내가 보낸 문자를 확인한다. 새벽 2시 5분에 보냈네. 기억은 안 난다. 술에 취해 있었으면서도 단정하고 예의를 지킨 문자였다. 잠깐 작은 자부심을 느낀다. 첫째와 둘째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과묵한 집으로 돌아온다. 나갈 때는 시끌벅적했는데. 나에게 여유와 평화를 선사했던 이 고요가, 요즈음에는 나를 슬프게 한다. 소파의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잠시 생각한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동차 키를 챙겨 외투 주머니에 넣는다. 엘리베이터에 탄다. 차에 타고 시동을 건다. 네비게이션에 네 글자를 입력한다.
달아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