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을 피우는 나무

나무 나무 신나는 나무 같은 인생

by 혜수


아름다운 풍경은 언제나 도로 위로 스쳐간다. 차창 너머 펼쳐지는 장관은 한순간 마음을 사로잡지만, 정작 멈춰서 찬찬히 들여다볼 수는 없다.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눈에 담기고 사라진 풍경이라 더 눈부시고 소중하다.

평소 걸음이 빨라 늘 급해 보이는 나지만, 공원이나 산길에선 느릿하게 걷는다.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먼 산을 응시하느라 자주 멈춘다. 그 모양새가 낯선 사람들에겐 이상하게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얼굴은 기억하지 못해도 지나치며 눈에 담은 나무들은 또렷이 기억한다.

봄은 계절의 유년이다. 꽃샘추위를 뚫고 피어난 매화 꽃봉오리는 일찍 철든 아이 같다. 무엇이 그리 급해 서둘러 꽃부터 피웠을까. 대견하면서도 마음이 짠하다. 완연한 봄이면 까르르거리는 소녀의 웃음 같은 벚꽃 잎이 흩날린다. 꽃비로 설렘을 한바탕 뿌리고 나면 나무는 초록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여름은 청춘의 계절이다. 뜨거운 햇빛을 양껏 받아들인 나무는 푸르디푸르다. 얼핏 보면 다 같은 초록이다. 끝이 뾰족한 바늘 모양 잎사귀를 가진 삼나무와 메타세쿼이아는 구분하기 어렵다. 서로가 무성하여 뚜렷하게 개성을 뽐내지 않으면 그저 푸른 나무들이다.

가을은 계절의 절정이다. 그간의 노력으로 저마다 열매를 맺는다. 결실이 달콤할 수도 있고 쓰고 떫을 수도 있다. 푸르기만 하던 나무들이 알록달록한 색깔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청춘에 구분하기 힘들었던 삼나무와 메타세쿼이아는 멀리서 보아도 구분이 쉽다. 낙엽 침엽수인 메타세쿼이아는 갈색 잎을 떨구고, 상록 침엽수인 삼나무는 여전히 푸르다.

겨울은 계절의 최후다. 찬바람이 불면 나뭇가지는 움켜잡고 있던 이파리를 내려놓는다. 청춘에 무성했던 초록이 저물고 인생 절정에 화려했던 붉음이 시든다. 앙상하게 남은 가지 사이로 이제야 상록수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회색 도시 속에 사계절 묵묵히 푸른 숨결을 불어 넣어 온 나무다.

상록수라고 해서 늘 그대로였을까. 변화무상하진 않아도 조금씩 누렇게 진 잎을 떨구며 제 나름대로 계절을 준비한다. 천천히 변화를 이어가면서도 푸름을 유지하려 노력했기에 늘 한결같아 보였을 뿐이다. 누군가 인생의 최후가 상록수 같다면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해 꾸준히 성장해온 사람일 것이다.

중년이 되면 화려한 단풍처럼 인생의 절정을 누리는 사람이 많다. 달콤해 보이는 결실을 본 사람은 더 빛나 보인다. 불혹이 넘도록 나는 무엇을 이루었나. 나는 느리게 걷다가 멈춰 바라본 상록수에 위로와 응원을 받는다. 정체된 듯 보이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고. 저마다 시선을 사로잡는 계절이 있다고 말이다.

오늘도 남편과 강변을 걸으며 나무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다. 허공을 두리번거리며 걷는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는 것도 즐긴다. 낯익은 나무를 만나면 속으로 인사한다. “오늘도 거기 있어서 참 고맙다.”


문수구장의단풍.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산 자에게만 허락된 과일, 복숭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