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에게만 허락된 과일, 복숭아

by 혜수


어느덧 팔월이 저문다. 출장 다녀오는 남편이 복숭아 한 상자를 내려놓는다. 영덕에 사는 남편의 오랜 지인으로부터 받은 복숭아란다. 강원도를 지날 때마다 들러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인연인데, 이렇게 복숭아까지 챙겨 보내주는 마음이 참 고맙다.

복숭아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친정엄마다. 엄마는 복숭아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알뜰한 살림살이에도 복숭아만큼은 비싸고 좋은 걸로 샀다. 여름이면 내가 복숭아를 직접 살 일이 없었다. 엄마가 늘 시중에서 가장 탐스럽고 좋은 복숭아를 챙겨주셨기 때문이었다. 친정엄마는 허리, 무릎이 아프다면서도 복숭아와 밑반찬을 바리바리 싸 들고 들렀다. 그러면 나는 안타까운 마음에 "제발 그냥 좀 오세요. 왜 무겁게 들고 오세요!"라며 모진 소리를 하곤 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었다. 그때 엄마의 마음을 더 받아줬어야 했다.

엄마는 요양원으로 모실 만큼 병세가 깊어졌다. 음식도 잘 드시지 않아 모두들 걱정이 많았다. 달콤하게 잘 익은 물복숭아라면 드실까 싶어 복숭아 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요양사가 주면 안 드시던 음식도 내가 직접 먹여드리면 곧잘 드셨기에, 올여름 복숭아가 나오면 꼭 깎아서 가져가야지 했다.

복숭아가 나오기도 전에 엄마는 돌아가셨다. 그 다짐은 지키지 못한 약속이 되어 가슴 깊이 맺혀버렸다. 장례를 치르는 중에 동생이 엄마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복숭아를 싫어했던 것 아니냐고 물었다. 동생은 일본으로 유학 간 후 오랫동안 일본에서 지내느라 엄마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엄마가 복숭아를 씻으며 간지러움을 참았던 건 가족을 위한 마음이 가장 컸겠지만, 엄마도 복숭아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복숭아가 한창인 여름이 되니 엄마가 무척이나 그립다. 맛있는 복숭아를 끝내 드리지 못했다는 미안함도 가슴에 사무친다. 내 마음을 아는 동생이 엄마가 돌아가신 후 첫 생신날 상에 올리겠다며 크고 탐스러운 복숭아를 가져왔다. 마음은 기특했으나 복숭아는 산 자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복숭아는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다고 하여 제사상에 올리지 않는 과일 중 하나다. 오직 산 자에게만 허락된 과일이다. 살아계실 때, 건강하실 때 자주 챙겨드리지 못한 죄송한 마음이 자꾸만 커진다.

복숭아는 참으로 신비한 과일이다.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신선들이 즐겨 먹는 신성한 과일,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과일이라 마을 곳곳에 심어두었단다. 복날에 삼계탕 대신 먹을 정도로 영양도 풍부하다. 그런데 어째서 귀신도 반할 이 달콤한 과일은 산 자에게만 허락된 것일까! “그러니 살아있을 때 잘했어야지!”라고 복숭아가 날린 돌직구가 ‘퍽!’ 하고 가슴에 박힌다.

복숭아털 때문에 간지러워 푸념하시며 깎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손 씻으면 괜찮아 진다" 하시던 엄마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날름 받아먹기만 했던 철없던 나는 복숭아가 지천인 계절이 슬프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복숭아를 내어주던 엄마의 사랑이 떠올라 미안함도 밀려온다.

엄마처럼 딸아이도 복숭아를 좋아한다. 줄줄 흐르는 과즙 때문에 깎는 게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나 역시 그 까슬까슬한 털 느낌이 싫다. 하지만 달콤했던 엄마의 사랑과 추억이 과즙에 함께 흘러나오는 듯해 정성스럽게 깎아 아이들에게 내어준다. 마치 엄마가 우리 가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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